관세를 다시 위대하게?…美 대선 임박, 긴장하는 산업계[워싱턴브리핑]
미 싱크탱크 CSIS '관세법 338조 등 주목'…'레드스윕' 시 입법 추진 가능성도
(워싱턴=뉴스1) 류정민 특파원 =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일이 3일(현지시간) 현재 이틀 앞으로 임박하면서 선거 결과가 한국 경제·산업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초방빅 승부를 이어가는 가운데, 한국 경제·산업계의 관심은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에 좀 더 쏠리고 있습니다.
만약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된다고 가정하면 조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를 대체로 유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해리스가 집권에 성공하면 동맹국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대중국 디리스킹(de-risking, 위험 제거)에 나서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법(CHIPS법), 인프라법 등을 활용해 주요 전략산업 분야에서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나 기업 입장에서도 지금까지의 대처해 온 방식을 크게 바꾸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대선 유세 과정에서 중국산에는 60%에 달하는 고율의 관세를, 나머지 국가에서 수입되는 상품에도 10~20%의 보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그가 이처럼 관세를 앞세우는 데에는 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무역 질서 아래에서 미국이 적지 않은 손해를 보고 있다는 피해 의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 보수 세력은 WTO의 최혜국대우(MFN) 조치로 미국이 수입 상품에 비대칭적인 낮은 세율을 부과하고 있으며, 이가 무역수지 적자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 2기 행정부에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 전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 전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과 같은 대표적 반중 및 보호무역주의자들이 내각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 산업연구원(KIET)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적용하는 자동차에 대한 MFN 관세는 2.5%에 불과하지만, EU(10%), 중국(15%), 브라질(35%)의 수입 관세는 이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또 미국이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 중 상대국이 미국보다 높은 관세(6단위 상품분류 코드인 HS협약 기준)를 매기는 경우가 46만7015건으로 반대의 14만1736건에 비해 3배 이상 많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는 데다, 트럼프 1기 때 미국 측 요구를 받아들여 2018년 9월 개정안에 한미 양측이 서명한 만큼 여타 국가와는 좀 다른 대우를 받지 않겠냐는 기대도 있습니다.
얼마 전 워싱턴DC를 찾은 한 고위 경제 관료는 "보편관세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한국에만 적용한다고 하는 게 아닌 데다, 중국에 더 많은 관세를 부과한다고 하는데 한국산이 미국 내에서 더 경쟁력을 얻는 등 오히려 유리한 점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과거 사례를 볼 때 우리가 처할 최악의 상황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많은 경제·산업계 인사들은 말합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 재입성에 성공한다면 보편관세를 앞세워 기선을 제압하려 한 뒤, 상대 국가별로, 또 품목별로 적자를 만회하거나 자국 산업 보호 명분을 이유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대선 기간 내내 한국에 대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거두고 있는 '부자나라'(rich country)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은 여전히 우리 철강기업의 대미 수출을 제한하고 있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해 트럼프 관세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는 외국산 수입 제품이 미국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경우 '대통령의 권한'으로 관세율을 높이거나 수입물량을 제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7년 3월, 트럼프 행정부는 무려 55년 전인 1962년에 만들어진 이 조항을 근거로 외국산 철강이 자국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며 관련 조사를 개시했고, 이듬해 3월 수입 철강제품에 25%, 알루미늄에는 10%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합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발 빠르게 협상에 나서 한국산 철강에는 25% 관세부과를 면제받는 대신, 수출량을 2015~2017년 3년 평균 수출량의 70%(약 268만 톤)로 제한하는 '절대 쿼터제'(Absolute Quota)에 미국과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후 미국 경제가 호황을 맞이하면서, 한국은 이듬해 대미 쿼터를 금세 채웠고, 주력 수출품인 '유정용 강관'을 더 수출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더구나 2022년 미국은 동맹국과의 협력 강화 차원에서 유럽연합(EU)과 일본에 대한 철강 관세 부과 조치를 저율할당관세(TRQ) 방식으로 완화하지만, 한국은 제외됩니다.
완화된 조치에 따라 유럽은 2015~2017년 연평균 수출량의 75%(330만 톤)에 대해 관세를 면제받되, 이를 넘어서는 물량은 25%의 관세를 부과받고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일본은 2018~2019년 연평균 수출량(125만 톤)을 25%의 관세 없이 수출할 수 있되, 이를 넘어서면 마찬가지로 25%의 관세를 부과받고 수출할 수 있습니다.
쿼터 물량을 넘어서면 대미 수출길이 아예 막히는 한국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한국 정부도 미국과 재협상을 하려 하지만, 현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대선을 앞두고 제품 경쟁력이 우수한 한국산 제품 동향에 민감한 자국 철강 업계의 눈치를 살피느라 협상에 미온적입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정권을 넘어 우리 철강업계에 장기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단적인 예인데, 보편관세까지 앞세우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협상은커녕 추가적인 관세부과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일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보편관세가 가능하겠느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미국 헌법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부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회는 특정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대통령에게 위임했고, 얼마든지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미 조야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미 워싱턴DC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얼마 전 게재한 '관세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Making Tariffs Great Again): 트럼프는 미국 무역 파트너와 중국에 대해 새로운 관세를 부과할 법적 권한이 있나'라는 제하의 논평을 통해 1930년에 만들어진 관세법 338조가 보편관세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조항은 대통령이 미국 제품을 차별하는 모든 국가에 최대 5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338조는 대통령이 미국 제품을 차별하는 모든 국가에 최대 50%의 추가 관세 부과도 허용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번 선거에서 함께 치러지는 상·하원 선거 결과에 따라 공화당이 상·하원까지 장악하는 '레드스윕' 가능성까지 거론됩니다. 그렇게 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9년 입법화를 시도했던 상호무역법(United States ReciprocalTrade Act, USRTA)의 입법을 재추진할 수도 있습니다.
이 법은 미국이 부과하는 수입 관세보다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협상을 요청할 수 있으며, 상대국이 협상을 통한 수입관세율 인하를 거부할 경우 미국 대통령은 이에 상응하는 수입 관세율 인상 권한을 갖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 제품의 품질 경쟁력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만,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위기는 순식간에 찾아올 수 있습니다. 특히 급변하고 있는 무역, 통상 질서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성급한 판단으로 그릇된 선택을 한다면 최상의 품질 경쟁력을 갖추고도 한국의 주력 수출 산업이 금세 큰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미국 대선은 여전히 예측 불허입니다. 전날 WP가 보도한 여론조사 분석 내용을 보면 7개 경합주 중 해리스가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네바다 등 4개 주에서, 트럼프는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애리조나에서 앞서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만 모두 오차범위 내 접전입니다.
또 트럼프는 의사 결정 과정에서 적응력도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관세 부과에 있어서도 명확하게 결과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아래 문구로 끝나는 CSIS의 논평은 우리가 새겨읽어 볼만합니다.
"트럼프는 관세와 같은 도발적인 위협을 협상 지렛대로 사용하는 딜메이커입니다.…중략… 중국과 미국의 무역 파트너, 외국 철강 및 알루미늄 제조업체들이 트럼프의 첫 임기 동안 알게 된 것처럼, 관세 위협을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ryupd0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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