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너마저 “실패할 걸 알기에 더 고민하며 음악 해요”

이정국 기자 2024. 11. 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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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집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 발표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덕원(왼쪽부터), 동혁, 류지, 잔디. 브로콜리너마저 제공

2007년 10월, 한 인디 밴드가 불현듯 대중 앞에 나타났다. 음악보다 독특한 이름이 더 먼저 알려졌다. ‘브로콜리너마저’다. 데뷔 미니앨범(EP) ‘앵콜요청금지’와 이듬해 발표한 첫번째 정규 앨범 ‘보편적인 노래’가 당시 젊은층 사이에서 ‘유행가’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다. 생활의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 스쿨밴드를 떠올리게 하는 소박한 연주에 사람들은 부담 없이 다가갔다.

몇차례 멤버 변화를 거쳐 어느덧 18년차 중견 밴드(덕원∙잔디∙동혁∙류지)가 된 이들이 지난 9월 정규 4집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를 내놨다. 2019년 3집 ‘속물들’ 이후 5년 만이다.

지난달 24일 찾은 경기 고양의 밴드 작업실 입구는 짐으로 가득했다. 다음날 열리는 팝업스토어에서 판매할 후드티, 커피잔 등이었다. 미디어 홍보가 제한적인 인디 밴드 특성상 팬들과 직접 만날 다양한 창구를 마련한다. 그중 하나가 팝업스토어다. “짐 나르는 것도 우리가 다 해요. 사실 이런 거 귀찮아하면 지금까지 밴드 유지 못했을 거예요.” 잔디가 말했다.

짐 정리를 대충 마무리한 뒤 멤버들이 자리에 앉았다. “앨범 제목이 너무 부정적인 거 아니에요?” 바로 물었다.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는 앨범 마지막 곡 ‘영원한 사랑’의 가사이기도 하다. 작사∙작곡을 맡은 덕원은 “제가 원래 우울, 비관 쪽”이라며 웃었다. 실제로 이전 노래들도 희망보다 비관, 되는 쪽보다 안 되는 쪽 얘기들이 많다. “현실 인식은 그래요. 실패할 것을 알죠. 하지만 그만하자는 게 아니에요. 실패할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떤 목소리를 건넬 것인가 고민하는 거죠.” 잔디가 이어받았다.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덕원(왼쪽부터), 잔디, 동혁, 류지. 브로콜리너마저 제공

앨범 홍보용 사진은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독특하다. 밴드 멤버들이 선 배경이 보통의 가정집 옥상 같다. 어디냐고 물으니 이번에 정식 멤버가 된 동혁의 서울 공릉동 처가라고 한다. 그전 5년간 기타 세션 연주자로 공연을 함께해온 동혁은 올해 초 결혼한 신혼이다. 동혁은 “사진작가와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가 ‘옥상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처가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옥상은 이번 앨범 메시지와도 연결된다. 덕원은 “이번 앨범은 삶의 이중성이라는 성찰을 담고 있다. 성공과 실패, 희망과 불안, 상승과 추락, 죽음과 생명 등은 누군가 겪어야 하는 불가피한 부분”이라며 “옥상은 상승의 이미지도 있지만 밑으로 떨어지는 추락의 이미지도 있다. 앨범 콘셉트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앨범 표지는 단풍나무 씨앗 조형물을 찍은 사진이다. 씨앗 또한 바람을 타고 상승했다가 땅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는 하강이라는 두 이미지를 갖기 때문이다.

화제곡 ‘요즘 애들’로 얘기를 옮겼다. “반지하 이리카페에서 흰 맥북을 켜고/ 쌈싸페가 우릴 기다릴 거야/ 탈락했어도 향뮤직에 가서 시디를 팔자” 하는, 왕년에 홍익대 앞 좀 드나들었다면 미소 지을 법한 가사의 노래다. 잔디는 “중년층은 중년층대로 좋아하시는데, 요즘 청년층도 자신들이 경험 못한 시대의 이야기라 재밌어하더라”고 전했다.

가사에 “통편집 당해버린 무한도전”이란 소절도 있다. 실제로 과거 ‘무한도전’ 특집 방송에 출연했는데 상당 부분 편집을 당했다고 한다. 뒤집어 생각하면 이들이 ‘무한도전’에 나갈 정도로 ‘핫’했다는 의미다. “당시 연말 특집이어서 강남 클럽에서 파티 콘셉트로 녹화했어요. 2집 수록곡 ‘졸업’이란 노래를 불렀는데 ‘이 미친 세상에’라는 가사가 있거든요. 연말 파티에서 ‘이 미친 세상에’라고 노래했으니 프로그램하고 안 어울렸을 거 같아요.” 덕원이 그때를 떠올렸다.

브로콜리너마저 4집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 브로콜리너마저 제공

‘요즘 애들’에는 시디를 직접 구워서(복제해서) 팔러 다니던 추억담도 들어가 있다. “그때는 인디 밴드들이 내일이 없는 것처럼 음악을 했어요. 무작정 음반을 내는 거죠. 재밌어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양질의 결과물이 나왔던 거 같아요.” 덕원은 “요즘 인디신에서 단순히 음악이 좋아서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며 “결과물이 좋으면 인디에서 바로 주류 시장으로 건너가는 터라 남아있는 이들은 더욱 열악해진 상황”이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상황 탓만 할 순 없다. 이들은 스스로 생존의 길을 찾았다. 잔디는 “공연 준비, 티켓 판매, 각종 이벤트 준비 등 다 우리가 한다. 사실 해보면 별거 없다. 기획사 등을 끼지 않아도 가능하다. 누군가 물어보면 열심히 알려준다”고 했다. 이들은 12월에만 8차례 공연이 예정돼 있다.

“음악 필요하면 찾아주시고, 친구처럼 들어주세요.”(잔디) “꾸준히 음악 할 테니 간혹 들러주셨으면 좋겠어요.”(덕원)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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