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골목 대구 북성로에 신축 아파트 들어서자 [전국 인사이드]

김보현 2024. 11. 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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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역 네거리에서 남쪽으로 100m가량 내려와 오른쪽으로 꺾으면 곧바로 북성로 공구골목이 나온다.

월요일이던 10월14일 오전 8시, 아파트를 나온 아이들은 삼삼오오 손을 잡고 공구골목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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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4일 어린이들이 대구 중구 북성로 공구골목을 지나가고 있다. ⓒ김보현 <뉴스민> 기자

대구역 네거리에서 남쪽으로 100m가량 내려와 오른쪽으로 꺾으면 곧바로 북성로 공구골목이 나온다. 10년 전만 해도 이곳은 ‘낮과 밤의 얼굴이 다른 골목’이라 불렸다. 도면만 가져오면 탱크도 만들어 준다는 공구상가가 낮의 얼굴이라면, 해 질 무렵 펼쳐지는 연탄불고기와 우동 포장마차는 밤의 얼굴이었다. 대구 최초의 신작로였던 100년 넘은 골목에서 상인과 상인의 자식, 그리고 그 자식들이 자랐다.

도시의 얼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2017년쯤 연탄불고기 포장마차가 하나둘 사라졌다. 인근에 들어선 대단지 아파트의 민원 때문이었다. 이후 대구 전역에 본격적으로 정비사업 열풍이 불었고, 북성로가 있는 중구도 곳곳이 허물렸다. 새로 짓는 건물 대부분은 아파트나 오피스텔이었다. 종전에 상업지역이 밀집한 도심으로 기능했던 중구는 주거 인구를 늘리겠다는 목표하에 2019년 주거환경정비사업을 시작했다. 그 여파는 북성로에도 미쳤다. 공구골목 한편에 800세대 규모의 아파트가 올라갔다.

주거단지와 공구상가가 한 골목에서 공존할 방법을 찾긴 어려웠다. 지난해 11월 입주를 시작한 신축 아파트 단지와 오래된 공구점들이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했다. 하필 아파트 입구부터 인근 초등학교까지 등굣길이 공구골목과 200m 남짓 겹쳤다. 도로에는 트럭과 트랙터가 철물, 타일 같은 중량물을 싣고 다녔다. 고질적인 주정차 문제도 있었다. 상인들은 공구를 싣고 내리는 시간, 수리를 위해 찾아오는 농기계 같은 것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2016년 중구청은 골목 특징을 고려해 가게 앞 인도 주차를 20분까지 허가했다. 일부 입주민은 1분 이상 인도에 주정차된 차량은 무조건 단속 대상이라며 민원을 넣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상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과태료 고지서 더미를 받았다. 그중엔 이 아파트에 입주한 상인도 있었다. 삼자대면을 거쳐 올 6월, 중구청은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월요일이던 10월14일 오전 8시, 아파트를 나온 아이들은 삼삼오오 손을 잡고 공구골목을 지나갔다. 아파트와 가장 가까운 종로초등학교의 학생 수는 지난해 116명에서 올해 201명으로 늘었다. 노란 조끼를 입은 시니어클럽 어르신들이 깃발로 길을 안내했다. 일찌감치 가게 문을 연 상인들은 모여 앉아 인스턴트커피를 마셨다. 아파트와 가까운 가게일수록 인도가 깨끗했다. 불법주정차 단속 차량이 ‘삐이잉’ 소리를 내며 골목을 돌았다. 늙은 상인들은 아이들을 보고도 웃지 않았다.

상봉씨 친구들은 ‘여즉’ 북성로에서 일한다

50년간 북성로에서 농기계를 수리한 조석현 국제종합기계 대표가 말했다. “예전엔 이 골목에 와야 해결이 됐단 말이야. 촌에서 고무장화 신고도 왔어. 손수 기름 묻혀 고쳐주는데 쉽게 말하면 노가다지. 지금은 시골에도 다 농기계 수리점이 있어. 공구도 인터넷에서 다 팔잖아. 시대가 변하는데 아파트가 들어오니 더 빠르게 위축되는 느낌이 들어.” 옆에서 꾸벅꾸벅 졸던 김기원 대영파워펌프 대표가 불쑥 끼어들었다. “노가다는 무슨…. 우리는 기술자라고.”

골목을 떠난 이도 있다. 북성로에서 30년 일한 이정훈 예스툴 대표는 한 달 전 가게를 대구 북구 고성동으로 옮겼다. 이 대표는 1000개가 넘는 공구를 판다. 직원이자 아들인 이상봉씨는 원래 건설현장 안전관리자로 일했다. 대구의 재개발 붐 속에서 비교적 쉽게 취직했고 북성로 근처 현장에서 일한 적도 있다. 다음 현장은 울산이라는 얘기에 대구를 떠나기 싫어 1년 전 아버지 가게로 들어왔다. 상봉씨 친구들은 ‘여즉’ 북성로에서 일한다. 공구라는 과거의 생활문화 양식과 아파트라는 현대적 양식이 갈등하는 북성로의 새로운 얼굴을, 상인의 자식들이 본다.

김보현 (<뉴스민>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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