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여러분, 화분 버리기 전 연락 주세요 [임보 일기]

백수혜 2024. 11. 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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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에서 반려로, 반려 다음 우리는 함께 사는 존재를 무어라 부르게 될까요. 우리는 모두 ‘임시적’ 존재입니다. 나 아닌 존재를, 존재가 존재를 보듬는 순간들을 모았습니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 대다수는 식물 자체보다는 꽃을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알록달록 화려한 색을 뽐내는 꽃이 인기가 좋다. 잎사귀에 묻혀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연두색 꽃을 피우는 대추나무나 회양목, 사철나무와 은행나무 꽃은 사람 눈에 잘 띄지 않아 그런지 예쁨받을 새도 없이 피고 진다. 벚꽃, 진달래, 개나리, 백일홍, 코스모스 등 우리 눈에 잘 띄는 화려한 꽃은 그 이름을 딴 축제를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 만큼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다.

내가 볼 때 언제고 꽃이 만발하길 원하겠지만, 아쉽게도 사계절 내내 매일 꽃을 보여주는 식물은 없다. 우리도 피곤하고 힘들 땐 눈 밑이 퀭해지기도 하고 아플 땐 수척해지지 않나? 우울할 땐 기운 없이 축 처지는 그런 날이 있지 않나? 식물도 초록잎과 꽃을 자랑하는 때는 한정적이고,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임에도 우리는 우리의 꽃밭에 언제나 꽃이 만개하기를 욕심낸다. 알고 보면 꽃이 안 피는 식물도 많다. 핀 듯 안 핀 듯 피거나 아침 혹은 밤에만 피는 꽃도 있다.

때로 공공기관이나 일부 가게에서 식물유치원이 구조한 식물을 입양하곤 한다. 재개발단지에 버려진 식물은 주로 외부 공간인 정원에서 키우던 식물인 경우가 많다. 덕분에 야외에서 키우기 매우 적합하다. 강한 번식력과 생명력을 지니고 더운 여름과 장마, 추운 겨울을 넘나드는 한국의 극한 날씨를 온전히 견디는 식물 종류는 그리 많지 않다. 비비추나 맥문동, 바위취 정도다. 이들은 관리하기 쉬운 식물이기도 하지만, 몇몇 경우는 매서운 겨울 날씨에도 초록 잎을 유지하기 때문에 사계절 내내 푸르다.

서울의 한 주민센터 앞마당에도 센터 허락을 받아 재개발단지에서 구조한 식물을 심을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달 지나지 않아 해당 식물이 모조리 뽑혔다. 그 자리에는 가을꽃인 국화가 빼곡했다. 꽃이 없으니 잡풀로 취급해 다 뽑아버리고, 한 계절 즐기자고 그 시기 꽃피우는 식물을 심었다. 나는 안다. 가을 동안 열심히 꽃피우고 사람들을 기쁘게 할 국화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서 가을에 꽃을 피우기 위해 양분을 모으며 잎사귀만 보여줄 때면 다 뽑힐 것을. 그 자리에는 봄꽃인 팬지가 다시 빼곡히 심길 것이다.

서울 한 주민센터 앞마당. 재개발단지에서 구조한 식물이 모조리 뽑히고 국화가 심겼다. ⓒ백수혜 제공

예산이 나와서 써야 할 수도 있고, 화훼단지 산업을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예산을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서 쓸 수는 없는 걸까. 이미 심은 식물을 돌보는 데 쓸 수도 있지 않을까. 화훼단지 산업은 비료나 자재 구입 등 다른 방법으로 응원하면 될 일이다. 철마다 생화를 보기 위해서 돈과 탄소를 소비하며 잘 살아 있는 식물을 무참히 갈아엎어 버리는 일은 어떻게 봐도 지속 가능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주민센터 한 곳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4월 총선 이후 국회에서 많은 화분이 버려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거해서 다시 심은 뒤 필요한 곳에 보내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국회 청소과의 도움으로 마대 자루에 섞여 버려진 화분을 찾아 꺼낼 수 있었다. ‘축하합니다’라는 휘장을 단 난 화분이 쓰레기로 처박혀 있는 것도 안타까웠지만, 음식물 쓰레기와 뒤섞여 있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누군가의 얼굴이 나온 액자와 이름이 쓰인 상장도 그 속에 함께 있었다.

총선 이후 임기를 마친 국회의원실에서 나온 쓰레기 속에는 살아 있는 식물 화분이 섞여 있었다. ⓒ백수혜 제공

꽃이 졌다고, 관리하기 힘들다고, 죽지 않은 식물을 혼합 배출하는 입법기관의 행태에 분개하며 온라인에 글을 썼다. 곧이어 글을 지우라는 청소과 담당자의 말과 더는 쓰레기장에 들어온 화분을 수거할 수 있도록 협조하지 않겠다는 공문이 도착했다. 새로 임기를 시작한 몇몇 의원실에 전화를 돌려, 화분을 버리게 되면 미리 연락을 달라고 당부했다. 개인의 생태 감수성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도 환경과 생태에 대해 고민하면 좋겠다. 법으로, 정책으로 생태 감수성을 높이는 문화를 만들어나가길 바란다. 그때까지 우리는 개인이 모여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백수혜 (‘공덕동 식물유치원’ 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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