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흔적 원형 그대로 유물을 보존하는 이유는
수리수리 보존수리 특별전
원형 유지·최소 수리·장기 보존
정교한 복원 과정·기법 한눈에
제의 기물 ‘고의 훼손’ 의미 눈길
세상도 녹슬지 않게 힘써 가꾸길
서울대학교박물관의 기획특별전 ‘수리수리 보존수리’(내년 3월29일까지)는 이 박물관이 문을 연 이래 꾸준히 지속해온 유물 보존수리 사업의 성과를 소개한다. 토기, 탈, 모자, 목가구, 금속, 서화 등의 소장품을 소재에 따라 여섯 부분으로 구성했다. 보존 처리나 복원 대신 ‘수리’라는 알기 쉬운 단어를 선택해 경쾌하게 지은 전시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망가진 유물을 반듯하게 고쳐내니 사람들 눈엔 마치 마술을 부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보존과학자들의 지식과 솜씨도 함께 담아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병풍처럼 펼쳐진 도입부에 적힌 보존수리의 원칙들을 만나게 된다. 첫째, 원래의 모습을 바꾸지 않는다. 둘째, 꼭 필요한 부분만 최소한으로 수리한다. 셋째, 최대한 오랫동안 보존되도록 한다. 약 80점의 유물 하나하나를 마주할 때마다 이 물건은 어디를 어떻게 고친 것일까 가늠해보는 것이 이 전시를 보는 즐거움의 하나이다. 전시 곳곳에 재질별 보존수리 과정과 방법을 알기 쉽게 설명한 자료들이 보존과학이나 문화유산 복원이 생소한 관람객을 돕는다.
토기에 담긴 이야기
백제 초기 왕릉인 서울 석촌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들을 소개한 1부 ‘조각을 맞추다’는 원형 보존 원칙의 의미를 명확하게 잘 보여준다. 진열장 안에는 유적에서 나온 토기 조각이 가득 든 나무 상자와 수리를 마친 항아리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그런데 깨진 조각을 맞추다 만 듯한 토기 항아리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깨진 토기를 수리할 때는 손상이 일어난 경위를 신중하게 분석해 수리 여부를 결정한다. 이 항아리들의 몸체는 땅 밑에 퇴적되는 과정에서 압력을 받아 깨졌다. 자연스럽게 파손된 부분이기에 정교하게 파편을 맞추고 빈틈을 메꾸어 본래의 윤곽을 되살렸다. 반면 입 주변의 조각이 연달아 떨어져 나간 것은 누군가가 일부러 내리쳐서 깨뜨린 것이다. 이 토기를 수리한 보존과학자는 이 부분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이 토기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옛사람들이 일부러 물건을 망가뜨린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에는 제사나 의례에 사용한 신성한 물건을 함부로 되가져가지 못하도록 망가뜨려 묻어버렸다. 이를 훼기(毁器)라고 한다. 전시에 나온 토기 항아리처럼 그릇의 입 부분을 부수기도 하고, 위정자의 권력을 상징하는 거울은 깨뜨리고 칼도 날을 구부려 쓸 수 없게 만들었다. 즉 훼기는 물건의 쓸모를 제거해, 그 물건이 일상용품이 아님을 강조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렇게 물건의 사용처를 엄격하게 통제하기 위해 아예 망가뜨려 없앤다는 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선 무참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제사에 살아 있는 희생물을 바치는 것뿐만 아니라, 의식을 마친 후엔 자리에 올랐던 물건들까지 생명을 거두어들였다는 사실은 우리가 삼국시대 사람들의 세계를 훨씬 더 선명하게 그려보게 한다. 반달 모양으로 깨져나간 흔적을 원형 그대로 남긴 토기 항아리는 그 시대 물건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가 깃들기 마련임을 잘 보여준다.
보존수리의 범위는 물건의 원래 모습을 회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미 생긴 손상이 더 심해지지 않도록 처리하고, 유물이 앞으로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강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나무탈이나 바가지탈은 앞면은 물론 안쪽 면까지 깨끗하게 수리하고, 공작 깃털, 밀화, 금속 등 화려한 장식을 더한 전립 모자도 누군가 지금 막 툭 하고 벗어놓고 간 것처럼 정교하게 복원되었다.
한편 옛 그림의 경우 작품의 의미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과감하게 바탕을 새로 꾸미기도 한다. 책에 표지를 입히듯, 글씨나 그림에 두꺼운 종이나 비단을 덧대어 꾸미는 것을 장황(裝潢)이라고 한다. 6부 ‘새 옷을 입히다’는 수리 과정에서 족자, 액자, 병풍 등 형식을 바꾸어 다시 꾸민 작품들을 보여준다. 두폭짜리 병풍들로 전하던 장승업(1843∼1897)의 그림은 한장씩 분리해 족자로 바꾸었는데, 반대로 액자에 나뉘어 담겼던 ‘문효세자 책례도’는 여덟폭의 병풍으로 다시 이었다. 나라의 큰일을 그림병풍으로 만들어 기록하던 조선의 계병(契屛) 전통에 따라 제작된 의의를 되찾아준 것이다.
조선 초 화기 차승자총통 첫 공개
금속 유물을 다룬 5부 ‘시간을 되돌리다’에서는 보물 차승자총통을 일반에게 처음으로 공개한다. 차승자총통은 조선 전기인 1588년에 만든 휴대용 화기로, 나무 손잡이를 끼우는 부분에는 총통의 이름과 제작 연도 등의 정보가 새겨져 있다. 여기에 적힌 희손(希孫)은 총을 만든 장인의 이름이다. 3년 전 서울 도심에서 대량의 금속활자와 함께 발견된 승자총통 역시 희손이 같은 해에 만든 것이었다.
대나무 줄기처럼 죽 뻗은 총신은 거무스름하게 변색하고 푸른 녹도 슬어 세월의 흔적이 가득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녹슬고 부식되는 것이 사람의 입장에선 손상이지만, 금속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회복이라는 점이다. 금속은 광석을 인위적으로 가공해 만든 물질이므로, 시간이 지나면 이전 상태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녹을 제거하고 부식 진행을 막아 수리한 후에도 온습도 등 보관 환경을 계속 주의 깊게 관리해야 한다.
박물관에서 유물 앞에 설 때면 그 크고 작은 물체들이 오롯이 견뎌낸 긴 시간을 떠올리며 감격하곤 한다. 그러나 이 전시에 나온 수리된 유물들은, 물건을 만들고 세상에 남기는 일은 시간뿐만 아니라 물성에도 끊임없이 맞서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 역시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민주주의, 자유, 평등, 평화와 안전, 사회적 합의는 결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의 힘으로, 인위적으로 애써야 한다. 날이 밝으면 온통 무의미한 훼기와 손상으로 가득한 소식이 들려와도, 세상이 녹슬게 내버려두지 말았으면 한다. 포기하지 않고 고쳐서 다시 사는 삶, 포기하지 않고 고쳐서 다시 살리는 사람. 옛날 문화유산을 보러 갈 때면 어김없이 배우는 것이다.
※2018년 11월에 시작한 한겨레 연재를 꼭 6년을 채우고 마무리합니다. 이 코너를 새로 얻어 여러분께 이야기를 전한 지도 어느덧 3년 하고 한 계절이 더 흘렀습니다. 어느 토요일 아침, 신문을 읽다 박물관으로 전시 하나 보러 가고 싶어지는 순간. 이 칼럼은 우리 모두가 그런 작은 즐거움을 조금 더 자주 누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써왔습니다. 그 마음을 밝은 눈으로 받아주신 한겨레 기자님들과 따뜻한 눈으로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그 다정한 눈길들이 교차하는 곳, ‘한겨레S’에서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귀중함을 전할 수 있어 내내 기뻤습니다.
신지은 문화유산 칼럼니스트 박물관과 미술관의 문화유산 전시나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우리 문화유산을 사회 이슈나 일상과 연결하여 바라보며, 보도자료에는 나오지 않는 관람 포인트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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