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잘 죽을 권리가 있어"…타인의 고통에 가 닿는 방식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11. 3. 09:03
[귀에 쏙 취파] 귀에 쏙! 귀로 듣는 취재파일
이이의 소설이 이렇게 잘 읽혀도 되는 건가? 뒤늦게 '한강 읽기' 대열에 합류한 필자는, 한강의 소설이 생각보다 쉽게 읽히는 것이 어쩐지 꺼림칙합니다. "한강의 詩적인 문장들은 철저히 고통스럽게 읽혀야 한다"는 한 평론가의 글이 마음에 걸려서일까요.
한강의 소설은 고통을 말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이 그의 소설에 담겼습니다.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한강이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이 고통이었다고 하죠. 압도적인 고통. 석 줄 쓰고 한 시간 울고, 해가 질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다 오고.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울었다고 합니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이 문장에, 고통 대신 '죽음'을 넣어도 될 겁니다.
필자는 <씨네멘터리> 칼럼을 통해서만 세 번이나 죽음과 자기 결정권에 대한 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를 다뤘습니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영화는 이런 영화들 가운데 가장 우아한 영화입니다. 두 달 전 베니스영화제에서 이 영화제 사상 신기록인 18분간의 기립 박수를 받고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60년생 동갑내기 명배우인 줄리안 무어와 틸다 스윈튼이 주인공이어서만은 아니라고도 말하고 싶지만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성립하지 못했을 겁니다. 최소한, 이만큼 우아하게 고통과 죽음, 안락사의 문제를 바라보게 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라만차에서 태어난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첫 번째 영어 영화인 이 작품은 그가 악동이라 불리던 젊은 시절의 <페인 앤 글로리·Pain and Glory>를 거쳐 '그 옆방', 그러니까 <룸 넥스트 도어·The Room Next Door>에 도달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 방은 평온과 안식, 통찰이 있는 방입니다. 혹자는 생명에 대한 경시이고 인간의 권능 밖의 일이라고 말하겠지만 말입니다.
《룸 넥스트 도어》의 주인공인 마사는 뉴욕타임스의 베테랑 종군 기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자궁경부암 3기. 실험적 치료를 받아봤지만, 암은 기어이 간과 뼈까지 전이됐습니다. 앞으로 몇 개월, 길어봤자 1년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의사는 마사의 심장이 튼튼하다고 합니다. 마사의 몸은 계속 싸울 거란 뜻입니다. 고통받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하지만 마사는 고통스러운 치료 대신 존엄 있는 죽음을 원합니다. 마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난 잘 죽을 권리가 있어. 존엄을 지키며 퇴장할래. 깨끗하고 깔끔하게."
다크 웹에서 안락사 약을 구한 마사는 오래전 잡지사에서 함께 일했지만 일로 바빠서 한동안 왕래가 없었던 작가 잉그리드에게 자신의 이별 여행에 동행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자신이 죽을 때 옆방, <룸 넥스트 도어>에 있어 달라는 겁니다. 마사는 오랫동안 소원(疏遠)했던 딸한테는 말도 못 꺼냈고, 다른 지인들로부터는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평소 자신의 책을 통해서도 죽음이란 문제를 예민하게 고찰해 온 작가 잉그리드도 주저합니다. 모든 고통은 개별적이기 때문입니다.
마사는 교외의 한적하고 근사한 숲 속 주택을 한 달간 빌립니다. 벽에는 에드워드 호퍼의 '햇볕 쬐는 사람들'이 걸려있습니다. 마사와 잉그리드, 두 사람은 함께 그 집으로 떠납니다. 마사가 정확히 언제 안락사를 결행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마사는 방문을 열어 놓고 자는데, 어느 날 아침에 잉그리드가 일어나 마사 방으로 갔을 때 방문이 닫혀 있다면 그날이 바로 마사가 세상을 하직한 날입니다. 방문을 닫아놓고 잤다는 것, 그게 표시입니다. 잉그리드는 매일 새벽마다 가슴을 졸이며 마사의 방으로 다가가야 하는 겁니다.
《룸 넥스트 도어》는 전 미국 도서상 수상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 왓 아 유 고잉 쓰루(What are you going through)란 소설을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직접 각색한 영화입니다. 이 책의 프랑스어판 제목은 『당신의 고통은 무엇인가요?』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가 1942년에 쓴 글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영화 속 잉그리드도 마사의 고통과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잉그리드는 마사의 옆방에 있어주기로 합니다. 그것이 잉그리드가 다른 사람의 고통에 가 닿는 방식입니다.
작가 한강은 『소년이 온다』 출간 직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료를 읽으면서 제가 느낀 가장 강한 감정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무력감이었어요. 그래서 결국 저에게는 같이 겪자는 마음만 남았어요. 이 소설에는 누군가의 고통 때문에 고통받으며 그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나와요. 동호가 정대에게, 정대가 정미에게, 은숙은 동호에게, 진수는 동호와 영재에게, 선주는 동호와 성희에게. 그렇게 다들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고통에 몸을 기울이고 있어요. 타인의 고통을 감지해서 자신의 고통으로 삼을 수 있다는 건 인간의 고귀함을 증언하는 최후의 방어선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타인의 고통 때문에 생기는 개인적 고통, 그 지극히 감각적인 고통에 대해서 쓰고 싶었어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작별이 온다... 거장의 '옆방'에서 한강의 마음을.
한강의 소설은 고통을 말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이 그의 소설에 담겼습니다.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한강이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이 고통이었다고 하죠. 압도적인 고통. 석 줄 쓰고 한 시간 울고, 해가 질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다 오고.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울었다고 합니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이 문장에, 고통 대신 '죽음'을 넣어도 될 겁니다.
필자는 <씨네멘터리> 칼럼을 통해서만 세 번이나 죽음과 자기 결정권에 대한 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를 다뤘습니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영화는 이런 영화들 가운데 가장 우아한 영화입니다. 두 달 전 베니스영화제에서 이 영화제 사상 신기록인 18분간의 기립 박수를 받고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60년생 동갑내기 명배우인 줄리안 무어와 틸다 스윈튼이 주인공이어서만은 아니라고도 말하고 싶지만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성립하지 못했을 겁니다. 최소한, 이만큼 우아하게 고통과 죽음, 안락사의 문제를 바라보게 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라만차에서 태어난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첫 번째 영어 영화인 이 작품은 그가 악동이라 불리던 젊은 시절의 <페인 앤 글로리·Pain and Glory>를 거쳐 '그 옆방', 그러니까 <룸 넥스트 도어·The Room Next Door>에 도달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 방은 평온과 안식, 통찰이 있는 방입니다. 혹자는 생명에 대한 경시이고 인간의 권능 밖의 일이라고 말하겠지만 말입니다.
《룸 넥스트 도어》의 주인공인 마사는 뉴욕타임스의 베테랑 종군 기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자궁경부암 3기. 실험적 치료를 받아봤지만, 암은 기어이 간과 뼈까지 전이됐습니다. 앞으로 몇 개월, 길어봤자 1년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의사는 마사의 심장이 튼튼하다고 합니다. 마사의 몸은 계속 싸울 거란 뜻입니다. 고통받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하지만 마사는 고통스러운 치료 대신 존엄 있는 죽음을 원합니다. 마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난 잘 죽을 권리가 있어. 존엄을 지키며 퇴장할래. 깨끗하고 깔끔하게."
다크 웹에서 안락사 약을 구한 마사는 오래전 잡지사에서 함께 일했지만 일로 바빠서 한동안 왕래가 없었던 작가 잉그리드에게 자신의 이별 여행에 동행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자신이 죽을 때 옆방, <룸 넥스트 도어>에 있어 달라는 겁니다. 마사는 오랫동안 소원(疏遠)했던 딸한테는 말도 못 꺼냈고, 다른 지인들로부터는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평소 자신의 책을 통해서도 죽음이란 문제를 예민하게 고찰해 온 작가 잉그리드도 주저합니다. 모든 고통은 개별적이기 때문입니다.
마사는 교외의 한적하고 근사한 숲 속 주택을 한 달간 빌립니다. 벽에는 에드워드 호퍼의 '햇볕 쬐는 사람들'이 걸려있습니다. 마사와 잉그리드, 두 사람은 함께 그 집으로 떠납니다. 마사가 정확히 언제 안락사를 결행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마사는 방문을 열어 놓고 자는데, 어느 날 아침에 잉그리드가 일어나 마사 방으로 갔을 때 방문이 닫혀 있다면 그날이 바로 마사가 세상을 하직한 날입니다. 방문을 닫아놓고 잤다는 것, 그게 표시입니다. 잉그리드는 매일 새벽마다 가슴을 졸이며 마사의 방으로 다가가야 하는 겁니다.
《룸 넥스트 도어》는 전 미국 도서상 수상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 왓 아 유 고잉 쓰루(What are you going through)란 소설을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직접 각색한 영화입니다. 이 책의 프랑스어판 제목은 『당신의 고통은 무엇인가요?』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가 1942년에 쓴 글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영화 속 잉그리드도 마사의 고통과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잉그리드는 마사의 옆방에 있어주기로 합니다. 그것이 잉그리드가 다른 사람의 고통에 가 닿는 방식입니다.
작가 한강은 『소년이 온다』 출간 직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료를 읽으면서 제가 느낀 가장 강한 감정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무력감이었어요. 그래서 결국 저에게는 같이 겪자는 마음만 남았어요. 이 소설에는 누군가의 고통 때문에 고통받으며 그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나와요. 동호가 정대에게, 정대가 정미에게, 은숙은 동호에게, 진수는 동호와 영재에게, 선주는 동호와 성희에게. 그렇게 다들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고통에 몸을 기울이고 있어요. 타인의 고통을 감지해서 자신의 고통으로 삼을 수 있다는 건 인간의 고귀함을 증언하는 최후의 방어선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타인의 고통 때문에 생기는 개인적 고통, 그 지극히 감각적인 고통에 대해서 쓰고 싶었어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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