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디쓴 노동 끝 다디단 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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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수확의 계절이다.
지난주는 내내 수확의 기쁨을 누리느라 진땀을 흘렸다.
고개를 겸손히 숙이고 있던 벼는 일부는 낫으로, 나머지는 콤바인의 도움을 받아 수확했다.
감을 수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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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로 건시로 감식초로 만드느라 바쁘디바쁜 가을 갈무리
가을, 수확의 계절이다. 지난주는 내내 수확의 기쁨을 누리느라 진땀을 흘렸다. 땅콩, 고구마, 토란을 컴컴한 땅속에서 건져 햇빛을 비춰줬다. 율무를 땄다. 방수포에 들깨를 털었다. 후드득후드득 수백 수천 개의 깨 떨어지는 소리가 구수한 노래를 불렀다. 고개를 겸손히 숙이고 있던 벼는 일부는 낫으로, 나머지는 콤바인의 도움을 받아 수확했다. 땅콩과 고구마를 캐는데 보슬보슬 흙이 얼마나 보드랍고 곱던지. 지렁이가 토해낸 분변토는 작은 흙 알갱이가 되어 흙 위를 덮고 있었다. 흙은 시꺼멓고, 가을 산 내음이 흠뻑 스며들어 있다.
감을 수확했다. 높이 달린 것부터 낮게 달린 것까지 모두 땄다. 계속 고개를 들고 따야 했기 때문에 목의 고통과 눈부심이 상당했다. 원래는 서리 한 번 맞고 따야 맛있다는데, 약을 안 쳐서인지 일찍 익고 떨어지는 바람에 서둘러 따게 됐다. 감밭의 감은 대부분이 월하시고 일부는 대봉감이다. 월하시는 작고 뭉툭한 감이다. 곶감으로 먹는 감인데, 홍시로 먹어도 달고 맛있다. 대봉감보다 더 달다. 익어서 떨어질 것 같은 감은 바로 입으로 가져간다. 몰캉몰캉 달고 부드러운 것이 입으로 사정없이 넘어간다. 입가에 미소가 자연스럽게 맴돈다. 손과 입에 홍시가 묻지만 쪽쪽 빨아먹으면 그만이다.
수확한 감을 집에 가져와 분류했다. 일부는 팔고, 일부는 곶감으로, 일부는 식초로 만들기로 했다. 하나 남김없이 알뜰살뜰하다. 첫 수확에 비하면 훨씬 발전했다. 경남 밀양에 있을 때 전남 곡성 감밭을 사는 바람에 오래 머물 수 없어 많은 감을 다 따지 못하고 새의 먹이로 남겨둬야 했다. 인스타그램으로 올려 소량의 감을 팔았다. 매번 팔아달라는 사람은 많은데 조금밖에 팔지 못해 죄송스럽다. 2025년엔 기필코 많은 양을 팔아야겠다.
곶감에 도전했다. 곶감 걸이를 샀다. 딱딱한 감을 골라 하나씩 정성스럽게 깎는다. 깎은 감을 꽂이에 꽂아 걸이에 건다. 날씨가 중요하다. 조금이라도 습한 날에 곶감을 깎았다간 곰팡이가 필 수도 있다. 다행히 볕이 좋아 건조대에 걸어 말렸다. 저녁엔 들여와 제습기를 틀어놓고 애지중지 감을 말린다. 겉이 조금씩 말라가는 것 같다. 다음날에도 볕이 좋았다. 집 앞 현관문 앞에 대나무로 바를 만들어 곶감을 걸어두려 했다. 뒷산에 있는 대나무를 베어 집 앞에 걸었다. 곶감 걸이를 하나씩 거는데, 조금씩 대나무가 휜다. 결국 곶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대나무 바가 떨어져버렸다. 곶감 걸이에 걸려 있던 감들이 사방팔방 나뒹굴었다. 처참했다. 망한 건가. 망연자실하고만 있을 순 없다. 정신 차리고, 깨끗이 씻어 다시 말렸다. 애지중지 감을 말린 덕분인가. 다행히 쫀득쫀득 곶감이 잘되어가고 있다.
무르거나, 많이 익었거나, 먹기 곤란한 감은 잘 씻고 닦아 감식초로 직행한다. 20ℓ 유리병을 뒤집어 뜨거운 물로 소독한 뒤 물기를 잘 말린다. 병에 잘 씻어 건조한 감을 넣어주고 뚜껑을 닫아주면 끝이다.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최대한 많이 넣어야 한다. 서서히 물이 생기면서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오는데, 이것이 식초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식초는 시간이 만든다. 1년 정도 익힌 뒤 거른다. 뽀얀 식초가 걸러진다. 거르고 난 뒤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거무스레해지고, 익으면서 더 깊고 깔끔한 식초가 만들어진다. 매년 갈수록 더 깊어지는 감식초처럼 나의 농사 생활도 조금씩 깊어지길.
글·사진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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