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의 감성, 골프美학] 호모루덴스와 로제비앙, 그리고 'EDM 골프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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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루덴스(homo ludens)'란 말이 있다.
이 골프장에서 가을밤 'EDM 골프 파티'를 한다기에 어쩌면 세포 어디엔가 숨어 있는 놀이 본능을 깨우며 도착했다.
로제비앙의 가을밤 EDM 골프파티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인간 본능의 놀이문화와 채움과 비움의 철학적인 자연에 대해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호모루덴스, 로제비앙 골프장이 만들어 낸 가을밤의 'EDM 골프 파티'같은 놀이문화가 더더욱 창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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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루덴스(homo ludens)'란 말이 있다. '노는 인간' 또는 '놀이하는 인간'의 의미로 인간은 재미와 감동을 추구하는 본성이 감춰져 있다는 뜻이다.
이미 이슥하게 와있는 시월의 마지막 밤에 곤지암에 있는 로제비앙 골프장으로 향했다. 이 골프장에서 가을밤 'EDM 골프 파티'를 한다기에 어쩌면 세포 어디엔가 숨어 있는 놀이 본능을 깨우며 도착했다.
불어로 살다의 '로제'와 좋은 삶의 '비앙'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이곳은 이미 골프장 이름부터 인간의 놀이를 중요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역시 올여름 라비에벨 골프장에서 2개월간에 걸쳐 성공적으로 '듄스야 댄스夜!' EDM 파티를 진행해 더더욱 궁금했다.
시간이 되자 젊은 MZ들, 특히 여성 골퍼들이 다양한 드레스코드로 파티를 즐기기 위해 몰려들었다. 클럽하우스 테라스에서 진행되는 EDM파티가 정점에 이르고 정성스럽게 챙긴 음식들이 제공되면서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다.
"참 한국 사람들 즐길 줄 안다. 외국엔 이런 문화가 없다"라면서 함께 온 K대 교수가 "참 좋은 놀이 같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한국사람들처럼 놀이문화를 즐기는 민족도 드물다. 멀찍이 우리 농경 사회에서는 농사가 놀이와 민속신앙과 합쳐져 놀이하는 문화를 만들어 냈다. 그 DNA가 있어서 인가, 이 깊은 가을밤에 그동안 수고한 일주일을 보상받듯이 열광적으로 즐긴다.
파티가 끝난 후 각자의 지정된 코스 홀로 이동해 샷건으로 가을밤 야간라운드를 즐긴다. 골프는 낮에 즐겨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깊은 밤 메아리처럼 전해지는 '굿샷!' 소리와 웃음들이 어둠속에 별처럼 반짝인다. 티샷하려는 순간 숲에서 '후드득'하며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가끔은 낙엽이 바람에 날려 카트로에서 '사르륵' 소리를 내며 깊은 가을밤 귀를 쫑긋 시킨다.
잔칫날인 줄 알았을까. 이 소란스러움에 길고양이들이 숲에서 나와 고개를 갸우뚱한다. 만약 야간라운드를 하지 않았다면 이 숲속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골프장 숲속엔 다양한 동식물들이 살고 있었고 이 골프장과 숲을 키우고 있었다.
야간라운드가 아니었다면 밤새 숲을 깨우는 상수리 소리도, 알싸하게 얼굴을 때리며 지나가는 가을바람의 향기도 몰랐을 것이다. 골프장 코스엔 파란 구름대 신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들어왔고 빌딩에서는 보지 못했던 달이 아주 명징하게 비추었다.
그 뜨거웠던 여름 볕에 단단하게 잘 익은 것들을 다시 자연으로 보내는 소리가 아름답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점점 빽빽했던 숲은 알몸으로 변할 것이고 그 숲에서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낼 것이다. 모든 숲은 이제 성장을 멈추고 고요함을 택하는 겨울의 깊은 잠으로 빠질 것이다.
로제비앙의 가을밤 EDM 골프파티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인간 본능의 놀이문화와 채움과 비움의 철학적인 자연에 대해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반 9홀을 돌고 광장에 마련한 포차에서 마시는 '어묵 국물'이 깊어 가는 가을밤을 더욱 따듯하게 감싸온다. 서로에게 따듯한 순대와 어묵 그리고 떡볶이를 건네는 골퍼들의 눈빛은 이미 물아일체이다.
골프장은 종합예술공간이다. 감동이 있고 좌절이 있고, 희망과 삶에 대한 철학이 생성되는 곳이다. 골프코스를 지나다 잠깐 멈춰 하늘과 숲을 바라보자. 뒤척이는 억새와 잘 익은 홍시를 쪼아먹는 까치를 본 것만으로도 뻥 뚫린 가슴과 첫사랑의 아련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리고 우린 씨익 웃으며 다시 위로받은 자연에서 골프장을 떠나 또 새로운 내일에 뛰어든다.
호모루덴스, 로제비앙 골프장이 만들어 낸 가을밤의 'EDM 골프 파티'같은 놀이문화가 더더욱 창궐했으면 좋겠다.
글, 이종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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