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항일운동 주역 '장재성' 진실 규명될까…진화위 "아직 조사 중"
사회주의 이력 논란…유족 "하루 빨리 제대로 결정 내려주길"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주역인 장재성 선생(1908~1950)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1년 8개월여 동안 '조사 중'인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여러 자료와 일제 판결문까지 명백한 자료들이 남아 있음에도 지금까지 소위원회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은 장재성의 좌익 활동 이력 논란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11월 3일은 1929년 일어난 광주학생항일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날로 1919년 3·1 운동과 1926년 6·10 만세운동과 더불어 민중이 직접 들고일어난 3대 항일운동으로 일컬어진다.
1929년 10월 30일, 전남 나주에서 일본인 중학생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의 한국인 여학생 두 명의 댕기 머리를 잡아당겨 희롱했다. 이 일로 일본인 학생과 한국인 학생들 사이에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고 평소 일제에 의해 차별과 억압을 경험하던 한국인 학생들은 이를 계기로 11월 3일 대대적인 항일시위를 전개했다.
초기부터 광주에서 학생독립운동을 계획하고 시위 확산을 주도한 이들 중 한 명이 바로 장재성이다. 당시 광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장재성은 '독서회 중앙부'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해 광주 지역 내 학생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항일시위로 인해 70여 명의 한국인 학생들이 체포되자 장재성은 광주청년동맹 간부들과 함께 전국적, 조직적인 항일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고 독서회를 중심으로 지역 내 학생 시위를 지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광주에서 촉발된 학생항일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무려 5만 4000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3·1 운동 이후 국내 최대 규모였다. 이로 인해 1929년 11월 일제에 구속된 장재성은 1심에서 징역 7년형, 항소심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1934년 출소했다.
하지만 장재성은 해방 이후 좌익 활동 이력을 이유로 지금까지 독립유공자 국가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장재성은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 위원 등을 역임하다가 1948년 8월 황해도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 인민대표자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회의에서 선출된 대의원들은 이후 북한 정권 수립을 지지하는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다만 대의원 명단에 장재성 이름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광주로 돌아온 장재성은 같은 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광주 형무소에 복역 중 6·25 전쟁이 발발하자 국군이 후퇴하면서 시국사범으로 몰려 총살당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유족들로부터 장재성 사건을 신청받아 지난해 2월 말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뉴스1> 취재 결과 1년 8개월 넘게 지난 지금까지 아직 진실화해위 소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장재성 사건과 관련해 "아직 조사 중이고 소위원회와 전체회의에 걸쳐서 (진실규명 여부가) 결정되면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2기 진실화해위 임기가 7개월도 채 남지 않은 만큼 신속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족들이 진실화해위에 가장 바라는 것은 명예 회복이다. 장재성의 손자 장 모 씨는 뉴스1에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제강점기에 실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독립운동인데 거기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하셨던 할아버지가 제대로 평가되고 그에 대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장 씨는 "좌익 관련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독립유공자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세상이 바뀌어가는 만큼 하루빨리 진실화해위가 제대로 된 결정을 내려서 선대가 독립운동을 한 일을 제대로 평가받고 싶다"고 강조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11월 사회주의 활동 이력을 가진 독립운동가 채충식 사건도 항일운동 사실을 확인해 진실 규명을 결정한 사례가 있다.
채충식은 일제강점기 언론인으로서 신간회 칠곡지회 창립을 주도하고 민족독립운동을 고양하기 위한 여러 활동을 했지만 해방 이후 사회주의 활동을 한 것이 문제가 돼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다만 진실화해위가 독립운동 사실을 규명하더라도 국가보훈부의 유공자 서훈은 별개로 추진되지 않을 수도 있다. 독립유공자법 39조에 따르면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로 금고 이상 실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된 경우 독립유공자 적용 대상에서 배제된다.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독립운동 서훈은 공식 이름이 대한민국 건국훈장이라 해방 이후 행적에 반국가 활동이 있었다면 대한민국 이름으로 포상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라며 "김원봉 선생도 독립운동사에 걸출한 이름을 남긴 분이지만 결국 포상이 안 됐다"고 설명했다.
hy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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