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도 계급전쟁…벤츠·BMW가 샤넬이면 포람페는 에르메스, 제네시스는? [세상만車]
계급전쟁 원인, 파노플리·밴드왜건·스놉
페라리의 역설, 차주 아닌 차에 반했다
등골 브레이커 논란을 일으킨 ‘패딩 계급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보복소비로 주목받은 ‘명품 계급도’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흑백요리사는 러닝 바람에 영향을 줘 ‘러닝화 계급도’까지 탄생시켰다고 하죠.
사실 근현대 ‘제품 계급도의 원조’는 자동차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신분과 계급이 혼동돼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개인이 사회에서 처한 상황에 따라 나뉘는 계급과 달리 신분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집니다.
혼동돼 사용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흙수저(흑수저) 성공신화가 극히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진짜 신화’가 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부모 계급은 자식 신분으로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상류층이 의식주 못지않게 자신의 신분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난 너희들과 달라”라는 위압감을 말없이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미국 포드가 대량생산(포디즘)으로 자동차 대중화 길을 개척한 뒤에는 브랜드나 차종이 신분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브라만(승려), 크샤트리아(귀족·무사), 바이샤(평민·상인), 수드라(수공업자·노동자), 불가촉천민으로 사람 신분을 결정했던 인도 카스트(Caste) 제도처럼 ‘자동차 카스트’가 등장한 셈입니다.
여전히 경제력, 신분, 직위에 따라 탈 수 있는 차종이 달라지는 카스트 유산은 죽지 않고 살아있습니다.
자동차 카스트는 ‘계급도’가 나올 정도로 명품 선호도가 심한 한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구입할 때 ‘이왕이면 크고 비싼 차’를 선호하며 가격, 크기, ‘하차감’(내릴 때 느끼는 만족감)에 집착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성향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카푸어(car-poor)를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지만 목돈 없이도 고가 수입차를 살 수 있게 해주는 금융상품, 회사 돈을 내 돈처럼 쓰게 만든 허점 많은 법인차 제도 등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줬습니다.
요즘은 ‘벤츠 탄다’, ‘포르쉐 탄다’ 등으로 표현했지만 당시에는 ‘수입차 탄다’는 말이 대세였습니다.
수입차 판매가 늘면서 “난 달라”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졌습니다.
강남에서 현대차 쏘나타처럼 많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강남 쏘나타가 렉서스 ES에서 벤츠 E클래스와 BMW 5시리즈로, 그 다음에는 포르쉐 파나메라로 넘어간 이유입니다.
“난 너희와 달라”를 추구하다 보니 더 폼나고 더 비싼 수입차 선호도가 높아졌고, 자연스럽게 수입차에도 계급도가 암묵적이지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명품 레벨 중 프리미엄에는 프라다·구찌, 프레스티지에는 디올·펜디, 하이엔드에는 샤넬·고야드·루이비통, 엑스트라 하이엔드에는 에르메스가 있습니다.
폭스바겐과 미니는 에브리데이~프리미엄, 벤츠·BMW·아우디는 프리미엄~하이엔드에 걸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포르쉐는 프레스티지~하이엔드, 람보르기니·페라리·벤틀리·롤스로이스는 하이엔드~엑스트라 하이엔드에 속한다고 판단할 수 있겠죠.
수입차는 아니지만 제네시스도 명품 계급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죠. 국내에서는 하이엔드 샤넬급 대접입니다. 해외에서도 샤넬급 인지도를 쌓고 있습니다.
계급전쟁은 베블런·밴드왜건·파노플리·스놉 효과 때문에 발생합니다.
‘털 없는 원숭이’로 유명한 인류·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에 따르면 ‘자칭’ 신분·계급이 높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말없이 남들에게 자신의 서열을 알릴 수 있는 ‘무언의 도구’를 찾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만 소유할 수 있다고 자랑할 과시용 도구입니다. ‘의식주’ 가리지 않습니다. 끼리끼리 사교모임도 만들어 과시용 도구를 그들만의 유행으로 만듭니다.
사회적 지위나 부를 과시하기 위해 가격이 더 비싼 물건을 흔쾌히 구입하는 베블런(veblen) 효과가 발생합니다.
밴드왜건·파노플리 효과가 나타납니다. 밴드왜건 효과는 일부 부유층에서 시작한 과시 소비를 주위 사람들이 따라 하면서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편승 효과’입니다.
파노플리 효과는 특정 계층이 소비하는 상품을 구입해 해당 계층에 자신도 속한다고 여기는 현상을 뜻합니다. 상품이 사람을 평가한다는 생각이 그 바탕에 있죠.
자칭 높은 신분·계급의 사람들은 모방자가 많아지면 접근하기 좀 더 어려운 유행을 계속 만들어 “난 달라”를 추구합니다.
여기서는 스놉(snob) 효과가 위력을 발휘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구매하면 오히려 그 재화나 상품을 구매하지 않고 차별화를 시도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사회학에서도 ‘효과’를 쓰지 않았을 뿐 사실상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명저 ‘소비의 사회’로 유명한 프랑스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인들은 물건을 소비할 때 사용 가치가 아니라 기호 가치를 구매한다”고 밝혔죠.
그는 현대인의 소비는 계급과 계층에 따라 목적이 달라진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상류층이나 부자는 남들과 뚜렷이 구별될 수 있는 ‘달아나기 소비’, 중산층 이하는 상류층과 차이나지 않거나 동질적 연대감을 느끼기 위해 ‘따라가기 소비’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베블런·밴드왜건·파노플리·스놉 효과를 좀 더 쉽게 설명한 셈입니다.
당연하겠지만 기업들은 이 소비심리를 홍보·마케팅·판매 전략으로 철저하게 활용합니다.
올해는 상황이 더 좋지 않습니다. 롤스로이스만 살짝 성장했을 뿐 샤넬·에르메스급 수입차 브랜드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죠.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실적을 분석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올해 1~9월 수입차(테슬라 제외) 판매대수는 17만1114대로 집계됐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5% 감소했죠.
국내 수입차 시장을 주도하는 ‘샤넬급’ 독일차 브랜드는 전년동기보다 판매대수가 14.2% 줄었습니다.
수입차 판매 1위인 BMW가 전년동기보다 3.6%, 벤츠가 11.6% 각각 감소한 게 타격을 줬습니다.
BMW·벤츠와 함께 ‘샤넬 독일차’에 해당했던 아우디는 53.7% 급감했습니다. 지난해 연간 1만대 판매 클럽에 가입했던 포르쉐도 32.7% 줄었습니다.
‘에르메스급’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도 각각 전년동기보다 40.5%와 57.9% 감소했습니다. 람보르기니는 전년동기보다 2.2% 판매가 늘었지만 대수로 보면 7대 많이 팔렸을 뿐입니다.
샤넬 이상급 수입차 판매가 감소했으니 계급전쟁도 종전을 향해 갈까요. 아닐 겁니다. 오히려 기존·신규 구매자에게는 희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경기가 어려울 때 돈 쓰는 맛이 난다고 하죠. 그만큼 더 높은 계급을 더 뽐낼 수 있고 대접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우절은 “당신이 멋진 차(페라리)를 몰고 있을 때 사람들은 당신을 보지 못한다. 당신의 차에만 감탄할 뿐이다. 아무도 당신의 물건을 보고 당신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남들이 꿈조차 꾸기 어려운 비싼 차를 탈 때 기대하는 ‘플렉스’(Flex) 효과는 사실상 없다고 풀이할 수 있죠.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남들에게 존경받고 싶다고 비싼 차를 사지는 마세요. 꼼수를 써가며 연두색 번호판이 없는 비싼 법인차를 살 필요도 없습니다.
만약 좋은 차를 샀다면 그 자체로 자신만 만족하면 될 뿐 남들에게 과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남들도 차가 아닌 차주를 존경해주지 않을 테니까요.
정말 존경받고 싶다면 차종이 아닌 인성이 고급져야겠죠. “차가 아닌 사람이 명품”이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 사람이 타는 차도 차종과 가격에 상관없이 좋아보인다고 하죠. 기아 레이를 타고 다니며 달동네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는 ‘회장님’이 떠오릅니다.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이죠.
반대로 차만 명품이라면 이런 말을 ‘칭찬처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벌써 듣고 있는 사람들도 많겠죠.
“진짜 차(만) 좋네요”
*PS : 갑자기 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운전·주차 빌런’이 생각납니다.
‘인성 가치’는 엉망이지만 그들의 행동은 ‘기사 가치’가 매우 뛰어나 기자들이 정말 좋아합니다.
자동차 브랜드명이나 차명이 ‘빌런’ 앞에 붙은 제목도 독자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습니다. 독자들도 열광합니다. 댓글도 진짜 많이 달립니다.
이 자리를 빌어 이 분들께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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