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전 4번, TSMC 공장 미국행… ‘탈원전 8년’ 대만의 3중고
탈원전 이후 4차례 대정전, 올 2분기도 43.3% 급증
원전 재개 모색하지만 집권당 내 이견, 전문 인력 부족 등 난제 겹겹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과 함께 탈원전에 돌입했던 대만이 새 정부 출범 이후 탈원전 탈출을 모색 중입니다. 인공지능(AI) 열풍과 반도체 호황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원전 없이 버텨내기가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에요.
대만은 우리나라처럼 제조업 중심 산업 구조를 갖고 있고 무역 의존도가 높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중요합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원전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경제성도 뛰어난 청정에너지로 꼽히고 있죠.
줘룽타이 대만 행정원장(총리)은 10월29일 입법원(의회) 답변에서 “정부도 국제적인 추세 변화를 모르지 않는다”면서 “미래 새로운 원전 기술에 대해서는 개방적인 자세로 논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기존 탈원전 정책에 따라 내년까지 예정된 원전 폐쇄는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했어요. 탈원전은 전임 차이잉원 총통 때부터 집권 민진당의 핵심 정책이었던 만큼 정치적으로 이를 뒤집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당내 합의가 필요한데 여전히 반대가 적잖다고 해요.
◇AI 폭발에 전력 수요 매년 3%씩 증가
라이칭더 총통은 지난 5월 취임한 이후 탈원전 정책의 변화를 시사했습니다. 국가기후변화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전자업체 페가트론그룹 퉁쯔셴 회장 등 원전 재개 주장 인사를 다수 영입했어요. 줘 행정원장도 7월말 닛케이 인터뷰에서 AI와 반도체산업에 필요한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030년 원전 재개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습니다.
기업인 출신인 궈즈후이 경제부장관도 지난 6월 입법원(의회)에 출석해 “매년 전력수요가 2.7%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사정이 달라졌다”면서 “AI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앞으로 10년간 매년 전력 수요가 3%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탈원전 정책 폐기에 대해서는 “경제부는 집행 기관일 뿐이며 입법원이 결정할 일”이라고 물러섰어요. 당내 컨센서스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대만은 탈원전 정책에 따라 2018년부터 작년까지 총 4기의 원전을 폐쇄했어요. 올 7월에는 제3원전 1호기 가동이 중단됐고, 내년 5월에는 2호기도 문을 닫습니다. 제4원전은 2021년 국민투표에서 상업 발전 방안이 부결돼 공정이 90% 이상 진행된 사태에서 공사가 중단됐어요. 내년이면 사실상 탈원전이 완성됩니다.
◇2분기 정전 작년보다 43% 늘어
탈원전이 시작되기 전 대만 발전량에서 원전 비중은 12% 정도였어요. 이 비율이 작년 6.3%로 감소했고, 올해는 3%까지 떨어집니다. 내년에는 0%가 되겠죠.
차이잉원 정부는 2025년 탈원전을 완성하면서 석탄·가스 화력발전 80%,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20%로 전력 구조를 개편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작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9.5%에 불과했어요. 내년까지 20%로 늘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국토가 좁아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자원에 한계가 있는 거죠.
원전 대체를 위해 가스발전소를 대거 건설한 것도 문제입니다. 작년 기준 전체 발전량의 44.1%를 가스발전소가 차지했어요. 대만은 천연가스의 97%를 수입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독일이 겪은 것처럼 국제 가스 가격 폭등과 공급난 등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 거죠. 가스 가격 상승에 따라 대만전력공사의 적자가 누적돼 올해 대규모 산업용 전기요금을 15% 인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거의 줄어들지 않아 2050년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해요.
탈원전이 시작된 이후 대만은 만성적인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어요. 수백만 가구가 피해를 본 대규모 정전사태가 4차례나 일어났습니다. 올 6월에도 엔디비아, 폭스콘 등이 입주해있는 타이베이 네이후 과학단지 일대에서 정전이 발생했어요. 올 2분기(4~6월) 정전 발생건수는 작년 2분기에 비해 43.3%나 증가했습니다.
◇미 AIT 대표 “TSMC, 전력난에 미국에 투자”
탈원전이 완성되는 내년은 더 어려워진다고 해요. 대만전력 쩡원성 회장은 “대만은 에너지 수급에 있어 큰 도전에 직면했다”면서 “앞으로 3년간이 큰 고비로 야간 전력설비예비율(발전설비 용량 대비 최대 전력수요)이 7~8%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전력설비예비율이 10% 아래로 떨어지면 정전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고 해요.
대만의 전력난은 국제적인 조롱거리입니다. 대만 주재 대사 격인 레이먼드 그린 미국재대만협회(AIT) 신임 대표는 10월말 대만 유튜브 채널 대담에서 ‘TSMC의 미국 투자로 대만 반도체산업이 공동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는 질문이 나오자 “TSMC가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는 건 미국이 압박해서가 아니다”면서 “대만의 전력과 노동력, 수자원, 특히 신재생에너지가 부족해 기업 스스로 반도체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투자를 선택한 것”이라고 했어요. 젠슨 황 엔디비아 최고경영자(CEO)도 “AI 수요가 폭발하는 상황에서 대만의 전력난은 확실히 큰 도전 과제”라고 했습니다.
◇원전 전문 인력 6년 새 26% 줄어
8년간 계속된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전문 인력이 대거 빠져나간 것도 골칫거리에요. 정책 전환을 결정하더라도 원전 재개까지는 5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대만전력공사 원전사업부 인력은 2018년 2529명에서 올해 4월 1871명으로 26%가 줄었어요. 남은 기술자도 고령 인력이 다수입니다. 연구 인력을 교육하는 국립 칭화대 공정시스템 학부의 원자력 전공자는 학년당 10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해요. 그마저도 졸업 후에는 원전이 각광받는 미국 등으로 유학을 간다고 합니다. 대만 정부는 소형모듈원전(SMR) 등 미래 신기술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하지만, 무슨 인력으로 하겠다는 거냐는 비판이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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