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저리나게 안된다고만 외쳤다”...그랬더니 버핏의 오른팔이 된 남자 [Books]

이향휘 선임기자(scent200@mk.co.kr) 2024. 11. 3.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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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의 절친’ 故 찰리 멍거
웬만한 기회는 단칼에 거절
확신 들때만 과감하게 베팅
“우량기업 적당한 값에 사야”
효과적 재테크 지름길 제시
버크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좌)과 생전 찰리 멍거 부회장(우) [사진 = 연합뉴스]
2004년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총에서 한 젊은 주주가 물었다.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한 조언이나 원칙을 말해달라고.

워런 버핏이 답했다. “돈이나 사회적 지위보다 깊이 있는 인간관계가 성공적인 삶을 좌우합니다.” 옆에 있던 찰리 멍거도 말을 보탰다.

“코카인을 하지 마세요. 열차와 경주하지 마세요. 에이즈에 걸릴 상황을 피하세요.”

그의 가벼운 답변에 관중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이 말엔 유머를 가장한 묵직한 삶의 통찰과 지혜가 서려 있다. 파멸적 재난을 부르는 충동적 선택을 하지 말고 외부의 압박이나 경쟁에 휘둘리기보다는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99세로 삶을 마친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엔 생전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투자 귀재’ 워런 버핏과 60년을 함께 한 투자 파트너였기에 ‘버핏의 오른팔’ ‘최고 절친’, ‘영혼의 단짝’, ‘샴쌍둥이’ 혹은 ‘조용한 동업자’로 불리었다.

그보다 여섯 살 어린 버핏이 무대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그는 그림자처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사석에선 적극적인 투자 조언과 날 선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버핏이 그를 ‘진저리나는 노맨(abominable no-man)’이라고 부른 이유다. 그는 웬만한 투자 기회도 가차 없이 거절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2018년 인터뷰 중인 찰리 멍거 당시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 [AP = 연합뉴스]
찰리 멍거가 남긴 유일한 책이자 마지막 책인 ‘가난한 찰리의 연감’이 국내 출간됐다.

미국 복합 기업이자 투자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를 시가 총액 1조달러에 육박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시킨 찰리 멍거의 인생 스토리와 그가 남긴 강연 등을 엮은 책이다. 책 제목은 벤저민 프랭클린의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실제로 멍거는 그리 가난한 유년기를 보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연방 판사였고 아버지 또한 돈 잘 버는 변호사였기 때문이다.

1924년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출생으로 소년 시절 대공황을 겪었으며 미시간대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공군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 있는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열역학과 기상학을 배웠으며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나이 서른 다섯이었을 때인 1959년 스물아홉인 버핏과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고향인 오마하에서 열린 디너파티에서였다. 둘은 사업과 금융, 역사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폭넓은 대화에 빠져들었다. 그것이 계기가 돼 전화와 장문의 편지를 통해 교류했고 결국 버핏의 동업 제안을 받아들였다.

찰리 멍거는 가치투자로 압축되는 버핏의 투자 철학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수학과 공학, 물리학, 법학 등 다양한 학문을 깨친 그는 투자 방식 역시 다학문적 접근법을 따른다. 거대한 학문의 거대한 사상을 활용한 독자적 시스템을 개발했다. 수학의 복리 모형에서 과학과 공학, 생물학과 생리학을 결합했고 여기에 심리학마저 중요하게 생각했다.

심리학이 왜 중요하냐는 질문에 그는 “뇌가 특정한 방식으로 오판하도록 유도하면 실제로는 없는 것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주식 시장을 ‘미스터 마켓’이라 불렀다. 매일 찾아오는 조울증 환자로 여겼다. 효율적 시장 이론을 극단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을 ‘또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데올로기에 심취한 사람들도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며 멀리했다.

가난한 찰리의 연감, 찰리 멍거 지음, 피터 코프먼 엮음, 김태훈 옮김, 김영사 펴냄
뒤집기는 그가 통찰을 얻는 독특한 방법이다. 나쁜 판단의 사례를 수집한 다음, 그런 결과를 피할 방식으로 올바른 판단을 추구했다. 딸인 웬디 멍거는 “아버지의 전문 분야는 추락담이었는데, 저녁 식사 도중 너무나 극단적이고 끔찍한 사례를 들어 교훈을 설명하는 데 독보적인 경지에 올라 있었다”고 회상했다.

멍거의 투자 방식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신속하게 제거하고, 능숙한 다학문적 접근법으로 남은 것들을 공략하며, 올바른 여건이 충족되었을 때에만 결단력 있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버크셔 해서웨이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것은 가장 뛰어난 통찰 10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그의 고백은 많은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다는 것, 또한 확신이 들 때만 통 크게 베팅하는 것이 부자가 되는 지름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자 대상은 가이코와 코카콜라, 질레트 같은 우량 기업에 초점을 맞추는 투자로 옮겨갔다. 1973~1974년 워싱턴포스트에 투자해 50배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아주 좋은 기업을 적당한 가격에 사는 것이 적당한 기업을 아주 좋은 가격에 사는 것보다 낫다”는 관점을 유지했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은가. 멍거라면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삶에서 진짜 실패란 무엇일까, 무엇을 피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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