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용 쇠기름이 식품에?"…'불닭볶음면' 탄생 못할 뻔한 그때 그 사건[뉴스속오늘]

김소연 기자 2024. 11. 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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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삼양식품의 최초의 라면/사진=유튜브 갈무리

'불닭볶음면'으로 한국 뿐 아니라 글로벌 K푸드 열풍을 이끄는 삼양식품. 삼양식품은 국내 최초의 라면 기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삼양식품이 한 때 정부에 의해 폐업 위기까지 몰린 적이 있었다. 식품업계에 전설처럼 회자되는 '우지 파동'이다.

검찰에 날아든 한 장의 투서…'우지 파동'의 시작
1989년 11월3일, 공업용 '우지(쇠기름)'로 면을 튀겼다는 익명의 투서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날아들었다.

제보를 접수한 검찰은 미국에서 비식용 우지를 수입한 삼양식품, 오뚜기식품, 서울하인즈, 삼립 유지, 부산유지 등 5개 업체를 적발하고, 회사 대표와 실무 책임자 등 10명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 입건했다.

발단은 투서..비식용 사용에 초점/사진=조선일보 캡처


검찰이 문제 삼은 것은 이들 식품업체가 라면을 튀기거나, 마가린, 쇼트닝을 만드는 데 원료로 쓰는 '우지(쇠기름)'가 공업용으로, 사람이 먹기에 부적절한 '비식용'이라는 점이었다.

당시 미국 우지협회는 우지 등급을 1~16등급까지 나누고, 1등급 우지만 바로 먹을 수 있는 '식용 우지'로 분류했다.

한국 식품업체들은 2~3등급 우지가 1등급 우지에 비해 품질은 좀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해 정제하면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 미국서 수입해 정제해 식품에 쓰고 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식품업계가 정제해서 사용함에도 불구, 2~3등급 우지 자체가 '비식용'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식품업체들이 '식품공전 원료조항'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다고 기소했다. 시장에서 수거된 라면 제품도 100억원대에 이르렀다.

문제의 식품공전 원료조항은 우지를 쓸 때 "소의 지방조직은 품질이 양호하고 신선한 것이어야 한다. 원료는 흙, 모래, 짚 등과 같은 불순물이 충분히 제거된 것이어야 한다. 원료는 품질 변화를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으로 보관·관리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충분히 제거' 등 다소 추상적이었던 조항이 논란을 확산했다.

수거되는 라면들/사진=유튜브 갈무리


식품업체들은 갑작스런 사법 조치에 즉각 반발했다. 특히 1980년대 한국은 경제 성장 속 라면 시장도 그에 맞춰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었다. '라면의 원조'격이었던 삼양식품이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삼양식품 측은 "우지를 써서 라면으로 제조해 온 건 20년 전부터다. 국민에게 동물성 지방을 보급한다는 취지에서 우지를 수입하고 정제해 식용 우지로 사용할 것을 정부에서 권장하고 추천했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우지 단가가 더 비싼데도 써왔다고 주장했다. 삼양 측은 "1989년 우지 수입 단가가 팜유 수입가보다 톤당 100달러가 비싼데도 불구하고 우지를 써왔다"면서 "우지나 팜유를 비롯한 식물성 유지들은 원유 상태에선 비식용"이라고 주장했다.

"괜찮아" 보건사회부 해명에도 싸늘한 대중

우지파동이라고 적혀 있다.

우지 파동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여론은 싸늘해졌고, 소비자단체들은 잇따라 성명을 내고 식품업체들의 사과를 요구했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원유 상태의 비식용 우지'와 '공업용 우지'는 어감부터 달랐다.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에 나섰다. 라면뿐만 아니라 우지가 원료로 사용된 유탕제품, 즉 과자와 튀김, 통닭 등을 모조리 안 먹기 시작하면서 해당 제품 매출이 급감했다. 우지 파동은 해외 외신에까지 보도될 정도로 파장이 컸고, 한국 식품에 대한 불신을 키우기도 했다.
결국 보건사회부(현재 보건복지부)가 등판했다. 보건사회부는 그해 8월 말까지 라면 341개 제품, 마가린과 쇼트닝 113개 제품에 대한 조사를 벌인 결과, 규정에 어긋나는 제품은 없었다고 밝혔다.

즉, 해당 기름이 인체에 무해하다고 밝혀 식품업계의 무고함을 밝혀준 셈이다. 이는 기존 검찰 발표를 뒤집는 결과로, 부처 간 갈등하는 모양새가 됐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이미 식품에 대한 불신이 커진 상황이었고, 보건사회부의 발표도 쉽게 믿지 않았다. 불매운동은 지속됐고, 삼양라면 재고는 쌓여갔다. 외신에 보도된 터라 해외 수출길도 막혔다.

삼양식품, 업계 2위서 4위로 추락…폐업 위기 몰리기도

우지파동과 관련해 무죄를 받은 내용을 보도한 신문기사들./사진=네이버아카이브

1989년 벌어진 우지파동에 대한 법적 다툼은 1997년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리기까지 8년이나 이어졌다.

이로 인해 라면산업 전체가 타격을 입었다. 특히 가장 중심에 있던 회사, 삼양식품은 폐업 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

우지 파동 전인 1988년, 라면 시장 점유율은 농심 54%, 삼양 26%로 삼양식품이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우지 파동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삼양식품은 2010년대 오뚜기와 팔도에까지 밀려 점유율 4위로까지 주저앉았다.

우지파동이 무죄를 선고받은 후 뉴스 보도/사진=MBC 캡처


이에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1위였던 농심은 동물성 기름인 우지가 아닌, 식물성 기름 '팜유'로 라면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농심 측 관계자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삼양식품이 우지 파동으로 손해를 본 것은 맞지만, 농심이 이미 시장 점유율 1위였기 때문에 굳이 이 같은 음모를 꾸밀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 현재 지배적인 의견이다.

해당 사건 이후 라면 시장에서 동물성 기름은 자취를 감추고 식물성 기름인 팜유가 대다수를 차지하게 됐다. 일반 가정과 식당에서 사용하는 식용유 역시 콩기름, 해바라기유 등 식물성 지방이 대세가 됐다. 맛으로 따지면 '돼지기름' 등 동물성 기름이 더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돼지기름, 쇠기름을 쓰는 식당은 이제 중식당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행사에서 페리 승객들이 불닭볶음면을 맛보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1


다만, 삼양식품은 '진격의 불닭볶음면'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K팝 열풍과 함께 K푸드 열풍을 이끌면서 시가총액으로는 시장 1위인 농심을 뛰어넘었다. 10월 말 기준 농심 시가총액은 2조2000억원대인데 반해, 삼양식품 시가총액은 3조9000억원을 넘어선다.

김소연 기자 nicks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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