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사회 영향력 키우는 中…"美, 대응책 마련해야"
'다자 간 체제'(Multilateral System, 유엔이나 세계무역기구(WTO)처럼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다수의 국가들이 참여해 합의와 제도를 통해 운영되는 조직과 질서)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어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다자 간 체제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전략적 파트너십과 리더십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자 간 체제를 형성하는 국제기구는 글로벌 거버넌스와 합의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러한 체제에서 미국은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활용해 의제를 설정하고 서구적 가치를 옹호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빠르게 성장한 중국의 다자 간 기구 참여와 영향력도 급증했다.
특히 유엔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가 두드러진다. 2021년 기준 15개 주요 유엔 기관 중 국제식량기구(FAO),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를 중국인이 이끌고 있다. 유엔에 고용된 중국인도 2022년 기준 1564명으로 2009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개발협회, 국제농업개발기금, 세계식량계획, 유니세프 등에 대한 중국의 기여금도 지난 10년 동안 4배 이상 늘었다.
CSIS는 "주요 직책을 맡은 중국인은 유엔에서 중국의 전략적 위치와 글로벌 정책의 우선순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록 중국의 자금 지원은 미국 수준에 못 미치나 다자 간 체제에서 미국이 하지 못한 방식으로 자금과 인력을 동원해 자국의 이익을 확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외교적으로도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저위도, 남반구의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와의 전략적 교류를 통해 다자 간 체제 내에서 지정학적 이익을 확대해왔다는 평가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이슬람개발은행((IsDB) 같은 플랫폼을 통해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의 개발에 필수적인 경제 지원과 인프라 개발 투자에 참여하고, 파트너십을 구축해 서방 주도 금융기관을 대체하고 있다. 또 미국이 그동안 방치한 아프리카 지역에서 미국보다 많은 53개의 대사관을 설립하고, 군과 경찰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 고위급 인사들과의 상호 교류를 통해 전략적 이익을 확대했다.
이처럼 중국과 글로벌 사우스가 정치·경제적으로 깊이 연계될수록 인권 침해, 민주적 거버넌스, 영토 분쟁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미국과 서방 주도의 노력이 약화한다는 우려가 커졌다.
CSIS는 "중국이 주도하는 이러한 변화는 다자 간 체제에서 힘의 균형을 교란시켜 미국과 서방의 이니셔티브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약화시킨다. 그 결과 글로벌 거버넌스가 무력화되고 중요한 글로벌 문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워지면서 국제질서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CSIS는 미국이 다자 간 체제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견제하고 잃어버렸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다양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국제기구 및 지역 대표부와 미국 내 본부 간 정기적 소통채널 구축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글로벌 사우스 각국의 국내 환경과 특정 요구 사항, 중국과 협력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그들과 양자 및 다자 관계를 강화할 수 있다는 이유다. 또한 국제 외교무대에서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강화화기 위해 전문 훈련 프로그램 개발과 인센티브 등 외교단(국가를 대표하는 모든 외교사절)에 대한 투자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유엔에서 영향력 있는 회원국과 전략적 교류 강화로 미국의 리더십과 인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대응책도 제시됐다. 라틴아메리카 지역 강대국인 브라질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거나 남아시아의 파키스탄을 안보와 테러 방지, 경제 개발 대화체에 참여시키는 것 등을 통해서다.
보고서에는 이외에도 다자 간 기구 내 주요 직책에 대한 미국 후보자 지원, 다자 간 기구를 통한 해외경제개발 투자 확대, 새로운 상임이사국 선출을 포함한 유엔 시스템의 현대화, 유엔에 대한 기여금 확대 등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반영됐다.
CSIS는 "미국 정부는 다자 간 체제에서 확대된 중국의 지배력에 대응하면서 미국의 가치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글로벌 사우스에서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미국은 글로벌 이슈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촉진하며 글로벌 국제관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희 기자 ksh15@mt.co.kr 최성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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