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이 쏘아올린 공, 썩었던 배드민턴협회-체육 관행을 없애다 [스한 위클리]

이재호 기자 2024. 11. 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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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누구보다 칭찬받아 마땅했다. 1996 방수현에 이어 28년 만에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을 대한민국에 안겼고, 그 가치는 단연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이 딴 모든 메달 중 가장 값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안세영(22)은 금메달을 따자마자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그동안 참아왔던 배드민턴협회의 부조리, 한국 체육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폭로했다. 그러자 안세영의 금메달보다 오히려 폭로에 더 초점이 맞혀졌고 여론은 들끓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자격을 갖추고 말하자 국민들은 안세영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다. 안세영이 쏘아올린 공은 3달 가까이 이뤄진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 끝에 썩어있던 배드민턴협회의 비리를 밝히고 한국 체육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됐다.

ⓒ연합뉴스

▶문체부 감사 최종 발표의 핵심

문화체육관광부는 10월31일 3달간 진행된 배드민턴협회 감사 결과를 최종 발표했다. 단순히 배드민턴협회 감사뿐만 아니라 한국 체육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감사도 이뤄졌고 수정 권고사안도 들어갔다.

먼저 선수의 부상관리체계를 대폭 개선하겠다는 것. 부상 진단부터 재활치료까지 선수 개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선수가 원하는 의료기관에서 부상관리를 하게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와 연계돼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 의료인력과 공간 확충을 하겠다고 문체부는 약속했다.

배드민턴뿐만 아니라 전종목에 걸쳐 선수가 개인 트레이너를 쓰고 이들이 국가대표 훈련에도 참가할 수 있게 관련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또한 선수촌 생활에서의 부조리를 타파하겠다고도 밝혔다. 공휴일과 주말 외박 금지는 '인권'의 문제이기에 없애겠다는 것. 그리고 선수가 청소하고 선배들 몫을 대신해 빨래하고 외출 시 자신의 윗선배와 코치진에 모두 보고하는 문화야말로 '낡은 관행'이라며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선수들이 부상우려로 걱정하는 새벽훈련, 산악훈련도 폐지한다고 밝혔다.

배드민턴의 경우 단식과 복식의 체계적인 맞춤 훈련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개선한다고 밝혔다. 코치수가 적어 어린선수들은 자신들끼리 훈련하는 것도 코치진 확충을 하겠다는 것.

또 해외 대회를 다녀온 이후 무조건 다시 선수촌으로 복귀하는 게 아닌 휴식을 취한 후 복귀하도록 했다. 국가대표 1진 선수의 경우 너무 많은 경기에 힘들어하고, 2진 선수들은 아예 대회를 못나가는 상황을 개선해 대회 중요도에 따라 1,2진 선수를 골고루 보내는 시스템도 정착하겠다는 의견.

배드민턴협회에만 남아있는 문제 개선에 대해서도 문체부는 약속했다. 개인자격으로 해외대회 참가를 불허하고 있는 상황부터 경기력과 직결된 라켓, 신발에 대한 선수의 선택권을 보장해 무조건 협회과 계약한 스폰서만 쓰지 않게 하겠다는 것.

제도 개선 요구뿐만 아니라 배드민턴협회의 비리 역시 이번 조사에서 드러났다. 일단 보조금법을 명백히 위반했기에 김택규 회장의 해임을 요구했다. 원천징수 되지 않은 세금 납부와 협회 임원이 있는 업체를 공인 용품으로 지정해 수익을 도운 황당한 행위, 회장의 폭언, 욕설 등 역시 사실로 확인됐다.

오죽하면 발표를 맡은 이정우 문체부 조사단장(체육국장)은 "배드민턴협회가 이번에도 고치지 않으면 자정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협회 모든 임원을 해임하는 관리단체 지정, 선수 지원 외 다른 예산 지원 중단 등 특단의 조치를 추진하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문체부 이정우 국장의 브리핑 모습. ⓒ연합뉴스

▶환호하는 선수들-걱정하는 지도자들

문체부는 단순히 안세영만의 의견만 들은게 아니었다. 배드민턴 대표팀 선수들의 의견을 청취했고 대부분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이 기회로 더 많은 부조리를 고발한 선수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안세영이 쏘아올린 공 덕분에 다른 배드민턴 대표팀 선수들이 혜택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진천선수촌 내에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 역시 많은 부분에서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특히 선수촌 내 제한된 의료인력 제한으로 인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던 선수들, 온전히 자신들을 위한 훈련을 받지 못했던 막내급 선수들은 의료진-코치진 확충으로 더 나은 선수촌 생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도자나 관계자들은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주말 외박 금지-국제 대회 출전 후 휴식 후 복귀-새벽, 산악 훈련 폐지 등으로 인해 선수단 기강 해이 등을 우려하는 것. '선수 때는 나도 싫었다'고 말하지만 새벽-산악 훈련 등이 분명 효과가 있다고 믿는 지도자들도 있으며 문체부가 다소 지나치게 선수촌 생활까지 간섭한다는 비판 의견도 존재한다.

김택규 대한배드민턴협회장. ⓒ연합뉴스

▶안세영이 쏘아올린 공, 한국 체육을 바꿀 시발점

그래도 분명한건 그동안 누가 봐도 잘못됐던 한국 체육-배드민턴 협회의 문제를 안세영을 계기로 바꿀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선수가 원하는 치료를 받을 권리, 선수가 원하는 장비를 쓸 권리, 선배 빨래를 하지 않을 권리 등은 누가 봐도 명백한 잘못이었다.

시대는 2024년인데 아직도 197~80년대에 해오던 악습과 관행을 해오던 체육계도 이번 감사 발표를 계기로 바꿀 수밖에 없게 됐다.

안세영은 역사적인 금메달을 따고도 이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오히려 나서서 그동안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변화를 촉구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최근 덴마크오픈을 떠나는 안세영은 의도적으로 선수단-코칭 스태프와 시간을 두고 입국장을 들어서는 모습을 보였고 취재진의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안세영만 보면 다들 그녀가 이룬 업적보다 폭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

한국 체육의 최상위기관인 문체부의 이번 최종 감사 발표는 과연 안세영을 웃게 할 수 있을까. 분명한건 안세영의 용기있는 폭로 덕분에 개선이 필요했던 한국 체육에 현재의 선수들뿐만 아니라 향후 국가대표가 될 어린 선수들 역시 더 나아진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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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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