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국가’론은 환상...남북, 거부할 수 없는 ‘기후공동체’ 대책 세워야”
남북관계가 강대강 대치로 악화일로임에도 불구하고 남북은 결국 지리적으로 긴밀하게 연계된 ‘기후공동체’임을 자각하고 개발협력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지리적으로 밀접한 접경지역이 ‘변방’이 아닌 ‘중심’으로서 역할론도 제안됐다.
1일 국회에서 열린 ‘기후평화와 지속가능한 한반도 협력의 과제’ 포럼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은 ‘남북 평화협력과 지방정부 역할’을 주제로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문재인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그는 “최근 남북은 말폭탄을 주고 받더니, 대북전단이 날아가고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지경이 됐다”며 “가장 걱정이 많고 위기를 피부로 느끼는 분들이 접경지 주민들과 지자체 단체장들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접경지 주민들에겐 지금의 긴장상태와 위기가 생활의 현실이자 생계의 위협”이라며 “그런 점에서 남북 평화협력의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절실한 당사자가 접경지 주민들”이라고 말했다. 또 “괴기한 기계소리의 소음으로부터 파괴된 일상의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무릎꿇고 절규하는 국정감사장의 사진 한 장이 우리 모두의 절박한 바램이 됐다”며 “평화는 지난 날의 일장춘몽이 아니라 오늘 당장의 절박한 요구”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접경지에는 동쪽의 고성군으로부터 인제군을 거쳐 서쪽의 철원군까지 분단된 군이 많다”며 “6·25 이전 북쪽 땅이던 곳이 남쪽이 된 곳도 있고, 그 반대가 된 곳도 있다”고 했다. 또 “분단만 된 것이 아니라 지난 70년이 넘는 세월 남북은 서로 다른 발전 경로를 걸어오며 다르고 맞지 않는 부분도 다양하게 존재하나 여전히 같은 것도 많다”고 했다.
그는 “이념과 제도는 다르지만 말과 글이 같고 정서가 통하며, 이는 전 세계 어느 나라와도 공유하지 못할 평화협력의 원천”이라고 했다. 특히 “협력사업의 토대가 될 땅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며 “백두대간도 이어져 있고 임진강 물길도 이어져 있다”고 했다.
이 의원은 강원도 고성군 평화통일 걷기대회 참여 경험을 밝히며 “향로봉 정상에 서면 건너편 왼쪽에는 금강산 줄기가 보이고 오른쪽 건너편에는 설악산 줄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북쪽의 GP는 여의도에서 남산 보는 것보다 가깝다”고 했다.
이 의원은 특히 현재 악화한 남북관계처럼 후퇴하지 않기 위해서는 단순한 상호 방문이나 인도협력에 머물러선 안 되며 개발협력(ODA)을 지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접경지의 평화협력은 등거리, 등면적 공유지대를 충분히 활용해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하고 본질적인 협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그간의 남북관계는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으나 앞으로 남북관계가 후퇴하지 않는 축적의 관계로 만들어가려면 단순한 상호방문이나 인도협력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생태, 농업, 공업, 지하자원개발, 관광, 첨단의료 등 다방면에서 낮은 수준이라도 개발협력을 지향하는 협력으로 고도화를 추구해야 한다”며 “ODA사업이 처음엔 인도적 지원으로 시작하지만 개발협력과 상생협력으로 나아가듯 남북사이 생활이 긴밀히 연결되고 경제적 이익이 충분히 공유하는 단계로 나아갈 때 협력도 공고해지고 통일에 다가갈 수 있다”고 했다.
이 의원은 “정치·군사적 문제가 일정 정도 해결된다면 당장이라도 철원에서는 공동 역사발굴도 가능하고, DMZ를 생태평화공원으로 조성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DMZ에 옥류관을 세우고, 수익금으로는 일제강제동원에 희생된 분들을 위한 공동기금으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남북 사이에 이미 오간 적 있고, 북쪽에서부터 펴져 내려오는 니켈 광산이 강원도 고성군 수동면까지 이어져 있고, 남쪽 강원도 양구군, 북쪽 평강군, 김화군, 천내군에는 반도체 소재에 활용되는 ‘형석’이 많이 매장돼 있어 남북이 공동 탐사와 개발을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제기한 남북 ‘두 국가’ 주장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이 의원은 “교전과 적대의 관계라는 북쪽의 두 국가론도 잘못된 것이지만, ‘평화몰빵론’을 앞세운 남쪽 일각의 두 국가론도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또 “자유북진통일을 내세우며 한반도에서 두 개의 실체를 부정하는 윤석열 정부의 통일은 불가능하기에 또 다른 의미의 2국가론으로서 배제돼야 마땅하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남북관계는 한반도에서 두 개 국가의 실체성을 인정하는 것과 통일을 지향하는 가운데 생겨난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2개의 기둥으로 움직이는 것”이라며 “이 2개의 기둥으로 움직이는 것은 가장 올바른 방향이며 유익한 방법”이라고 했다. 이어 “이러한 전제를 잃어버리고 남북문제에 접근하면 평화는커녕 대결과 경쟁의 심화만 부를 뿐”이라며 “남북관계의 역사성과 구조로 볼 때, 적대적 두 국가도 안되지만, 평화로운 두 국가도 현실가능성이 먼 환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통일을 지향하지 않고 두 국가로 지내면서 평화롭게 지내자고 하는 것은 일면 그럴싸해보이지만, 실제로는 북·중·러와 한·미·일의 진영대결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결과만 낳을 것”이라며 “북쪽은 남쪽을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에서 제외하고 미국과 직접 협상하려는 통미봉남의 전략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결과적으로 남쪽은 한반도 문제에서 소외될 것”이라고 했다.
통일을 포기하고 두 국가를 주장하는 것은 외교적으로도 큰 손실임을 강조했다. 그는 “통일은 무엇보다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만이 가진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권리로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국제법적으로도 준중받는 권리”라며 “국제대회에서 우리는 단일팀을 구성할 수 있고 그때마다 세계인은 박수를 보냈고, 지금도 여전히 세계 많은 국가들이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한다”고 했다.
그는 “통일은 한반도 미래와 번영의 블루칩으로서, 세계 그 어느 나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의 권리이고 가능성”이라며 개성공단 생산품이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때 원산지 예외 규정을 적용한 것을 강조했다. 그는 “두 국가는 국제법적으로 UN가입과 동시에 적용됐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남북관계가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잠정적 특수 관계란 점 역시 국제법적으로 명문적, 실체적으로 존중받아 왔다는 점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의원은 “당장의 남북관계는 찬바람이 쌩쌩부는 겨울이나 기회는 올 것”이라며 “가까이는 미국 대선이 있고, 2027년 정권교체라는 변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남북관계에는 의외성, 전격성, 가변성이 늘 있어 왔다”며 “겨울시즌 우리가 고민해야할 것은 ‘스토브리그’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접경지를 ‘컨택트 존(Contact Zone·접촉지대)’라고 부른다”며 “접경지는 선과 선을, 면과 면을 이어주는 곳이고 멈춰 있는 곳이 아니라 뻗어 나가는 곳으로서 변방이 아닌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간 남북관계는 늘 중앙정부가 주도, 아니 독점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남북관계가 더 고도화되고 심화되고 종국에 후퇴하지 않으려면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수많은 잔뿌리가 있어야 하고, 그 잔뿌리에 해당하는 것이 접경지 남북협력”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접경지 평화협력은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강력한 토대이자, 한반도 통일의 선체험이며 통일을 마중하는 역사적 지혜의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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