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2' 연상호 감독, '마중물'이 되는 그날까지[TF인터뷰]
연상호 감독의 궁극적인 목표 '마중물'
'지옥' 시리즈 등 다양한 세계관 계속 시도하는 이유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연상호 감독이 오래 전부터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마중물'로서의 역할이다. '마중 나가는 물'이라는 의미의 순우리말인 마중물은 어떤 일을 시작하는 계기나 실마리로 비유되기도 한다. 연상호 감독은 자신 혹은 자신의 작품이 마중물이 돼 이후 다른 이들의 창작물로 확산이 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작품이 나오는 날을 꿈꾼다.
연상호 감독은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시즌2(이하 '지옥2')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옥2'는 계속되는 지옥행 고지로 더욱 혼란스러워진 세상, 갑작스레 부활한 새진리회 정진수 의장(김성철 분)과 박정자(김신록 분)를 둘러싸고 소도의 민혜진 변호사(김현주 분)와 새진리회, 화살촉 세력이 새롭게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앞서 지난 2021년 공개된 '지옥' 시즌1은 '지옥행 고지'라는 파격적이고 신선한 설정의 세계관을 내세워 색다른 재미를 안기며 전 세계에 눈도장을 찍었다. 이에 3년 만에 돌아오는 시즌2에 대해서도 일찌감치 관심이 집중됐다.
연상호 감독은 "시즌1에 등장했던 정진수와 박정자의 지옥을 보여주는 것이 시즌2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시즌1에서도 인간의 자율성을 이야기 한다면 시즌2도 마찬가지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힘과 절대적인 힘은 무언가를 믿기 시작한 순간부터 인간의 힘이 발현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당신의 자율성에 세상을 맡기겠다는 메시지를 작품에서 관객에게 던져주는 형식이 됐으면 했다"고 밝혔다.
다만 시즌2를 준비하며 '지옥' 팀에게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바로 불미스러운 일로 하차한 유아인의 빈자리였다. 이에 김성철이 새롭게 합류하며 유아인과는 또 다른 정진수를 예고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연 감독 역시 고민과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유아인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배우를 찾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추천을 받은 사람이 김성철이었다. 당시 너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던 터라 조용히 김성철을 만났다"며 "첫 만남부터 일단 에너지가 좋았다. 김성철의 매력 중 하나가 거침 없는 확신이다. 그런 면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김성철이라면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실제로도 김성철 배우가 너무 훌륭하게 감당했죠. 물론 결과물에 대해 여러 평가가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 같아요. 호불호라고 하지만 이걸 다르게 표현하면 '들끓다'라는 것 같아요. 어떤 아티스트가 무언가를 보여줬을 때 들끓는 반응이 있다는 건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럴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게 아티스트의 꿈이기도 하잖아요."
'지옥2'가 공개된 후 유아인의 정진수와 김성철의 정진수를 비교하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연 감독은 이를 예상할 수밖에 없었단다. 그는 "그도 그럴 것이 두 배우가 해석한 정진수가 달랐다. 시즌1의 정진수는 원작 대신 배우의 스타일이 많이 반영된 연기였다. 반면 김성철이 택한 길은 원작이었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정진수의 보다 더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느낌을 살리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었다"고 설명했다.
그런 김성철의 선택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인 연 감독이다. 그는 "앞서도 말했지만 김성철의 장점은 자신이 가는 길에 확신이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연기 방향성이 정해지면 주저함이 없더라. 그렇다면 난 김성철의 정진수를 어떻게 관객들에게 보다 더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을지 집중했다"고 전했다.
극 중 김성철만큼이나 관심을 받은 인물이 있다면 바로 문근영이다. 문근영은 평범한 아내이자 어린이집 선생에서 광신도 집단 화살촉의 핵심 선동가 햇살반 선생으로 변모하는 오지원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특히 그가 강연하는 장면은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연 감독은 문근영 캐스팅에 관해 "문근영 배우는 연기에 대한 생각의 깊이가 보일 때가 문득 있다. 내적으로 다져진 느낌이다. 이런 느낌을 드라마 스페셜 '기억의 해각'(2021) 때 가장 많이 느꼈다. 당시 다른 모습으로 변신을 시도했는데 이걸 보면서 더 많은 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에 연 감독은 실제로 호흡을 맞춘 문근영을 '대가'라고 소개했다. 그는 "촬영장에 있으면 항상 고요한 느낌으로 대기를 한다. 항상 오자마자 '대본을 봤는데 두 가지의 방향성이 있는 것 같은데 어느 쪽으로 갈까요'라고 묻는다. 내가 듣고 정해주면 그 방향성대로 연기를 하는데 정말 대가의 모습 같았다"고 전했다.
"임성재 배우랑은 만났다 하면 장난치는 편이에요. 그럴 때마다 문근영 배우는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곤 하죠. 그럴 때마다 저희끼리 '역시 대가는 다르다'고 입을 모았죠.(웃음)"
'지옥' 시리즈의 시작은 무려 2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 감독이 20대 중반 때 막연한 불행에 대한 공포를 느끼면서 만들게 된 작품이 바로 '지옥'이었다. 그는 "불행을 생각해 보면 이유가 뭔지도 모르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으니 '불행'이지 않나. 그 불행이 언제 닥쳐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며 "그 공포에 대해 매일매일 생각하다 보니 점점 더 막연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금 세상에 등장해도 신선한 세계관과 스토리인데 21년 전부터 구상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에 매번 새롭고 다양한 세계관을 내놓을 수 있는 연 감독의 원천이 궁금했다. 그는 여러 종류를 말하면서 그 중 '팬픽'을 가장 강조했다. 실제로 연 감독은 "난 공인된 팬픽도 쓰지 않았나. '기생수'가 대표적인 예"라고 밝혔다.
"전 팬픽 문화가 많은 국가에 대한 공경 같은 게 있어요. 저 또한 팬픽의 형태로 작업을 할 때가 많고요. '건담' 이야기도 많이 했고 공식과 비공식을 넘나든다고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비공식이 공식이 될 때도 있잖아요. 한국에서는 이런 문화가 많지 않은데 한국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때로는 스스로에게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극한으로 몰아넣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단다. 연 감독은 "마감을 정해놓고 일을 하다 보면 결과물이 이상하더라도 뭔가를 만들게 된다.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것들도 나온다"며 "사실 난 외주 형태로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안 한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해 웃음을 안겼다.
이런 과정에서 연 감독이 바라는 건 자신이 '마중물'이 되는 것이다. 연 감독은 "예전부터 계속해서 한 생각이다. 내 작품이 마중물이 돼 이를 토대로 다양한 창작물이 나오고 세계관이 확장되는 것만큼 재밌는 것이 어딨나. '부산행' 때부터 내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부산행'은 저작권이 오롯이 제건 아니에요. 하지만 '지옥'은 제가 가지고 있잖아요. 예를 들면 유튜브에 보면 '지옥' 해석 영상이 있는데 이것 또한 일종의 마중물을 넣고 나온 결과물인 것 같아요. 이야기 형태가 될 수 있고 해석의 형태가 될 수도 있는 결과물들이 계속해서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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