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살해 위협에 딥페이크 성착취까지...전 세계 젠더 보도의 오늘
"미투 시대의 저널리즘 " 보고서 낸 국경없는기자회, 정부·플랫폼·언론사 등 향해 권고안 발표
2017년 '미투' 이후 젠더 전문 매체 등장…성착취, 살해 협박, 감금 등 '취재' 이유로 겪는 폭력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젠더 폭력 등 젠더 이슈를 취재하는 언론인들에 대한 강간 위협, 딥페이크 성착취, 살해 위협, 감금 등의 폭력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경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 RSF)는 젠더 이슈를 취재하는 언론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정부, 사법당국, 디지털 플랫폼, 뉴스룸을 향한 권고안을 발표했다.
2017년 '미투' 이후, 다수 젠더 전문 매체 등장…젠더 에디터 신설도
RSF는 지난달 22일 홈페이지에 보고서 '#미투 시대의 저널리즘(Journalism in the #MeToo era)'을 게시했다. 2017년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를 고발한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의 보도로 #MeToo(미투) 운동이 촉발됐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촉진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RSF는 자체 조사에 포함한 112개 국가 중 약 3분의 2(언론인 113명 중 72명)에 달하는 국가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113명의 언론인 중 80% 이상은 2017년 이후 젠더 이슈,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언론보도가 증가했다고 답했다.
소말리아의 '빌란(Bilan)', 프랑스의 '라 데페랑트(La Dferlante)', 아랍 전역에 전파되는 매체 '제임(Jeem)' 등 세계 곳곳에서 여성의 권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새로운 미디어 매체도 등장했다. 특히 빌란은 2022년 출범한 소말리아 최초의 여성 온라인 독립 미디어다. 브라질의 유력 일간지 '폴랴 데 상파울루(Folha de S. Paulo)'는 2022년 10월 웹사이트에 'Todas'(모든 여성) 탭을 개설해 여성 인권과 젠더에 관한 조사 및 기사를 다루고 있다. 동아프리카 케냐의 주요 신문사 '데일리 네이션(Daily Nation)'도 2019년에 젠더 칼럼을 시작했다.
'젠더 에디터' 직책이 만들어진 점도 눈에 띄는 변화다. 뉴욕타임스는 미투 운동과 젠더 에디터 직책의 시초가 된 곳으로, 제시카 베넷(Jessica Bennett)을 최초의 젠더 에디터로 임명했다. 뉴욕타임스의 결정 이후 스페인의 일간지 '엘 파이스(El Pas)', 동아프카의 신문사 '데일리 네이션', 영국 런던의 BBC 등 수십 개의 다른 신문사에서도 젠더 에디터를 임명했다.
RSF는 젠더 에디터가 생기면서 언론사 내부와 뉴스 보도 측면에서 젠더 이슈를 고려하는 윤리 헌장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가령, 프랑스 통신사 AFP(Agence France-Presse)는 남성 전문가만 인터뷰하지 않도록 취재원을 다양화하고, 여성에 대한 부적절한 묘사를 피하도록 명시한 여성 버전 언론인 매뉴얼을 추가했다. 폴랴 데 상파울루의 젠더 에디터 플라비아 리마(Flavia Lima)는 구글과 협력해 인터뷰한 여성의 대표성을 수치화하고 전문가 프로필을 제안하는 도구 'Voz Delas(그들의 목소리)' 앱을 개발했다.
딥페이크 성착취, 살해 협박, 감금…'취재'를 이유로 언론인이 겪는 폭력
젠더 이슈에 대한 중요성은 커졌지만, 관련 취재는 여전히 위험한 일이다. RSF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약 60%가 언론인이 업무로 인해 강간 위협, 성적 모욕, 딥페이크 성착취 등 특정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례를 한 건 이상 알고 있다고 답했다. 젠더 이슈를 다룸으로써 사이버 괴롭힘을 당한 사례를 적어도 한 건 이상 알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60% 이상이었다.
언론인들은 젠더 이슈를 다뤘다는 이유로 또 다른 폭력의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응답자의 13%는 여성 인권, 젠더 이슈 등을 다룬 언론인이 업무 관련 젠더 폭력의 피해자가 된 사례를 한 건 이상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12%는 젠더 이슈 업무 관련 보복이 두려워 직업을 떠나야 했던 피해자의 사례를 알고 있다고 답했다. 아울러 응답자의 19%는 젠더 이슈를 다루는 언론인이 보도를 이유로 보복을 당한 사례를 적어도 한 건 이상 알고 있다고 답했다.
젠더 이슈를 다뤘다는 이유로 살해 위협을 받은 언론인도 있다. 응답자의 약 4분의 1은 젠더 이슈를 다루는 언론인이 살해 위협을 받은 사례를 한 건 이상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해당 응답자가 속한 국가는 한국, 러시아, 수단, 버마, 방글라데시, 파푸아뉴기니 등이다. 이라크 쿠르드와 아프가니스탄, 멕시코 등에서는 성폭력 문제를 취재하던 언론인 여러 명이 살해당하는 등 취재에 대한 보복 살인 벌어졌고, 수많은 여성 살해 관련 기사를 보도한 멕시코 언론인 미로슬라바 브리치(Miroslava Breach)는 2017년 차 안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프랑스 언론인 살로메 사케(Salom Saqu)는 자신이 취재한 기사에 대한 보복성 폭력으로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피해자가 됐다.
특히 권위주의 정권의 지배를 받는 나라에서는 다수 언론인들이 젠더 보도를 이유로 감금되고 있다. 이란에서는 2022년 9월 '부적절한 복장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경찰의 폭력을 당한 후 사망한 젊은 여성의 죽음으로 '여성, 생명, 자유'를 뜻하는 '진, 지얀, 아자디(Jin, Jiyan, Azadi)' 운동이 촉발됐는데, 이를 취재한 언론인들이 투옥됐다. 100명에 가까운 언론인이 2년 동안 구금됐고, 14명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 집권 이후 여성 언론인들이 미디어 환경에서 지워지거나 강제 망명을 당했다.
정부, 사법 당국, 디지털 플랫폼, 언론사 향한 16가지 권고안 발표
RSF는 보고서에서 여성의 권리와 젠더 이슈를 취재하는 언론인을 지원하기 위한 16개의 권고안을 발표했다.
정부를 향해선 여성 인권을 다루는 언론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세 가지 방안을 권고했다. 구체적으로는 △특정 형태의 사이버 괴롭힘을 형법에 범죄로 규정하고, 여성 언론인과 성소수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는 방안을 도입할 것 △망명 신청 절차 및 거주 허가 취득 관련 젠더 기반 폭력을 다루는 언론인의 보호를 보장할 것 △공공 기금 등을 통해 언론이 여성과 성소수자의 지위를 집계하는 도구를 갖추고, 조직 내 직원들의 성평등 인식을 높이기 위한 교육을 장려할 것 등을 권고했다.
경찰 및 사법 당국을 향해선 △전문 언론인의 안전을 위한 국가 위원회를 구성해 정기적 대화를 이어갈 것 △경찰 내 연락 담당관을 임명해 물리적 또는 온라인 공격의 피해자로부터 증언을 수집할 것 △젠더 이슈를 이유로 한 언론인에 대한 공격을 뉴스룸의 도움을 받아 문서화해 공격의 규모를 측정할 것 등을 권고했다.
디지털 플랫폼에는 언론인에 대한 폭력 사건을 조사하는 사법 당국의 명령에 지체 없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젠더 이슈를 취재하는 언론인에 대한 폭력 관련 캠페인을 무료로 배포해 일반 대중의 인식을 높일 것 △사이버 괴롭힘의 피해자인 언론인의 신고를 최우선으로 처리하고, 신고가 접수되는 즉시 관련 활동을 하고있는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할 것 △관련 법률에 규정된 콘텐츠 삭제 및 계정 정지를 위한 모든 조치를 이행할 것 등을 권고했다.
언론사 뉴스룸을 향해선 젠더 이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언론인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내부 비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젠더 에디터 역할을 만들 것 △사이버 괴롭힘 문제에 대해 언론인을 교육해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올바른 대응과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할 것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조사 업무를 더 잘 지원하기 위한 재정 지원 제도를 개발할 것 등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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