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서 버려라” 전 세계 한국인 단 2명, 레고 공인 작가 만났더니…

권효정 여행플러스 기자(kwon.hyojeong@mktour.kr) 2024. 11. 2.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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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유 레고 공인 작가 인터뷰
일상을 바꾸는 슈퍼파워 캠페인
한국 전래동화 동물작품 선보여
창의력이란 게 있다가 없는 게 아니다. 타고나는 건 더더욱 아니고.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환경에 거리낌 없이 뛰어들 수 있는 능력, 그게 바로 창의력이다. 레고는 그 능력을 키우는 최고의 도구다.
김승유 작가 / 사진= 조형주 여행+ PD
작업실 문을 열자 색색의 레고 브릭의 향연이 펼쳐진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작업실 전체가 거대한 레고 세트 일부인 듯하다. 벽면을 가득 메운 작품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상상력이 현실이 되는 마법 공간, 레고 공인 작가 김승유의 아지트다.
김승유 작가 작업실 / 사진=권효정 기자
“레고를 만들면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다는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겼다”고 말하는 김 작가의 눈이 반짝인다. 아직 소년의 감성이 생생한 얼굴이다. “레고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다. 한 번 만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부수고 다시 만들 수 있다. 그게 바로 레고의 ‘슈퍼파워’다.”
김승유 작가 작업실 / 사진=권효정 기자
​레고는 최근 ‘일상을 바꾸는 놀이, 이것이 우리의 슈퍼파워’ 캠페인을 시작했다. 전 세계 어린이와 가족들의 창의적인 놀이를 독려하는 캠페인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짓다(Rebuild The World)’라는 글로벌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김승유 작가는 이 캠페인의 한국 대표 얼굴이다.
김승유 작가 어머니가 창고에 보관해놨던 레고 / 사진=권효정 기자
김 작가와 레고의 인연은 유치원 때 받은 생일 선물로 시작됐다. 비싸서 자주 살 수 없었지만 덕분에 창의력은 발달했다. 하나의 세트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습관이 생긴 것. 성인이 된 이후 그가 다시 레고를 접할 계기를 만든 건 어머니였다.

김 작가는 “어머니가 손주에게 물려주겠다는 심정으로 레고를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다”며 “창고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레고를 조립하며 다시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돌아봤다.

이런 경험이 그를 대학에서 산업디자인 전공으로 이끌었고, 가구 디자이너를 거쳐 지금은 전 세계 23명뿐인 레고 공인 작가 자리에 올려놓았다. 한국에선 단 두 명뿐이다.

비비드 드림 일부 / 사진=권효정 기자
​어린 시절부터 그는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만들기’라고 답했다. 명사가 아닌 동사로 대답하는 아이, 남달랐던 창의성이 엿보인다.

“사실 특정 직업을 목표로 삼진 않았다. 레고로 노는 걸 즐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 과정에서 창의력, 끈기, 문제 해결 능력 같은 삶의 중요한 기술들을 자연스레 익혔다.”

김 작가의 대표작 ‘비비드 드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해안 도시와 테마파크가 어우러졌다. 실제 건축물인 러시아 모스크바 스파스카야 타워부터 상상 속 ‘승유하우스’까지,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미니어처 세계다.

“비비드 드림은 첫 전시회 출품작이다. 원래 따로따로 만들었던 건물들을 하나로 모아 디오라마(축소모형)로 재탄생시켰다. 세상에 있는 걸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만든 게 실제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재밌더라.”

작업하고 있는 김승유 작가 / 사진=권효정 기자
​김 작가는 ‘반트’란 활동명으로 작품을 선보인다. 2022년 MBC ‘블록버스터’ 우승, 2019년 ‘브릭코리아’ 관객이 뽑은 최고 작품 2위 등 화려한 이력이 그의 실력을 증명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 레고가 추구하는 가치다. 창작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가 대표로 있는 레고 창작 스튜디오 ‘브릭연구소’ 철학이기도 하다.

김 작가는 성인들에게 레고가 훌륭한 스트레스 해소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레고 조립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생각이 싹 사라진다. 온전히 현재에 몰입하게 된다. 마인드풀니스를 실천하는 셈이다.”

​김 작가의 창작 과정은 독특하다. 여행지에서 영감을 얻는 일도 많단다.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 주머니에 레고 부품 하나를 넣고 간다. 돌아다니면서 그 부품을 여기저기 갖다 대본다. 하늘에, 건물에, 자동차에. 어느 순간 딱 맞는 형태를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아이디어 스케치를 한다. 파주 지지향에서 우연히 본 책 속 그림과 레고 부품이 딱 맞아떨어져 탄생한 게 ‘어느새’라는 작품이다.”

레고코리아 캠페인 참여 작품 / 사진=권효정 기자
레고코리아 캠페인 참여 작품도 인상적이다. 한국 전래동화 속 동물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우리 문화에 녹아든 레고를 표현하고 싶었다. 거북이 등에 복주머니를 얹고, 호랑이에겐 갓을 씌웠다. 토끼는 떡방아 대신 레고 브릭을 찧고 있다. 닭은 청사초롱을 물고 밤길을 거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레고코리아 캠페인 참여 작품 / 사진=권효정 기자
​레고의 교육적 가치에 대해서도 김 작가의 생각이 남다르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놀이를 공부의 반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진정한 배움은 놀이에서 시작한다. 호기심, 도전정신, 창의력 모두 놀이에서 나온다. 교육 현장에서 놀이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프로그램을 도입하면 좋겠다.”
김승유 작가 작품 / 사진=권효정 기자
레고는 힐링 도구이자 예술 창작 매개체다. 김 작가의 조언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레고를 통해 힐링을 얻고 싶다면 설명서를 따르고, 예술 작품을 만들고 싶다면 설명서를 버리라는 것. 김승유의 꿈은 ‘레고로 만든 집’이다. 가구부터 소품까지 모든 것을 레고로 채운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레고 브릭을 설명하고 있는 김승유 작가 / 사진=권효정 기자
김 작가 메일함은 레고 디자이너 지망생들 질문으로 넘친다. “진지함이 예술을 만든다”가 그의 대답이다. 창작의 핵심은 ‘진중함’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단순한 브릭 쌓기를 넘어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작품에 투영할 때 비로소 예술이 탄생한다는 것. 그는 “주변 시선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에 집중하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승유 작가 작업실 / 사진=권효정 기자
​김 작가는 예비 창작가들에게 뜻밖의 조언을 건넨다. “디자인을 배워라. 스케치는 상상력의 언어다. 손으로 그리지 못해도 괜찮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것, 그게 중요하다.”

그는 디자인과 예술 학습을 통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마치 새 언어를 배우듯, 스케치로 상상력과 창의력의 언어를 익힐 수 있다는 것. 김승유의 철학은 레고 조립법을 넘어 예술 창작의 본질을 짚어낸다.

​김 작가의 레고 놀이에 대한 경험과 통찰은 주목할 만하다. 아이들과의 클래스에서 그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클래스에서 아이들과 함께 조립하는 시간이 있었다. 교육을 해주려고 갔지만, 실제로는 아이들과 함께 몇 시간 동안 즐겁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내가 만들어보라고 한 것과는 전혀 다른, 정말 엉뚱한 것들을 만들어냈다. 그걸 제재하기보다는 오히려 ‘상상의 날개를 펼쳐봐’라고 격려했다.”

김승유 작가 작품 / 사진=권효정 기자
그는 레고 놀이 초보 아이들을 위한 팁을 제시한다.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건 정해진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거다. 그래서 ‘이걸 만들어봐’라고 하기보다는 ‘무엇이든 만들어도 좋으니 일단 브릭을 끼워보라’고 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브릭을 하나둘씩 조립하다 보면 어느새 수백, 수천 개가 될 수 있다.”

​김 작가는 미래 세대를 위한 메시지도 전했다. “지금 당장 멋진 작품을 만들지 못해도 괜찮다. 실패하고, 부수고, 다시 만드는 과정 자체가 귀중한 경험이다. 그 과정에서 창의력, 인내심, 문제 해결 능력이 자라난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그게 진정한 슈퍼파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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