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으로 간 ‘세기의 이혼’① ‘톨스토이 소설’ 언급한 최태원 [주말엔]
재산분할 1조 3,800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이혼 소송이 현재 대법원에 가 있습니다.
바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사건입니다.
KBS는 최 회장의 상고이유서와 노 관장의 답변서를 입수했습니다. 이틀에 걸쳐 상세한 내용을 보도합니다.
■톨스토이 소설로 시작하는 최태원 상고이유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입니다.
재산 중 1조 3,800억 원을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분할하고 이혼하라는 2심 법원 판단을 받아든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 회장은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최 회장 측은 상고이유서를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로 시작했습니다.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구절처럼 자신의 결혼이 불행했다고 호소했습니다.
[연관기사] [단독] “불화에 쇼윈도 부부 생활” vs “대체 불가능한 지원 있어” (2024. 10. 28. KBS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92250
■최태원 측, 이혼 경위 설명…"어느 무렵부터 분명하게 불행"
우선 최 회장의 상고이유서를 살펴보면, 두 사람이 이혼에 이르게 된 경위가 상세하게 설명돼 있습니다.
최 회장 측은 1988년 혼인 이후 점차 노 관장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상실했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무렵부터 분명하게 불행했다"고도 밝혔습니다.
결혼 후 첫 10여 년 동안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최종현 선대 회장 내외가 사망한 1998년 무렵부터 노 관장과 불화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최 회장은 부모의 잇따른 사망에 슬픔과 충격을 겪었지만 "노 관장에게 기대했던 충분한 위로와 지지를 얻지 못해 큰 상실감을 느꼈다"면서 "2005년 무렵부터 각방을 쓰게 됐지만, '쇼윈도 부부' 생활을 유지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최 회장 측은 이때부터 여러 차례 이혼 의사를 노 관장에게 전달하고, 수년에 걸쳐 이혼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최 회장 측은 "노 관장은 이혼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처럼 주장하거나, 최 회장이 2007년 큰 딸 생일파티에서 갑작스럽게 이혼을 선언한 것처럼 묘사했다"고 상고이유서에 적었습니다.
1심과 2심에서는 최 회장이 2007년 8월 큰 딸 생일 때 미국 보스턴 집을 찾아가 가족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찾아 가정을 떠나겠다'는 발언을 했다고 인정했는데, 이 시점 이전부터 꾸준히 이혼 의사를 피력해 왔다는 게 최 회장 측의 주장입니다.
■"김희영·혼외자에 대한 괴롭힘, 최 회장 사면 반대한 노소영"
최 회장 측은 상고이유서에서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의 부정행위, 그리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혼외자에 대해서도 자세히 밝혔습니다.
최 회장 측은 "혼인의 외형적 관계만 남아있는 상태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면서 "김 이사장 사이에 아이가 생겼고, 순서가 잘못된 점에 대해 사무치게 반성하고 있다"고도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잉태된 생명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는 것이 진지한 양심에 따른 결정이었다"면서 "노 관장과 세 자녀는 다른 경로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됐지만, 당시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도 강해 태어날 아이 외에 다른 주변까지 살필 겨를이 없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최 회장 측은 또 "김 이사장과 혼외자에 대한 위해와 괴롭힘이 이어졌다"면서 "저로서는 아이의 보호를 최우선적인 목표로 할 수밖에 없었고 노 관장과의 갈등의 골은 더더욱 깊어지게 되었다"고 부연했습니다.
아울러 최 회장 측은 혼외자 문제 뿐만 아니라 노 관장의 행동이 이혼에 이르게 된 주요 원인이라고 지목했습니다.
최 회장 측은 "혼외자가 태어난 이후 SK그룹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됐고, 노 관장 측이 자신에 대한 검찰수사로 확대될 수 있도록 청탁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면서 "구치소에 수감된 기간에 노 관장이 청와대에 최 회장 사면을 반대하는 취지를 전달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썼습니다.
최 회장은 2015년 말, 언론에 편지 형식으로 혼외자 사실을 공개했고, 2017년 이혼 소송을 냈습니다.
[연관기사] 최태원 회장, “부끄러운 고백”…편지 전문 (2015년 12월 29일, KBS 뉴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206297
■"항소심, 공정한 재판 받은 건지 의구심"
특히 최 회장은 불륜과 혼외자 등 자기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재판상 이혼에서의 재산 분할만큼은 공정하게 판단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 회장 측은 상고이유서에서 "2심 판결은 편파적으로 절차가 진행됐고 무리한 논증과 오류를 수반했다"면서 "재판부가 일부 사실을 바탕으로 최 회장 개인에 대한 부정적 가치판단을 전제했고, 혼인 파탄 과정에서 최 회장 '행위'에 대한 도덕적 가치평가를 전인격적 차원으로 확장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민법상 '부부별산제'를 근거로 들며, "재산분할 판단은 '실질적인 공동재산의 청산 분배'라는 제도의 본질에 근거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부부별산제란 △부부의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 △혼인 중 자기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 일방의 재산으로 인정하는 원칙입니다(민법 제830조 제1항).
최 회장 측은 "SK 주식은 선대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사실상 상속 재산"이라면서 "'장기간 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재산을 분할 대상으로 보거나, 구체적 기여에 대한 판단 없이 한 쪽의 일방 재산을 부부 공동재산으로 취급한다면 부부별산제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책배우자에 대하여도 법의 적용과 집행은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2심 재판부는 지난 5월, 최 회장이 혼인 기간에 SK 주식을 취득했고, 노 관장의 기여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SK 주식도 재산분할 대상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취재진은 상고이유서에 담긴 최 회장 측 주장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자 여러 질의를 했지만, 변호인단과 SK그룹 측은 자세한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던 노 관장은 최 회장 측 상고이유서에 대한 답변서를 대법원에 제출했습니다.
노 관장 측은 최 회장의 현재 자산에 자신과 자신 가족의 기여가 있었다며, 상식에 부합하는 결론이 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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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기자 (hojoon.l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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