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진을 피하는 이유[신문 1면 사진들]
※신문 1면이 그날 신문사의 얼굴이라면, 1면에 게재된 사진은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동자가 아닐까요. 1면 사진은 경향신문 기자들과 국내외 통신사 기자들이 취재한 하루 치 사진 대략 3000~4000장 중에 선택된 ‘단 한 장’의 사진입니다. 지난 한 주(월~금)의 1면 사진을 모았습니다.
■10월 28일
1면 사진이 되는 길은 험난합니다. 복합적인 판단을 합니다만, 두 가지만 꼽자면 뉴스성과 이미지의 힘입니다. 두 요소를 균형 있게 갖춘 사진을 골라내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이미지의 힘은 있으나 뉴스성이 떨어지고, 뉴스 가치는 있으나 매가리 없는 사진도 많습니다. 신문 1면을 구성하는 몇 개의 기사는 회사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해 내세우는 뉴스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주요기사에 맞춤한 사진이 있다면 1면 후보군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합니다. 28일자 1면 주요 기사는 명태군 보고서와 북한군 러시아 파병, 일본 총선 등으로 구성됐습니다. 관련 사진은 뉴스성은 갖춘 것이겠고요, 여기에 이미지의 힘이 보태진다면 더 좋겠지요.
결과적으로 평이한 일본 총선 투표소 사진을 썼습니다. 대안이 있었다면 피했을 사진입니다. 신문을 집어들고서야 깨닫습니다. ‘이미지의 힘’이란 이미지의 힘이 없는 사진을 봤을 때 비로소 그 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2주기 당일 신문이라 1면 사진은 이미 정해진 거나 마찬가집니다. 어떤 사진도 웬만해선 이태원 2주기를 대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 걸리는 게 있었지요. 한국시리즈 5차전. 이날 KIA가 삼성을 잡으면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하는 겁니다. 국내에서 열리는 프로스포츠 중 거의 유일하게 일제히 신문 1면 사진을 장식하는 뉴스입니다. 이날 경기보다 먼저 열린 1면 사진 회의에서도 KIA 우승 시 이 사진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의견이 교환됐습니다. 이태원 사진을 메인으로, KIA 우승 환호 사진은 하단에 작게 배치한다는 정도로 정리했습니다. 매일 1면 사진을 찾고 준비하는 입장에선 확실한 1면 사진들이 하루에 몰리지 않았으면 하고 바랍니다. 이날 삼성이 이겨서 내일이나 그 이후에 한국시리즈 우승 세리머니 사진을 1면에 쓰면 좋겠는데... 하는 소망이 생겼던 겁니다.
다음날 중앙일간지 1면에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제외하고 대부분 신문이 KIA타이거즈의 우승 환호 사진을 1면에 크게 실었습니다. 1면 사진에 정답은 없지만, 어떤 사안 앞에서는 회사마다 확실한 답이 있어 보입니다.
■10월 30일
현재 국내에서 굴러가고 있는 가장 큰 이슈의 중심에는 윤 대통령 부부가 있습니다. 1주일에 다섯 차례 발행하는 신문의 1면 톱기사에 윤 대통령이 세 번이나 등장합니다. 대선 후보 시절 활용한 미공표 여론조사 보고서와 공천 개입 등의 내용이 담긴 기사입니다. 톱기사에 맞춰 1면 사진을 써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면 거의 매일 윤 대통령의 사진이 1면을 장식해야 할 판입니다. 하지만 신문을 받아들자마자 소위 ‘땡윤’ 사진을 보게 되는 독자들의 피로감을 고려해야 하는 게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의 도리지요. 단순하게 대통령 지지율에 기대면 열에 여덟이나 아홉은 극심한 피로와 분노로 하루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날은 외신사진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미국 대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넘쳐나는 해리스와 트럼프 사진 사이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사전투표 장면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투표 순서를 기다리는 줄에 서서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바이든은 40분을 기다려 투표를 했다지요. 윤 대통령 사진을 흐뭇하게 볼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10월 31일
‘러시아 파병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내로 진입했다.’ ‘쿠르스크 교전 중 북한군 1명 빼고 전멸’ 북한군 관련 외신기사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통령실도 정부 대응을 단계적으로 가동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전장에 투입됐다는 북한군 관련 사진 한 장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2주 전 북한군 훈련 모습이라 추정된다는 영상 캡처가 반복돼 사용되고 있습니다. 외신사진에서 시간마다 ‘North Korea’를 검색하는 게 루틴이 됐습니다. 뉴스는 큰데 사진이 없으면 그게 또 스트레스가 됩니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으로 국제사회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러시아는 서방 세계에 보란 듯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대규모 핵 훈련을 실시하는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정치·군사적 메시지가 담긴 사진이지만 단순히 협박이나 경고로만 보이지 않는 건, 지금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전쟁에서 파괴된 삶과 죽음을 또렷이 목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1월 1일
오늘은 어떤 사진이 1면이 될 수 있을까 가늠해봅니다. 이미 정해진 것처럼 확실해 보이는 날이 드물게 있긴 합니다만, 대개는 막막하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생물과 같은 뉴스는 막연한 바로 그 시간에도 끊임없이 태어나기도 하고 시들기도 하지요. 불쑥 솟아난 뉴스가 1면 사진을 물고 올까 하는 은근한 기대도 합니다. 그런 맛이 또 있습니다. 매번 1면 사진이 정해져 있다면 그런 식상함은 어떻게 버틸까 싶습니다.
일정을 짜는 동안에 국회 출입하는 선배의 문자가 왔습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긴급기자회견. 9시30분 원내대표회의실’ 이날 민주당의 예정된 일정에 없던 회견이었습니다. ‘긴급’이라는 단어에 시선이 가긴 했지만, 수없이 봐온 긴급기자회견이 정말 긴급했던가 하는 생각에 내용도 묻지 않고 그냥 ‘넵’이라 답했습니다. 잠시 후 그 내용은 말 그대로 ‘긴급’할 만 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공천개입을 뒷받침하는 통화 음성파일이 공개됐던 겁니다. 사태의 엄중함에 앞서 속에선 쾌재가 터졌습니다. 강력한 1면 사진의 냄새가 났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에선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었지요. 민주당은 회의실 내 커다란 모니터에 윤 대통령 육성 파일 내용을 친절하게 띄웠습니다. 소리가 사진을 위한 배려이자 센스라 생각합니다. 1면 사진은 쉽게 결정됐습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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