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토리] 'K-신스틸러'를 만나다…남명렬이 말하는 '배우의 품격'
[※ 편집자 주 = '신스틸러'(scene stealer)란 어떤 배우가 출연 분량과 관계없이 주연을 뛰어넘는 큰 개성과 매력을 선보여 작품에 집중하게 하는 인물 혹은 캐릭터를 이르는 말입니다. 단어 그대로 등장만으로도 시선을 강탈한다는 뜻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한 배우 중 드라마, 영화 등의 매체로 영역을 확대해 '신스틸러'로 활약하는 배우의 릴레이 인터뷰 콘텐츠를 연재합니다. 콘텐츠는 격주로 올라가며 한국의 연극출신 'K-신스틸러' 배우 아카이브로도 확장할 계획입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30여년간 140편을 넘게 소화한 다작 배우 남명렬(64)은 '지적인 배우'로 알려져 있다. 늘 책을 가까이하고, 맡은 역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연극계 주요 상인 영희연극상, 대한민국 연극대상, 동아연극상, 이해랑연극상을 모두 수상했다.
6년간의 회사 생활을 그만두고 뒤늦게 무대에 오른 남명렬은 신인 시절 삶이 어려울 때도, "냉장고는 없었지만, 세탁기와 다리미는 있었다"고 회상하며 '배우의 품격'을 강조했다. 그의 연기 인생을 연극평론가 김수미, 연극연출가 김시번과 함께 대담을 통해 살펴봤다.
▲ 김시번 연출가(이하 시번) : 어쩌다 배우를 시작했나? 30대라고 들었는데, 이전에 다른 일도 했나?
▲ 남명렬 배우(이하 명렬) : 대학 졸업 때까지 연극을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졸업 후 제약회사에 취직해 6년간 영업부 생활을 했다. 일을 못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잘하지도 않았다. 매월 영업 실적에 대한 평가가 정말 힘들었다. 압박이 심했다. 더 이상 못 하겠다는 마음이 목까지 차올랐을 때 그만두고 연극배우 일을 시작했다. 대전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대학 연극 동아리 출신들과 극단 생활을 병행했다.
▲ 시번 : 회사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면 경제적인 건 어떻게 해결했나?
▲ 명렬 : 회사 다니며 모아놓은 것으로 몇 년간은 버텼다. 물론 그 뒤로는 어려웠다. 시장의 아주 작은 골방에서 5년간 생활했다. 고시원, 반지하 방에서도 살았다. 지금 겉모습을 보면 어려움 없이 그냥 연극을 했던 것으로 여러 후배가 생각하는데. (웃음) 연극배우의 경제적 어려움을 다 겪으면서 생활했다.
▲ 명렬 : 연극 '불의 가면-권력의 형식'을 통해 서울 무대에 데뷔했다. 산울림 극장에서 두 달 하고 열흘 정도 했다. 그다음 해에 석 달을 했다. 관객도 많았고 인기도 꽤 있었던 작품이었다. 그 공연이 끝난 다음에 작품을 하자는 얘기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아무도 저를 불러준 분이 없었다. 경력이 단절될 위기도 있었다. '다시 대전으로 내려가야 하나?' 하는 고민을 몇 달간 했다.
▲ 김수미 평론가(이하 수미) : 선생님이 이름을 알리게 된 건 극단 무천의 작품들을 통해서였던 것 같다.
▲ 명렬 : 김아라 연출가와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면서 '이디푸스와의 여행'을 공연하게 됐다. 그 작품을 통해 '저런 배우가 있었구나'라고 눈에 띄게 됐다.
▲ 명렬 : 그 작품을 연습할 때 정말 고생했다. 처음 연습을 시작할 때 저한테 했던 요구는 단 한 가지였다.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여자 목소리를 내주세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여자 목소리를 제가 어떻게 내나. 리딩을 하면서 나름대로 고민해서 얘기하면 "명렬 씨 그거 아니에요"라는 말을 들었다. 정말 고민됐다. 그래서 한 3주 동안을 정말 아무것도 못 하고 보냈다. 그런데 다른 배우들은 굉장히 편안하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3주를 보내니까 저 자신을 내려놓게 됐다.
▲ 명렬 :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하면서 그 순간 느끼는 걸 나도 모르게 그냥 발설하게 됐다. 악에 받친 거다. 그랬더니 김아라 연출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거라고, 그거예요"라고 말했다.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아 그거구나' 하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저 자신도 몰랐던 어떤 것들을 풀어놓는 계기가 됐다.
▲ 수미 : 경계를 넘나드는 연기를 많이 하셨다. 선생님 스스로 본인에 대해서 발견하는 것이 혹시 있었나?
▲ 명렬 :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그 안에 여성성과 남성성이 일정 부분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얼굴로 살아갈 때는 남성적 모습을 더 많이 보이려고 애를 쓸 때도 있었다. 자신을 돌아보면 미시적이고 섬세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작은 거에 신경을 많이 쓰고, 그런 것들이 내 안에 있는 여성성이 아닌가 하고 돌아본다. 그런 작품 할 때는 그런 것을 더 드러내기 위해서 더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 수미 : 연극배우로서, 선생님이 고수하는 모습과 품격이 어떤 것인가?
▲ 명렬 : 배우라는 존재는 무대에서는 온갖 인물을 연기한다. 좋은 사람만 연기하지 않는다. 나쁜 사람이 더 많다. '자연인인 나는 어떤 삶을 사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초기 연극배우 당시 삶에 어려웠을 때도 대학로에 나올 때는 배우의 품격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시장 안에 있는 허름한 집에 살 때 냉장고는 없었지만 세탁기와 다리미는 있었다.
▲ 수미 : 선생님의 소신 있는 발언을 많이 접했다.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주시는 좋은 말씀이었다. 그런데 배우로서는 좀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들기도 한다.
▲ 명렬 : SNS를 하고 때로는 발언도 하는데, 늘 고민한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한다. 적어도 연극으로부터 혜택을 받아 받은 사람으로서 연극을 위해서 이런 발언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2편에서 계속)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획·제작총괄 : 홍제성, 프로듀서 : 신성헌, 구성 : 민지애, 진행 : 유세진·김시번·김수미, 촬영 : 박소라, 스튜디오 연출 : 박소라, 촬영협조 : 매니지먼트아우어, 연출 : 김현주>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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