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휴학계는 왜 8개월 만에 허용됐나… 의대 수업 거부 사태 일지 [지금 교실은]
정부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휴학계를 내겠다는 목소리는 한림대에서 처음 나왔다. 한림대 의대 비상시국대응위원회는 2월1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의학과 4학년 학생들은 만장일치로 휴학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힌 지 9일 만이었다.
이후 40개 의대 등이 참여한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는 전국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동맹휴학 참여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고, 2월17일 동맹휴학을 선언했다. 의대협은 “설문조사에 의대생의 90% 이상이 응답했고, 이 중 90% 이상이 동맹휴학에 찬성했다”며 “20일을 기점으로 동맹휴학 및 이에 준하는 행동을 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국립대병원 및 의과대학상황대책반’을 구축하고 전국 40개 의대와 비상연락체계를 가동하는 등 집단행동 대응에 나섰다. 대학 측에는 “정부 방침에 반발하는 목적의 동맹휴학은 휴학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니 승인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결국 의대생들을 막지 못했고, 2월19일부터 휴학 신청이 쏟아졌다. 교육부에 따르면 2월19일 오후 6시 기준 7개교에서 1133명이 휴학 신청을 했고, 20일에는 8753명까지 불었다. 지난해 4월 기준 전국 의대 재학생이 1만8000여명이란 점을 고려하면 재학생의 절반가량이 이틀 동안 휴학을 신청한 것이다. 군 휴학 등도 일부 포함됐지만 대부분 정부에 반발하는 동맹휴학이었다.
휴학 신청 비율은 일주일만인 27일 70%까지 치솟았다. 이후 교육부가 학부모·학과장 승인 등 요건을 지키지 않은 휴학 신청은 집계에서 제외하면서 정확한 수치는 나오지 않았지만, 거의 모든 학생이 휴학계를 내고 수업을 거부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2학기 전국 40개 의대 재적생 중 출석 학생은 2.8%에 불과했다.
◆휴학 승인 막은 정부
의대생들의 휴학계는 그간 교육부의 반대로 승인되지 못했다. 휴학 승인 권한은 각 대학에 있지만, 교육부는 고등교육법에 따라 각 대학의 휴학 승인 조치 등을 감독할 수 있다. 학사 위반 사항이 발견될 경우 시정명령, 정원 감축, 학생모집 정지 등의 강도 높은 행정조치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교육부는 각 대학에 “학칙을 어기고 동맹휴학을 허용하는 대학은 엄정 대처하겠다”고 경고했고, 대학들은 교육부 눈치를 보느라 휴학을 승인하지 못하는 상태로 시간이 흘렀다. 서류상 의대생들은 몇 달째 ‘무단결석’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대로라면 의대생들이 집단 유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교육부는 각 대학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대학들은 온라인 강의를 다운로드한 것으로 출석 인정 처리를 하거나, 성적 입력 기한 등을 늦추는 식으로 의대생들을 유급 위기에서 구제했다. 2학기가 개강한 뒤에는 등록금 납부 일자까지 미뤘다.
교육부는 각종 학사운영 대책들을 내놓으면서 의대생들에게 ‘언제든 돌아오기만 한다면 유급 걱정 없이 수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각종 유화책에도 의대생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부와 의료계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사이에 낀 대학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서울대의 돌발 휴학 승인
수개월간 답보상태였던 의대생 수업거부 사태는 9월30일 전환점을 맞았다. 서울대 의대가 의대생들의 1학기 휴학 신청을 일괄승인한 것이다. 서울대 의대의 경우 휴학 승인 최종 결정권자는 의대 학장인데, 학장이 대학 본부 측과 별도 논의 없이 자체적으로 휴학을 승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 의대의 휴학 승인은 정부 방침에 반발하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올해 수업을 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교육부는 서울대에 대한 대규모 감사에 돌입하며 즉각 강경 대응에 나섰다.
교육부는 휴학 승인이 알려진 10월1일 입장문을 통해 “서울대 의대 학장이 독단적으로 휴학 신청을 일괄 승인한 것은 학생을 의료인으로 교육·성장시켜야 할 대학 본연의 책무를 저버린 부당한 행위”라며 “정부와 대학이 그동안 의대 학사 정상화 및 학생 학습권 보호를 위해 지속해 온 노력을 무력화하고, 형해화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이후 이틀만인 10월2일 12명 규모의 감사단을 서울대에 파견했다. 다른 대학에서도 휴학 신청이 잇따르는 것을 막기 위해 ‘본보기’ 차원에서 강경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조건부 승인’ 물러난 정부, 결국 ’자율 승인’ 허용
서울대 휴학 승인 약 일주일만인 10월6일 교육부는 결국 ‘조건부 승인’을 꺼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브리핑을 열고 “2025학년도에 복귀하겠다고 약속한 의대생에 한해 휴학을 승인하겠다”고 밝혔다. 의대생들의 동맹휴학이 시작되고 약 8개월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 부총리는 “휴학 승인 없이 복귀하지 않거나, 휴학 처리된 학생이 복귀 약속을 어길 경우에는 원칙대로 처리하겠다”고도 했다. 교육부가 의대생에 대해 유급이나 제적 가능성을 거론한 것도 처음이었다. 현실적으로 올해 의대생의 복귀가 요원한 상황인 만큼, 내년 수업이라도 정상화해야 한다는 의지에서 입장을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교육부는 의대생 사이에서 긍정적인 변화 기류가 보인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물론 사회 각계에서도 아무런 조건 없이 휴학을 승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등 의료계는 정부와의 대화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의대생휴학 승인’을 내걸기도 했다.
결국 ‘조건부 승인’ 방침이 나온 지 23일만인 10월29일 교육부는 각 대학에 ‘휴학 자율 승인’을 허용했다. 거점국립대 총장들 사이에서 휴학 자율 승인을 요구하는 건의서가 전달된 데다가, 의료계가 휴학 승인을 대화 조건으로 내걸어 교육부가 대화의 ‘키’를 잡게 되면서 이대로라면 교육부 때문에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이 무산될 수 있다는 부담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대학가에서 대규모 유급·제적 사태를 막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동맹휴학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 사유 휴학만 허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휴학사유 확인은 각 대학이 하도록 하고 이를 들여다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해 사실상 각 대학이 대규모 동맹휴학을 승인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의대생들 돌아올까
휴학이 승인되지 않고 의대생들도 복귀하지 않은 채로 2025학년도를 맞을 경우, 의대생들은 제적·유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 휴학 승인 허용으로 의대생들은 일단 대규모 유급·제적 위기에선 벗어나게 됐다. 교육부의 휴학 자율 승인 발표 후 연세대와 고려대 등에서 순차적으로 의대생들의 휴학을 승인하고 있다.
다만 휴학이 승인됐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대학들은 ‘2학기 초과 휴학 금지’ 규정이 있기 때문에 올해 1년 휴학 처리가 되면 의대생들이 내년에는 돌아올 것이란 입장이지만, 의대생들은 지금껏 학칙을 고려하지 않고 집단행동을 해왔다는 점에 비춰보면 학칙 때문에 돌아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대생들이 돌아오려면 결국 여야의정협의체 등에서 유의미한 성과가 나오는 등 의정갈등 사태가 진전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부의 휴학 승인 허용은 의료계에 한발 양보한 것인 만큼 이번 조치가 여야의정협의체 출범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휴학 승인 허용 조치는 의료계의 요구를 고려한 대승적인 판단이란 점을 강조했다. 이 부총리는 10월29일 대학 총장들에게 휴학 승인 허용 조치를 밝히면서 “대한의학회와 KAMC의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입장문, 거점국립대총장협의회 건의문 등 대학과 사회 각계의 의견을 대승적인 차원에서 수용한 것”이라며 “이번 결정으로 여·야·의·정 협의체에서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당면한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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