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억까의 시즌'이 될 뻔했다가 '억까를 극복한 시즌'을 만들다
(베스트 일레븐)
누리꾼 표현 중 '억까'라는 말이 있다. 억지스러울 정도로 괴롭히는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라 할 수 있는데, 아마 울산 HD 팬들은 2024시즌을 치르면서 바로 이 '억까'라는 단어를 계속 떠올렸을 듯하다. 아무 것도 없이 끝났다면 '억까의 시즌'으로 속만 썩히다 마무리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K리그1 우승을 확정지으면서 '억까를 극복한 시즌'으로 2024시즌을 기억하게 되었다.
김판곤 감독이 이끄는 울산 HD는 1일 저녁 7시 30분 울산 종합운동장에서 벌어졌던 하나은행 K리그1 2024 36라운드 강원 FC전에서 2-1로 승리했다. 울산은 전반 36분 루빅손, 후반 9분 주민규의 연속골에 힘입어 후반 15분 이상헌의 한 골에 그친 강원을 한 골 차로 꺾었다. 이날 승리로 울산은 승점 68점을 기록, 남은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2024시즌 K리그1 정상을 확정지었다.
모든 우승에는 스토리가 뒤따르는 법이지만, 울산의 2024시즌 우승은 더욱 드라마틱했다. 이전의 두 차례 우승에는 우승할 수 있을지 없을지 긴장감이 가득한 상황에서 내내 흘러왔던 시즌이었다면, 2024시즌은 가히 고비 넘어 더 큰 고비가 찾아오는 시련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절정의 폼을 되찾은 이동경의 김천 상무 입대는 2024시즌이 쉽지 않겠다는 것을 알리는 작은 신호탄에 불과했다. 기대가 꽤 컸던 2023-2024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도전 실패 역시 아쉬움으로 넘길 만한 작은 고비였다. 설영우의 유럽 진출 역시 한창 시즌이 진행되는 도중에 이뤄졌다는 점만 제외하면 언제든 찾아올 미래였다는 점에서 애써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다.
6월 들어 위기는 점점 고조되었다. 강원 FC에서 활약하던 야고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잡음, 원두재와 이태석 트레이드 논란 등으로 급격히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와중 홍명보 감독이 구축해놓았던 팀 전력과 경기력이 가면 갈수록 흔들린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경기력이 좋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7월 초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초대형 악재가 터졌다. 이경수 대행체제로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선두권 싸움을 하던 울산의 팀 순위는 급기야 4위까지 떨어졌다.
서서히 순위가 고착화되기 시작한 7월 중순의 일이었기에 3연패를 갈망하던 울산의 꿈은 사실상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선지 당시 포항 스틸러스·김천 상무·강원 FC 등 울산과 전북의 침체를 틈타 도약한 팀들의 우승 레이스를 전망하는 얘기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새 감독이 열심히 수습을 해도 너무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K리그 우승을 장담할 수는 없는 처지였던 울산 팬들의 소망은 소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우승은 둘째치고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만 가져와도 다행인 시즌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도 심심찮게 나왔다.
하지만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말레이시아 사령탑으로 활약하던 김판곤 감독을 급히 선임한 후 울산은 K리그1에서 대단한 반전을 이루었다. 8월 10일 대구 FC전을 통해 출범한 김판곤 감독 체제는 K리그1에서 치른 11경기에서 8승 2무 1패를 기록하며 순위를 급등시켰다. 빼앗겻던 선두도 다시금 되찾아올 수 있었던 이유다.
사실 울산은 파이널 라운드 돌입 직전까지만 해도 다소 불안한 선두 리드를 지키고 있었는데, '라이벌'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한 적진 승부를 포함해 파이널 라운드 초반 원정 2연전에서 승점 4점을 가져오면서 우승의 기운을 거의 굳히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다른 경기까지 더 내다볼 필요도 없이 최대의 경쟁자였던 강원까지 확실히 잡아내며 우승, 그리고 창단 후 첫 3연패라는 기념비적인 역사를 쌓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아직 코리아컵 정상 도전, 무엇보다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며 자존심을 구긴 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에서의 반전 등 여전히 극복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긴 하다. 얼마든지 다른 팀에 권좌를 내놓을 수 있었던, 갖은 고비를 딛고 이룩한 우승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우승은 앞서 경험한 두 번의 우승보다 더 짜릿하고 달콤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울산은 K리그의 헤게모니를 손에 쥔 새로운 '왕조'로서 입지를 다졌다는 점에서 더욱 값진 결실이었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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