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조합” 탠덤사이클 [주말엔]
■ '탠덤 사이클'을 아시나요?
'탠덤(Tandem)'은 '앞뒤로 나란히 배치한다'라는 뜻입니다.
'탠덤 사이클'은 앞뒤로 나란히 앉아서 타는 2인승 자전거 또는 그 경기를 말합니다.
장애인 스포츠에서 '탠덤 사이클'은 시각장애인 사이클 종목입니다. 비장애인 선수가 앞에, 시각장애인 선수가 뒤에 '나란히' 앉아 자전거를 탑니다.
앞에 앉는 비장애인 선수는 '파일럿'이라고 불립니다. 시각장애인 선수의 '눈'이 되어 주행환경을 확인하고, 자전거 핸들바와 기어비를 조작하며 전반적인 레이스 운용을 도맡아 합니다. 자전거를 움직이는 추진력은 두 선수가 합심해 동시에 밟고 당기는 페달링에서 나옵니다.
■ 항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전국장애인체육대회 3관왕
지난 수요일에 막을 내린 <제44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김정빈 선수(경기도장애인사이클연맹, 스포츠등급 B)는 '사이클 남자 트랙 개인추발 4㎞ 탠덤 B' 종목 4분 27초 945 기록으로 한국신기록을 경신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개인도로 91㎞, 개인도로독주 28㎞ 종목에서도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해 탠덤 사이클 3관왕을 차지했습니다.
시각장애인 사이클리스트 김정빈 선수 '앞'에는 항상 윤중헌 선수(경기도장애인사이클연맹, 비장애인)가 있었습니다. 현직 소방관인 윤중헌 선수는 소위 '동호인 최강자'로 알려진 아마추어 사이클리스트이기도 합니다. 두 선수는 지난해 열린 <2022 항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 탠덤 사이클 3관왕(트랙, 도로, 도로독주)을 합작하며 대한민국 장애인 사이클 역사를 새로 쓰기도 했습니다.
1991년생 동갑내기이자 팀 동료인 두 선수는 어떻게 자전거를 '함께' 타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어떤 꿈을 꾸며 '함께' 페달을 굴리고 있을까요. 장애인 전국체전을 앞둔 어느 날, 경기도 광명의 실내 경륜장에서 트랙훈련 중인 두 선수를 만나보았습니다.
■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스포츠 선수를 꿈꾸며
어린 시절부터 야맹증이 있었던 김정빈 선수가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진단을 받은 건 중학생이 될 무렵이었습니다. 망막색소변성증은 망막에 색소 단백질이 쌓이면서 점차 시야가 좁아지는 진행성 질환으로 치료가 어려운 난치병입니다.
"중학생 때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병을 알게 되었고, 고등학교 3학년부터 스무 살 초반쯤에 급격히 나빠졌어요. 지금은 빛이 보이고, (사물은) 모자이크가 강하게 된 것처럼 보이는 느낌으로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김정빈 선수-
김정빈 선수가 처음 입문한 스포츠는 시각장애인 구기종목인 '쇼다운'이었습니다. 이후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 역도 등을 거쳐 2016년에 탠덤 사이클을 타기 시작했고 2018년부터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습니다.
"어릴 적에 자전거를 탔던 기억이 있었고, 큰 무대를 밟고 싶어서 장애인 사이클을 알아봤어요. 사이클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는 종목이더라고요.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선수를 꿈꾸면서 지금까지 달려온 것 같습니다."
-김정빈 선수-
■ '동호인 최강자'에서 '국가대표'로
동호인 사이클 대회에서 다수 입상하며 '동호인 최강자'로 불리던 윤중헌 선수는 동료 아마추어 선수의 추천으로 탠덤 사이클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랑 오랜 인연을 맺어왔던 박찬종 선수가 2년 전에 다리 절단 사고를 당하셨고, 그 이후 바로 장애인 사이클을 시작하셨어요. 박찬종 선수가 저에게 장애인 사이클에 '탠덤'이라는 종목이 있고, 재능 기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추천을 해주셨어요.
제가 가진 재능을 누군가를 위해 쓸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지금 이렇게 파일럿을 하고 있습니다."
-윤중헌 선수-
탠덤 사이클의 '파일럿'은 시각장애인 육상, 스키 선수의 '가이드 러너' 같은 '경기 파트너'입니다.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와 함께 경기에 참여하여 성적을 합작하지만, 국민체육진흥법상 국가대표 선수로 인정받지는 못합니다.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함께 수상해도 정부가 주는 연금은 받을 수 없습니다. 경기 파트너의 '재능 기부'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윤중헌 선수는 현재 경기 남양주소방서에서 소방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비번인 날을 쪼개 김정빈 선수와 만나 함께 '탠덤'을 탑니다. 만나지 못하는 날에는 개인 훈련을 통해 기량을 올리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탠덤 사이클에는 프로 경륜 선수 출신의 파일럿이 많습니다. 윤중헌 선수처럼 동호인이 탠덤 사이클 파일럿으로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드문 경우입니다.
"파일럿은 자전거를 탈 수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거든요. 탠덤 사이클을 타면서 동호인 선수 파일럿들도 보긴 봤지만 이렇게 윤중헌 선수만큼의 기량을 가지고 이런 성적을 냈던 선수는 제 기억에는 없는 것 같아요."
-김정빈 선수-
■ 탠덤 사이클 위 두 사람의 '호흡'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조합…. 같이 하나가 되어서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정말 크게 매료되었어요."
-윤중헌 선수-
탠덤 사이클의 추진력은 자전거 위의 두 사람 모두로부터 나옵니다. 두 선수의 페달이 고정된 두 개의 크랭크는 하나의 체인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두 선수는 동일한 궤적을 그리며 같은 회전수로 페달을 굴리게 됩니다. 서로 다른 두 지점에서 나오는 힘이 합쳐지며 발생하는 미묘한 이질감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윤중헌 선수와 처음 탔을 때, 본인은 원을 크게 그리면서 타는 페달링이라고 알려줘서 그 피드백을 받고 집에서 혼자 많이 연습했어요. 피드백을 줬을 때 바로 적응하고 적용하는 게 시각장애인 선수의 역할이고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빈 선수-
윤중헌 선수는 김정빈 선수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잘 통한다'는 느낌이 왔다고 말했습니다. 1991년 11월에 태어난 동갑내기 두 선수는 나이가 만들어 준 수평적인 관계가 '호흡'을 맞춰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러면서 두 선수는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부를 때는 상호존중의 의미를 담아 존칭을 쓰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냥 친구로서 수평적인 관계니까 호흡이 더 잘 맞았던 것 같고, 페달링 외에도 코너링 등 두 사람의 호흡을 맞춰야 하는 변수가 많은데 그런 걸 적응하는 과정이 매끄럽게 잘 진행되었어요."
-윤중헌 선수-
■ 한국 장애인 사이클 최초의 국제대회 금메달
두 선수가 한 팀이 된 건 지난해 5월입니다. 두 선수는 호흡을 맞춘 지 한 달 만에 출전한 국제대회 <2023 장애인사이클 아시아선수권대회> 도로독주에서 우승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탠덤 사이클의 국제대회 첫 금메달이었습니다. 이어 작년 10월 말에 열린 <2022 항저우 장애인 아시안 게임>에서도 탠덤 사이클 3관왕을 달성했습니다. 이 역시 대한민국 장애인 사이클의 새로운 기록이었습니다.
"제가 목표로 삼고 있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뻤고요. 그리고 그걸 윤중헌 선수와 함께하게 되어 더 기뻤습니다."
-김정빈 선수-
"제가 동호인 대회에서는 많은 우승을 했지만,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달고서 금메달 하나도 아닌 3개나 따서 축하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저는 동호인 선수도 이렇게 의지를 갖고 노력만 한다면 더 큰 무대에서 뛸 수 있다는 영감을 주변에 많이 드린 것 같고, 약간 불모지 같았던 '탠덤'을 (자전거 동호인들에게) 알리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윤중헌 선수-
■ 더 좋은 '선수'와 '파일럿'이 나올 수 있도록
김정빈 선수는 장애인 스포츠의 여건이 여전히 녹록지 않다면서 좋은 선수가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애인 사이클 발전을 위해 힘쓰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제껏 대한민국 탠덤 사이클이 올림픽에 출전한 적이 없어요. 다음에 있을 올림픽에는 출전하고, 출전에 그치지 않고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노력을 할 거고요.
지금 장애인 사이클에는 실업팀이 없습니다. 제가 선수 활동을 하는 동안 실업팀이 반드시 생겼으면 좋겠고, 시각장애인 선수들을 비롯해 장애인 사이클 선수들이 많은 지원과 관심 속에서 훈련하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서포트도 해보려고 합니다."
-김정빈 선수-
윤중헌 선수는 본인의 자전거 경력을 '도전의 연속'이라는 단어로 요약했습니다. 하나의 성취를 이룬 후에는 더 큰 목표를 설정하는 끊임없는 도전 의식으로 매 순간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빈·윤중헌 팀이 세계 무대에서 높은 기량을 선보이는 도전과 함께 장애인 사이클 선수층 확대를 위한 노력 의지도 밝혔습니다.
"작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탠덤 사이클에서 저희가 3관왕을 하면서 관심도 많이 받았지만, 여전히 열악한 상황입니다. 선수층도 얕다 보니 파일럿을 할 수 있을 만한 선수도 많이 필요한 상황이고요. 파일럿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길을 잘 닦아서, 좋은 후배들을 양성할 수 있게끔 노력해 보겠습니다"
-윤중헌 선수-
■ 이 기사를 보고 계신 분들께
김정빈 선수와 윤중헌 선수는 이 기사를 보고 있는 시민분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남겼습니다.
"이 기사를 보고 계시는 분들 중 탠덤 사이클이라는 걸 몰랐던 분들이 많으실 거라고 생각해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하는 스포츠인 탠덤 사이클이 정말 멋있는 종목이거든요.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정빈 선수-
"저는 제가 가진 재능을 누군가에게 쓴다는 것에 대한 보람이 정말 컸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면서 산다는 건 정말 그 인생에 있어서도 큰 의미가 있는 일이더라고요. 그게 '파일럿'이 아닐지라도 찾아보면 언제든 기회는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을 항상 눈여겨보신다면 누구나 세상에 좋은 빛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들 그런 멋진 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윤중헌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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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원 기자 (libert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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