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의 《APT.》가 세계를 강타했다

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 교수 2024. 11. 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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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아파트, 아파트”…다음 행보 기대돼

(시사저널=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 교수)

블랙핑크의 로제가 솔로 활동의 일환으로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APT.》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 8위로 데뷔했다. 이는 K팝 여성 가수 중 최고 기록이다. 그 전엔 블랙핑크가 셀레나 고메즈와 함께 부른 《Ice Cream》이 13위로 최고 순위였다.

곡 발표 직후 반응이 뜨겁자 빌보드 핫100 12위가 가능하다는 예측이 나왔다. 며칠 후엔 어쩌면 톱10이 가능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10~12위 정도가 기대됐는데, 막상 공개된 차트에선 8위로 진입한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반응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싸이, 방탄소년단 등 K팝 남성 가수들이 빌보드 차트에서 놀라운 성과를 낼 때 여성 가수들은 상대적으로 아쉬운 느낌이 있었다. 로제가 그런 아쉬움을 다 털어내줄 것 같다.

로제 《APT.》 앨범 커버 ⓒ로제 인스타

여성 솔로 가수로는 블랙핑크 멤버 제니가 위켄드·릴리 로즈 뎁과 협업한 《One of the Girls》가 51위로 최고 기록이었다. 하지만 이 곡은 K팝이라기보다 팝송에 가까웠다. K팝 시스템에서 작업한 여성 솔로 곡 최고 순위는 로제의 《On The Ground》가 기록한 70위였다. 이 모든 기록을 압도적으로 제치며 《APT.》가 K팝 여성 가수의 새 역사를 쓴 것이다.

《APT.》는 발표되자마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발표 후 즉시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인 스포티파이에서 글로벌 차트와 미국 차트 1위에 올랐다. K팝 여성 가수 최고 기록이다. 뮤직비디오는 5일 만에 1억 조회 수를 돌파했다. 올해 발표된 뮤직비디오 중 최단 기간 기록이다. 이 밖에 여러 차트에서 K팝 여성 가수 최초라는 타이틀을 이어갔다. 

노래가 발표된 후 불과 이틀 만에 독일의 어느 클럽에서 서양인들이 노래 가사인 '아파트, 아파트'를 외치는 모습이 온라인상에 퍼지며 화제가 됐다. 브라질에선 브루노 마스의 공연 중 가수와 관객들이 '아파트'를 외쳤다. '아파트 챌린지'도 세계 숏폼계를 제패했다. 이 곡은 《강남스타일》에 이어 또 다른 신드롬의 주인공이 됐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진 후 로제는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 이건 미쳤다. 내 꿈이 이뤄진 것"이라는 소감을 SNS에 남겼다.

이 곡은 기본적으로 신나고 경쾌하다. 단순하게 잘 만들어져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팝 팬들에게 익숙한 팝·록 스타일이기도 하다. 세계 최고 걸그룹인 블랙핑크의 멤버 로제와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협업했다는 점도 화제성을 끌어올렸다. 브루노 마스는 그래미상을 15회 받은, 팝계의 살아있는 전설 같은 존재다.

'아파트, 아파트'라는 부분의 중독성이 특히 관심을 사로잡았다. 곡 중반엔 귀를 잡는 멜로디가 나오고 후반엔 록 음악과 같은 에너지가 터지면서 청자를 후련하게 해주는 대목도 있다. 해외 팬들에겐 한층 이국적인 재미를 주기도 한다. '아파트'는 한국의 술 게임을 소재로 한 노래다. 아파트는 한국 사람들에게만 익숙한 단어다. 이 곡은 '채영이가 좋아하는 랜덤께임'이라는 인트로로 시작하는데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게임 리듬이다. 서구인들에겐 이국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게임'을 '께임'이라고 하는 것도 한국식이다. 중반엔 브루노 마스가 '건배'를 외치기도 한다. 이런 요소들이 서구인에겐 신선하고 재밌게 다가왔을 것이다. 한국인에겐 브루노 마스가 건배라고 노래한다는 신기함과 뿌듯함을 안겼다.

뮤직비디오도 인기 요인이다. 노래의 특징처럼 뮤직비디오도 단순하게 만들어졌다. 그간 K팝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너무 복잡하고 무거워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모처럼 아무 생각 없이 단순한 노래와 영상으로 대박이 났다. 안무도 율동에 가까운 수준으로 쉽다.

이렇게 중독성 있고 신나고 신선하고 재밌는 분위기에 더해 단순하고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의 난도다 보니 챌린지 열풍이 불었다. 세계 젊은이들 사이에 신드롬이 터진 이유다.

로제의 《APT.》가 주목받으면서 윤수일의 《아파트》도 원조 '아파트'로 화제가 됐다. 노래의 연관성은 없지만 제목이 같다는 이유에서다. 로제의 아파트는 신축이고 윤수일의 아파트는 구축이라고들 한다. 윤수일의 《아파트》는 지니뮤직에서 스트리밍이 190% 급증했다. 윤수일은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내 노래를 재건축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전 세계인이 이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선배 가수로서 기쁘고 축하하는 마음"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로제와 아파트 게임을 즐기는 브루노 마스 ⓒ브루노마스 인스타

브루노 마스와의 협업으로 확인한 K팝 위상

브루노 마스의 팬인 로제 측에서 브루노 마스에게 협업을 제안했다고 한다.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반응이 왔다고 한다. '아파트'가 한국 술 게임이라고 하니까 브루노 마스가 좋아했다고 한다. 브루노 마스 정도의 대스타는 아무하고나 협업하지 않는다. K팝 스타인 블랙핑크 멤버의 제안이라서 응했을 것이다. K팝의 위상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해외 누리꾼들 사이에서 이 곡이 로제와 브루노 마스 중 누구에게 더 이익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한다. 로제가 이익을 본 건 당연하지만, 이 곡으로 저연령대 K팝 팬들에게 어필했다는 점에서 브루노 마스에게 더 이익이라는 주장도 많다. 과거 같았으면 한국 가수와 팝스타가 협업했을 경우 무조건 한국 가수만 득을 봤다고 했을 것이다. 지금은 K팝의 영향력이 거대해졌기 때문에 이런 갑론을박이 가능해졌고, 그 영향력을 의식한 브루노 마스도 기꺼이 K팝 프로젝트에 동참했을 것이다.

이 곡의 신드롬으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민요조 노래를 낸다고 서구에서 히트하진 않는다. 《APT.》는 과거 인기 팝송 《Mickey》의 리듬을 인용하고 가사가 영어일 정도로 팝적이다. 그런 서구적인 분위기에 어느 정도의 한국적 요소가 추가돼 서구인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콘텐츠를 만든 것이 히트 요인이다. 이런 한국적 요소의 추가로 한국이 문화적으로 핫하고 재밌는 곳이라는 인식이 더 퍼져 나갈 것이다.

로제가 이런 노래를 내리라곤 기대하기 어려웠다. 블랙핑크 때와는 다른 분위기인데 로제가 곡 작업에 직접 참여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오는 12월 발매될 첫 정규 솔로앨범 전곡의 창작에 로제가 참여했다고 한다. K팝에 새로운 대형 '창작돌' 여성 뮤지션이 탄생하는 것인가? 로제의 새 앨범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 그 앨범이 발매될 때까지 '아파트 신드롬'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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