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DJ 사저’ 마포구청 재매입 추진한다…김대중재단 뭐했길래
‘모금운동’ 비판 여론에 재단 고심 깊어…100억원에 사저 판 김홍걸은 ‘침묵’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서울 동교동 사저가 당초 김대중재단 재매입에서 지자체의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 방향으로 급선회하는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마포구는 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하는 동시에 구(區) 차원에서 DJ 사저를 매입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서울시의 예산 투입 가능성도 거론되면서 난항을 겪고 있는 이 문제에 국민의힘 소속 구청장과 서울시장이 '구원투수'로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00억원에 사저를 매각한 후 재단이 민간 소유주로부 사재 출연 여부에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은 김홍걸 전 의원은 재단을 외면한 채 침묵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상징"…문화유산 지정 급물살
동교동 사저를 100억원에 매입한 박천기 퍼스트커피랩 대표(51)는 10월30일 마포구청에 DJ 사저의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을 위한 '신청서'와 '동의서'를 동시에 제출했다. 박 대표와 그의 부인 등 공동 소유자 3명은 올해 7월 DJ 셋째 아들인 김홍걸 전 의원으로부터 사저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박 대표는 "DJ 사저 매입과 민간 기념관 프로젝트 추진은 상업적 목적이 아닌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국민적 유산을 보존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시작한 것"이라며 "개인의 노력만으로 성공적 추진이 어렵다는 점에서 마포구와 함께 DJ 사저를 국가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절차를 밟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가등록문화유산) 신청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산을 올바르게 기리기 위한 진정한 노력이며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며 "이 장소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으로 영원히 기억되길 소망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10월21일 국가유산청을 찾아 한국 근현대사에 큰 역사적 가치를 지닌 동교동 사저를 임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해줄 것을 촉구하는 공문을 전달했다. 그러나 박 대표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는 마포구를 비롯해 서울시, 국가유산청이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을 위한 후속 절차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근현대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근현대문화유산 소유자가 아닌 기관 또는 개인이 국가문화유산 등록을 신청할 경우에는 소유자의 동의서를 반드시 제출하게 돼있다. 사저 소유주인 박 대표 측이 신청서와 동의서를 모두 제출하면서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을 위한 1차 관문은 통과한 셈이다.
마포구는 소유주 측 동의를 확보한 만큼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DJ 사저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마포구가 DJ 사저 보존 및 관리, 활용계획서, 검토의견서 등을 첨부해 서울시에 제출하면 시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단을 꾸려 보고서를 작성하고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개최한다. 서울시 심의를 통과하면 국가유산청 내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다시 한번 거쳐 동교동 사저의 국가등록문화유산 등재 여부가 확정된다. 등록문화유산은 지정문화유산과 달리 '활용을 통한 보존'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기념관으로의 재개관이 가능하고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유지·보존을 위한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다.
박 구청장은 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하는 데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적 견해나 이념을 떠나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자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 헌신한 분"이라며 "김 전 대통령과 고 이희호 여사가 50여 년간 거주한 동교동 사저는 대한민국 민주화와 평화의 상징이자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공간으로서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마포구는 사저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것과 동시에 박 대표로부터 소유권을 이전받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동교동 사저 보존에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박 구청장은 매입을 위한 지원 조직을 꾸리고 예산 관련 내부 논의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마포구 관계자는 "소유주로부터 (국가등록문화유산 추진) 동의서를 확보한 만큼 앞으로는 매입과 관련한 본격적인 협의를 해나갈 방침"이라며 "박 대표가 구상했던 기념관과 마포구의 계획, 운영 취지가 사실상 동일한 만큼 재매입 논의가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시도 사저 재매입 관련 예산 배정을 검토 중이니만큼 시와 구 그리고 정부가 모두 나서는 방안 마련에 물꼬가 트일 수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매입 등을 포함한 여러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정부와 협업하는 방법이 있고, 서울시 단독으로 하는 방법이 있는데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매입' 공언한 김대중재단, 협약서 외 진행된 부분 없어
국민의힘 소속 지자체장들이 동교동 사저 보존과 재매입 의지를 드러내면서 김대중기념사업회(김대중재단)의 입장은 한층 더 군색해질 전망이다. 재단은 9월26일 박 대표와 사저 매매 협약서를 체결하고 이를 공식화했는데, 앞으로 마포구가 매입 관련 절차에 본격 착수하면 스텝이 꼬이게 된다.
재단은 협약서 체결 이후 모금운동 등으로 재원을 마련해 소유권 이전 절차를 밟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가시적으로 진행된 부분은 없다. 박 대표 측은 재단의 요청을 수용해 기념관 개관을 목표로 준비하던 작업을 중단한 상태다.
그러나 협약서 체결 후 한 달이 지나도록 재단이 구체적인 매매계약 시점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박 대표는 법률대리인을 통해 빠른 시일 내에 이를 명확히 해달라는 확인 공문을 발송한 상태다.
재단이 사저를 되사기 위한 후속 절차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자금' 때문이다. 박 대표가 김 전 의원에게 지불한 순수 매각대금만 100억원에 이르고, 각종 금융 비용과 매입 후 투입한 기초 시설보수비 등을 합산하면 150억원 안팎이 필요하다. 계약 체결 시기가 늦춰질수록 지가 상승에 따른 감정평가액과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점을 고려하면 재단이 마련해야 할 재원 규모는 더 커진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재 6억원 출연을 약속했고,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및 여야 인사들도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재단은 10월 중으로 모금을 위한 윤곽을 잡아 공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부정적인 여론과 질타 앞에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재단이 대국민 모금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하자 곧바로 '아들이 판 사저를 국민이 되사주는 격'이라는 비판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상속세 부담을 이유로 100억원에 사저를 매각한 김홍걸 전 의원은 여전히 침묵 중이다. 사저 재매입을 위한 재원 마련에 대해 매입대금 일부를 내겠다는 의사도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김대중재단 측은 사저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면서도 "사저 재매입은 마포구와 별개로 재단 차원에서 계속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재단 차원에서 연말까지 계약금 마련을 완료한 뒤 차후 재원 조성 방안을 더 구체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