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으로 다가온 美 대선…트럼프 지지 뇌는 따로 있다?
카멀라 해리스와 도널드 트럼프 중 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까요. 11월 5일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전 세계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럴 때 보수와 진보, 유권자들의 정치이념과 뇌를 연관 짓는 뇌과학 기사가 종종 나옵니다. 이번에는 정치 이념과 뇌구조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는 통념을 뒤집는 발표가 있기에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 보수주의자 vs. 진보주의자 뇌가 다르다? 아니다?
"편도체와 보수주의자 간의 연관성은 검증했지만 전대상피질(ACC)과 진보주의자 간의 연관성은 찾지 못했다." 이 기사는 2024년 9월 19일 디아만티스 페탈라스 그리스 아메리칸 컬리지 심리학과 연구원 등 국제 공동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아이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doi: 10.1016/j.isci.2024.110532) 이 연구는 2011년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돼 큰 화제가 됐던 논문을 검증하고자 했습니다. (doi: 10.1016/j.cub.2011.03.017)
료타 카나이 당시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인지신경과학연구소 연구원이 이끈 연구팀은 보수주의자의 뇌는 편도체가, 진보주의자의 뇌는 ACC가 크다는 연구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참고로 이 논문에는 영국 영화배우 콜린 퍼스가 저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는 명대사를 남긴 '킹스맨'의 주인공 콜린 퍼스가 맞습니다. 퍼스는 2010년 BBC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갔을 때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뇌 구조가 다를까?'란 질문을 던져 연구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제안했습니다. 그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뇌의 구조 차이가 있을 거란 가설을 내놓았습니다.
연구팀은 정치적 성향과 뇌 구조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총 90명의 젊은 성인을 모집했습니다. 모두 UCL 학생들로 이들은 자신의 정치 성향을 스스로 판단했습니다. 이후 연구팀은 연구 참여자들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해 이미지에서 회백질의 밀도를 분석했습니다. 회백질은 신경세포가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 결과 보수주의자일수록 우측 편도체 회백질의 크기가 더 크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편도체는 뇌의 가장 큰 부분인 대뇌 깊은 곳에 있는 변연계에 속하는 아몬드 모양의 부위입니다. 좌뇌와 우뇌에 각각 존재해요. 편도체는 공포나 불안처럼 강렬한 감정을 처리하고 감정과 기억을 연결하거나 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데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0월 4일 한양대에서 만난 권준수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회백질이 크다는 것은 더 많은 신경세포가 있다는 것"이라며 "특정 뇌 부위의 회백질 크기가 크면 사람의 사고방식 혹은 행동양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진보주의자는 ACC의 회백질 크기가 더 컸습니다. ACC는 대상피질의 앞부분에 위치해 감정 처리, 의사결정 충동 조절 등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뇌의 부위입니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는 뇌 구조부터 다르다'는 연구 결과는 큰 화제가 됐습니다. 마지 '화성에서 온 보수주의자, 금성에서 온 진보주의자'처럼 이들 간의 차이는 생물학적이고 근본적인 것처럼 회자됐어요. 그런데 그로부터 13년 뒤 발표된 페탈라스 연구팀의 검증 연구의 결과는 다소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보수주의자와 편도체 간의 상관관계는 검증됐지만 진보주의자와 ACC 간의 연관성은 없는 걸로 나왔습니다. 진보주의자와 ACC 회백질 크기 간 상관계수, P값이 0.685로 계산됐기 때문입니다.
P값은 통계에서 유의성을 판단할 때 사용하는 값으로 0.05보다 작으면 유의미, 0.05보다 크면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참고로 과거 2011년 카나이 연구팀의 연구에선 진보주의자와 ACC 회백질 크기 간 P값이 0.01이었습니다.
게다가 보수주의자와 편도체 회백질 간 상관관계도 강하지 않았습니다. 2011년 연구에서도 상관계수가 0.05였는데다가 2024년 연구에서는 0.041이었어요. 김 교수는 "0.041은 기준선 바로 아래로 통계적 유의성이 매우 약한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상관관계의 강도를 의미하는 효과 크기도 무려 3분의 1로 줄었습니다. 카나이 연구팀의 효과 크기는 0.23이었던 반면 페탈라스 연구팀의 효과 크기는 고작 0.068이었죠.
"검증 연구에서 연구 규모를 늘렸는데 효과 크기가 줄어들면 좋지 않은 신호입니다." 함께 연구 결과를 살펴본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는 '효과 크기 감소' 현상을 지적했습니다.
페탈라스 연구팀은 총 928명의 뇌를 분석했는데 이는 카나이 연구팀 실험군(90명)의 10배가 넘습니다. 보통 검증 연구에서는 연구 규모를 늘리면 효과 크기가 보다 정확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반대로 효과 크기가 줄어들면 초기 연구에서 효과 크기가 과장됐거나 효과가 우연히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기존 연구를 뒤집는 검증 연구 결과에 김 교수는 "오히려 정당별 지지 수준에 따라 편도체 부피가 거꾸로 된 'U자' 그래프 모양을 띠는 것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극단적인 진보주의자나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는 편도체 크기가 작았고 중도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편도체 크기가 큰 경향성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편도체 크기가 인지적 유연성과 연관성이 있다면 이 그래프는 정치적 극단성을 가진 사람은 인지적으로는 보수적일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신념이 강한 사람이 편도체가 작을 수 있다는 거죠."
논문과 페탈라스 연구팀은 크게 주목하지 않은 부분이었습니다. 이처럼 정치 성향과 뇌의 상관관계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구조 연구뿐만 아니라 뇌의 기능 그리고 연결성을 살펴보는 연구도 있습니다. 연구 결과는 정치적 성향에 따른 뇌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는 걸 계속해 말해줍니다.
● Go/No-Go 인지적인 보수성 차이, 뇌의 부위 간 연결성 차이
정치 성향과 뇌의 연관성을 살펴보는 연구는 그동안 아주 다양하게 이뤄져 왔습니다. 초기 논문은 2007년에 발표됐습니다. 데이비드 아모디오 미국 뉴욕대 심리학과 교수팀은 '진보주의자들이 인지적으로 예민하며 보수주의자들은 인지적인 보수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뇌과학'에 발표했습니다. (doi: 10.1038/nn1979)
사람들의 인지 조절 능력을 살펴보기 위해 연구팀은 Go/No-Go 실험을 활용했습니다. Go/No-Go는 참가자들이 자동화된 반응을 얼마나 잘 억제하는지 평가하는 실험입니다. 예를 들어 화면에 파란 원이 나타나면 참가자들은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이때 파란 원은 참가자들에게 반응을 요구하는 Go 자극입니다. 그러다 화면에 빨간 원이 나타나면 참가자들은 버튼을 누르지 않고 반응하지 말아야 합니다. 화면에는 주로 파란 원이 나타나다가 가끔 빨간 원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때 참가자들은 습관적으로 버튼을 누르려는 행동을 억제해야 하죠.
연구 결과 진보주의자들은 No-Go 반응에 예민하게 반응해 버튼을 누르지 않고 잘 참는 것으로 나타났고 보수주의자일수록 변화에 둔감하게 반응해 No-Go임에도 버튼을 자주 누르는 것이 관찰됐습니다. 연구팀은 뇌의 전기적 활동 변화를 측정하는 ERP를 활용해 ACC 반응도 살폈습니다. 진보주의자 일수록 ACC 활동이 강하게 측정됐어요.
2013년에는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한 뇌 기능 연구가 발표됐습니다. (doi: 10.1371/journal.pone.0052970)
대런 슈라이버 영국 엑서터대 정치학과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연구팀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공화당, 민주당 지지자들이 위험을 평가할 때 서로 다른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연구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화면에 20, 40, 80 숫자가 순서대로 나타납니다. 숫자는 참가자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의 크기인 동시에 손해의 크기입니다. 만약 숫자가 파란색으로 뜨면 이익, 빨간색으로 뜨면 손해입니다.
참가자는 숫자가 순서대로 커진다는 것을 알지만 다음에 나올 숫자가 파란색인지 아니면 빨간색인지는 알 수 없죠. 즉 20에 버튼을 누르지 않고 그다음 숫자를 기다리는 것은 더 큰 보상을 위해 큰 손실 위험을 감수하는 위험한 선택입니다.
연구 결과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 간의 위험 감수 행동에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정치 성향에 따라 위험을 감수하는 정도가 다르지는 않았던 것을 의미합니다.
다만 위험을 감수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는 좌측 섬엽이 공화당 지지자는 우측 편도체가 더 활성화됐습니다. 연구팀은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위험을 판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2008년에는 사람의 생리학적 특성이 정치적 성향과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존 히빙 당시 미국 링컨 네브래스카대 정치학과 교수가 이끈 연구팀은 위협적인 이미지나 갑작스러운 큰 소리 등에 대한 실험 참여자들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그 결과 보수적인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일수록 위협적인 자극에 더 강한 생리적 반응을 보였어요. 이 논문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됐습니다. (doi: 10.1126/science.1157627)
안우영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가 미국 버지니아공대 카릴리온 연구소에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던 당시 제1저자로 참여한 2014년 논문도 히빙 교수팀의 연구 결과를 뒷받침합니다. (doi:10.1016/j.cub.2014.09.050)
10월 7일 서울대에서 만난 안 교수는 "역겨운 감정을 만드는 사진을 볼 때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간의 신경 반응 차이가 나타났다"고 설명했습니다. 연구팀은 신체가 훼손된 사진이나 바퀴벌레, 구더기 등의 벌레 사진을 연구에 사용했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보다 이러한 사진에 더 강한 혐오 반응을 보였습니다.
"역겨운 사진을 봤을 때 반응한 뇌의 부위도 다른 것을 확인했습니다." 안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역겨움을 느낄 때 보수주의자들의 뇌에서는 배외측 전전두엽 피질, 기저핵과 창백핵, 방추상회 등이 활성화됐습니다. 같은 상황에서 진보주의자들의 뇌에서는 하부 두정엽과 뒤쪽 섬엽이 활성화됐죠."
한편 2020년 권준수 당시 서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장대익·김택완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연구팀은 정치 성향에 따른 뇌 기능 네트워크의 차이를 분석했습니다. (doi: 10.1038/s41598-020-72980-x)
연구팀은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주의자들보다 안와전두피질과 쐐기앞소엽, 그리고 안와전두피질과 섬엽간의 연결성이 더 큰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결과와 참가자들의 자기문답 설문조사를 분석해 "보수주의자들의 심리적 안정성과 감정적 회복력이 더 강하다"고 해석했습니다.
정치 성향에 따라 뇌 기능 네트워크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권 교수는 "뇌는 특정 부위가 개별적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이 상호작용을 하며 유기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은 뇌 연구 해석의 어려움, 결과 활용의 위험성
연구 결과를 해석하는 것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뇌를 둘러싼 여러 연결고리를 찾아낸 연구자들조차도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권 교수는 "연구자들이 본 것은 현상인데 이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연구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뇌의 부위 혹은 연결망이 하나의 역할, 하나의 이유만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안 교수는 2014년 발표한 연구에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간 활성화된 뇌 부위의 차이를 확인했지만 의미를 해석하지 않은 채 남겨뒀습니다.
"해석이 어렵다는 것은 반복 연구가 필요한 상황인 것 같은데 대부분의 정치적 신념과 뇌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는 연구는 단발적인 것 같아요."는 질문에 전문가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안 교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은 나라들조차도 뇌 연구비는 대부분 질병 연구에 집중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정치와 뇌 연구의 연속성이 부족한 것을 아쉬워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사회적 가치를 학습해 가는 생물학적인 메커니즘 연구가 계속된다면 자연스럽게 정치적 선호에 대한 이해도 높아질 수 있다"고 말이죠.
뇌 연구는 아직 눈을 감고 코끼리의 다리 하나를 만지는 일입니다. 만져 느낀 것은 있지만 이것만으로 코끼리의 형태를 추측하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카멀라 해리스와 도널드 트럼프 둘 중 누가 당선이 되든 간에 "정치적 견해와 뇌 연구가 복잡한 사회 현상 그리고 사람을 단편적으로 재단하는 수단처럼 사용되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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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기자 tae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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