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씨의 눈부신 인생' 작가 앤 그리핀 "한강의 겸손함에 감명받아"
"내 대표작에서 침묵하는 한국 남성들을 봤다고 해…큰 영광"
(서울=뉴스1) 김지완 기자 = "나는 이 나라와 사랑에 빠지고 있다"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앤 그리핀(Anne Griffin)은 처음 방문한 한국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서울도서관이 개최한 '서울-아일랜드 문학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달 23일 입국한 그리핀 작가는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인생'(When All Is Said)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가다. 이 작품은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호텔 바에서 위스키와 흑맥주를 마시며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인물과 사건 이야기를 독백으로 풀어내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2019년 아일랜드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그리핀 작가는 이 작품으로 아일랜드 북 어워드에서 올해의 신인상을 받았다. 2021년에는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다.
아일랜드 문학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리핀 작가는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가진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를 자주 언급했다. 그는 한강에 대해 "내 마음을 감동시키는 품격이 있다"며 "한강에게 감사하고 싶다"고 극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에 처음 왔다고 들었다.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은 어떠한가.
▶이 나라와 사랑에 빠지고 있다. 정말 아름다운 나라라고 생각한다. 어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궁전(경복궁)에 있었는데, 옛것과 새것을 나란히 보는 것이 매혹적이었다. 궁전 뒤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여러 고층빌딩이 보이더라. 이 광경은 정말 인상적이었고 아일랜드의 역사를 연상시키는 한국의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줬다.
한국과 아일랜드의 역사에는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두 나라는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에서 독립을 이루고 지금의 상태까지 발전해 온 공통의 역사가 있다. 두 국가가 걸어온 비슷한 길을 보는 것이 내게 가장 감동적인 일이다
-더블린과 런던의 서점에서 일하다 2013년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나는 서점에서 일한 후 난 지역 사회 개발 활동가로 일하면서 교육을 못 받았거나 소수 민족 출신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불이익을 경험한 사람들과 함께 일했다. 그때 나는 아일랜드 사회에서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를 통해 인간의 마음, 영혼, 그리고 취약성에 대해 알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 중 아일랜드에서 유명한 작가가 된 '존 보인'(John Boyne)과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그는 내게 "당신은 오랫동안 훌륭한 문학을 읽었으니 (소설을) 써야 한다"고 말했고, 사실 바로 그 대화가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아일랜드의 작은 섬에서 4개월 동안 대서양을 바라보며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문예창작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인생'을 썼다. 이 작품은 사실 영국 출판사에서 받아주기 전까지 37번이나 거절당했다. 지금은 24개 언어로 번역본이 나왔다. 이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최근 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 문학을 접해본 적이 있는가? 한국 문학을 평가한다면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그렇다. 2017년에 한강 작가의 부커상 수상작을 처음 읽었다. 그의 글뿐만 아니라 한강의 인간적인 면모가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고 싶다. 한강은 내 마음을 감동시키는 품격이 있고 우리 모두에게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쓰는 내용과 다루는 주제뿐만 아니라 그가 전달하는 겸손과 존중의 메시지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한강 작가에 그 점에 대해 감사하고 싶다.
영화 얘기도 하고 싶다. 지난 몇 년 동안 본 영화 중 가장 좋았던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이렇게 감동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온화하고 정중하지만 날것 그대로의 뜨거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은 느낌인데, '버닝'은 그런 묘사가 탁월했다. 그래서 나는 한국 문학의 열렬한 팬이다.
-당신의 대표작인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인생'을 읽은 한국의 배우 봉태규 씨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던)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됐다"며 "모리스 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당신도 모리스 씨처럼 위스키나 흑맥주를 1잔 시킬 때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나 사람을 떠올린다면 몇 잔 정도 시킬 것 같은가?
▶모리스는 여러 사람의 집합체다. 나는 아일랜드의 모든 조용한 남자들과 아일랜드 문화의 모든 침묵을 묘사하고 싶었다. 이와 관련해 내게 큰 감동을 준 것 중 하나는 한국 출판사에서 계약하기로 결정했을 때였다. 출판사는 모리스에게서 침묵하는 한국 남성의 모습을 보았고, 한국에서도 충분히 공감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봉태규 씨가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고 말한 것은 내게 큰 영광이다.
내가 모리스 씨처럼 건배한다면, 하나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남편을 만났을 때, 존 보인으로부터 '소설을 써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이다. 또 다른 잔은 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이다. 난 과묵하고 종교적으로 엄격한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말년에 내게 가르쳐주신 모든 좋은 것들, 그의 사랑과 마지막에 내게 마음을 열어준 것에 건배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건배는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어머니를 위해 할 것이다. 사랑을 주고 받는 법을 가르쳐주신 어머니는 아주 온화한 분이셨다. 아, 또 이번 한국 여행을 위해 건배를 한 번 더 해야겠다. (웃음)
-아일랜드 문학만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지금 아일랜드 문학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작년에 아일랜드 작가 폴 린치가 부커상을 받았다. 이제 우리는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표현의 자유를 더 많이 누리고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권력의 통제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극적으로 약해졌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여러 차례의 국민투표가 진행되면서 여성들에게 엄청난 자유가 주어졌고 여성 작가도 많아졌다. 이제 아일랜드는 매우 자유로운 법을 갖고 있다.
나는 아일랜드의 글쓰기에서 슬픔과 슬픔의 감정을 파고드는 진심이 드러나는 것을 좋아한다. 아일랜드 특유의 정서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야기꾼의 민족이고, 항상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우리만의 독특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지난 세월의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한국인들에게 아일랜드를 방문할 때 꼭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할 만한 장소가 있나.
▶정말 많은 것들이 있다. 먼저 '달키 북 페스티벌'이 있다. 달키(Dalkey)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이지만 사실 축제는 더블린에서 열린다.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매우 인상적인 북 페스티벌이다. 이와 별개로 더블린에서는 더블린 북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이것도 최고의 축제 중 하나다.
아일랜드에서 꼭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곳은 아일랜드판 제주도라고 할 수 있는 아일랜드 최남단의 '케이프 클리어 섬'(Cape Clear Island)이다. 아까 말했던 4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글을 썼던 곳이 이곳이다. 내 마음속에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이 섬은 주민이 150명밖에 없을 정도로 작지만 이곳에서 '3스퀘어 마일'(3 Sq. Miles)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진을 생산한다. 이곳은 아일랜드에 남은 몇 안 되는 아일랜드어를 사용하는 섬 중 하나이기도 하다.
gw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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