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가면 살인마, ‘처녀’만이 이길 수 있다고?[허진무의 호달달]

허진무 기자 2024. 11.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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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림
감독 웨스 크레이븐
배우 니브 켐벨, 스키트 울리치, 코트니 콕스, 드루 배리모어
상영시간 111분
제작연도 1996년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영화 <스크림>은 고교생 케이시(드루 배리모어)가 유령 가면 살인마에게 무참히 살해당하는 13분짜리 오프닝 씨퀀스로 시작한다. IMDB 갈무리

영화를 사랑하고, 특히 호러 영화를 사랑하는 기자가 ‘호달달’ 떨며 즐긴 명작들을 소개합니다. 격주 목요일에 찾아갑니다.

“헬로우, 시드니.” 전화 너머로 굵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어 비명을 지르듯 일그러진 유령 가면을 쓰고 검은 망토를 걸친 연쇄살인마가 나타나 칼을 마구 휘두른다.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스크림>(1996)은 연쇄살인마가 등장해 사람을 난도질하는 ‘슬래셔’ 영화의 새 지평을 연 작품이다. 어린 시절 사무치게 보고 싶어 동네 비디오 대여점 사장님을 어떻게든 구슬려 빌려보려고 애썼던 추억이 떠오른다. 비디오 테이프에 붙어 있던 ‘청소년 관람불가’ 딱지가 그렇게 원망스러웠다.

고교생 ‘시드니’(니브 켐벨)는 친구 ‘케이시’(드루 배리모어)와 그의 남자친구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과 슬픔에 빠진다. 시드니의 어머니도 1년 전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기자 ‘게일’(코트니 콕스)이 나타나 케이시 사건을 취재한다. 시드니도 밤중에 이상한 전화를 받고선 유령 가면을 쓴 살인마에게 쫓긴다. 살인마의 정체는 누구일까. 다정한 미남 남자친구 ‘빌리’(스키트 울리치), 호러 영화 마니아 ‘랜디’(제이미 케네디), 음흉한 양아치 친구 ‘매튜’(스튜어트 마처), 가족처럼 절친한 친구 ‘테이텀’(로즈 맥고완), 어수룩한 경찰 ‘듀이’(데이비드 아퀘트)까지 모두가 의심스럽다.

<스크림>은 케이시가 유령 가면 살인마에게 무참히 살해당하는 13분짜리 오프닝 씨퀀스로 시작한다. 유명 배우 드루 베리모어가 등장하자마자 죽다니… 주인공이라고 믿었다가 얼이 빠졌다. 그래도 드루 베리모어가 전화기를 쥐고 비명을 꽥 지르는 모습은 주연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뽐낸다. 예쁜 금발 여자와 살인마는 미국 슬래셔 영화의 아주 고전적인 이미지다. 그런데 <스크림>은 여기서 몇 발자국 더 나간다. 살인마는 케이시에게 ‘호러 영화 퀴즈의 정답을 맞추면 인질로 잡은 남자친구를 살려주겠다’고 게임을 제안한다. <스크림>은 이 장면으로 호러 영화 팬을 위한 영화임을 선언한다.

<스크림>은 물론 빼어난 스릴러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슬래셔 장르에 대한 경의와 애정을 표현하는 동시에 앞선 영화들의 클리셰를 극복하는 작품이다. <스크림>은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1978), 숀 S 커닝햄 감독의 <13일의 금요일>(1980), 폴 린치 감독의 <졸업 파티>(1980), 조 단테 감독의 <하울링>(1981), 웨스 크레이븐 감독 본인의 <나이트메어>(1984), 조나단 드미 감독의 <양들의 침묵>(1991) 등을 인용한다. <스크림>의 살인마는 희생자에게 “가장 좋아하는 호러 영화가 뭐야?”라고 반복해 묻는다. 지독한 호러 영화 사랑마다.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스크림>은 슬래셔 장르에 대한 경의와 애정을 표현하는 동시에 앞선 영화들의 클리셰를 극복하는 작품이다. IMDB 갈무리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스크림>은 스스로 관객과 거리두기를 하고 슬래셔 장르의 클리셰들을 뒤집으면서 통렬한 패러디를 만들어낸다. IMDB 갈무리

랜디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수많은 영화를 섭렵한 영화광이다. 랜디는 파티에서 친구들에게 ‘호러 영화에서 살아남으려면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을 설명한다. “섹스를 하지 않는다” “술과 마약을 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이든 ‘금방 올게’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처녀만이 살인범을 이길 수 있다”는 규칙이다. <스크림>은 스스로 관객과 거리두기를 하고 이런 규칙(클리셰)들을 뒤집으면서 통렬한 패러디를 만들어낸다. “내 영화에선 아니야”라는 시드니의 대사는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일침’처럼 들린다. 시드니가 거꾸로 범인에게 전화해 입장이 뒤바뀌는 장면, 범인이 TV에 한눈을 팔다 TV 화면과는 정반대로 공격당하는 장면, <할로윈>의 살인마가 등장한 TV 화면이 범인을 덮치는 장면 등은 놀라운 아이디어다.

<스크림>은 1990년대 침체기에 빠졌던 슬래셔 영화를 부활시킨 명작으로 꼽힌다. 감독 웨스 크레이븐만큼이나 각본가 케빈 윌리엄슨의 실력 덕분일 것이다. 케빈은 <스크림>의 흥행을 발판 삼아 영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1997) <패컬티>(1998), TV시리즈 <뱀파이어 다이어리> 등을 맡은 유명 각본가로 성장했다.

<스크림>은 한국에선 ‘고교생이 교사를 살해한다’는 내용이 문제라며 수입이 보류돼 1999년에서야 개봉했다. 이후 스크림 시리즈는 꾸준히 이어져 2026년 7편 개봉을 앞뒀다. 이 시리즈는 호러 영화를 패러디하고 살인마의 정체를 추리하는 기본 형식을 지켜왔다. 웨스 크레이븐 감독이 2015년 사망하기 전 1~4편을 연출한 데다 5~6편 감독들도 스크림 팬으로서 원작을 존중했다. 심지어 1편의 일부 등장인물이 후속편들까지 출연하며 팬들과 함께 추억을 쌓아갔다. 호러 영화 팬에게는 오랜 친구처럼 무척 소중한 시리즈다.

스크림 시리즈는 1996년 1편 이후 꾸준히 이어져 2026년 7편 개봉을 앞뒀다. IMDB 갈무리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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