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는 좋지만 학대는 싫어…'동물복지' 축산물, 도움 될까?[싸우는 사람들]

CBS노컷뉴스 강지윤 기자 2024. 11. 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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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동물들의 나은 삶' 위해 싸우는 사람들
소비자 10명 중 9.5명 "농장동물 복지 개선 필요하다"
임신 반복하는 어미돼지…공장식 축산 여전히 열악
'동물복지' 축산물 소비…"농장 동물들에게는 큰 변화"
전체 1%도 안 되는 '동물복지' 농가…낮은 경제성이 걸림돌
편집자 주
세상에 사소한 싸움은 없다! 사회적 논의를 끌어내는 다양한 싸움을 조명합니다. 변화를 위해, 생존을 위해, 존엄을 위해 기존 체제와 관습에 맞서는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연합뉴스·스마트이미지 제공

#서울 송파구에 사는 A(33)씨는 고기를 먹을 때마다 농장동물들을 떠올린다. 몇 년 전 축산업의 실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아서다. 어릴 적부터 이어진 식습관을 바꾸기 어려워 '비건'이 되진 못했지만, 가급적 '동물복지' 축산물을 소비한다. 마트에서 고기를 집어들 때마다 A씨는 생각한다. "고기는 먹고 싶지만 동물들이 동물답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모순인가?"

2일 축산업계 등에 따르면 축산물을 소비하면서도 농장동물들의 복지를 고려하는 인구가 늘고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지난달 23일 발간한 '농장동물 및 어류 복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를 보면, 전국 성인남녀 2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무려 95.4%가 "공장식 밀집사육 등 농장동물 복지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최근 6개월 동안 동물복지인증 축산물을 구매했다고 답한 이들은 전체의 58.4%였으며, 향후 구매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89.6%였다.

공장식 축산이란 최소 비용으로 이윤을 내기 위해 동물의 기본적인 욕구와 습성을 고려하지 않고 한정된 공간에서 대규모 밀집 사육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생산량 극대화를 위해 대부분 과정이 기계화·자동화돼 있고, 동물을 '물건'처럼 취급해 '공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국 지각력 협회(Sentience Institute)의 2019년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농장 동물의 90% 이상이 공장식 축산으로 사육되고 있다.

과도한 착취 지적됐지만…평생 땅 못 밟는 암탉, 철제 관 갇힌 어미돼지

공장식 축산은 열악한 환경과 비인도적인 사육 관행 때문에 '홀로코스트'에 비유되곤 한다. 동물들을 과도하게 착취할 뿐더러 대규모 전염병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이어졌지만, 획기적 개선은 아직도 먼 얘기다.  
배터리케이지. 카라 홈페이지 캡처


난각번호 3번·4번 알을 낳는 산란계는 밀집사육을 위해 만든 '배터리 케이지'에 산다. 이는 6~8마리의 닭을 한 케이지에 욱여넣어 겹겹이 쌓아 올린 구조로 마치 아파트를 연상시킨다.

닭 한 마리에게 주어지는 공간은 A4용지 한 장 크기 정도인 0.05㎡(4번)~0.075㎡(3번). 축산법 개정에 따라 내년 9월부터는 4번 사육 방식이 사라질 예정이지만, 케이지 사육은 유지된다. 결국 미세하게 넓어진 닭장에서 이전과 다름 없이 땅 한 번 밟아보지 못한 채 평생 달걀만 낳다가 죽는 것이다.

(왼쪽 상단부터) 사료통에 접근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밀집 사육되는 닭들의 모습. 심각한 깃털 손실, 발바닥 피부염, 괴사를 보이는 닭들의 모습. 동물해방물결 제공


육계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동물해방물결이 지난 7월 삼계탕에 이용되는 '삼계' 농장을 조사한 결과 닭 한마리에 주어지는 공간은 0.02㎡에 불과했다.

당시 농장에 방문했던 장희지 활동가는 CBS노컷뉴스에 "닭 2만 마리 가량이 밀집된 공간에 지내는데, 고온 스트레스 때문에 깃털이 다 빠져있었다"고 했다. 이어 "창문도 없는 계사인 데다 살을 찌우기 위해 24시간 불을 켜놓는다"며 "고기 생산만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동물해방물결 제공


국내 돼지 농가의 90% 이상은 어미돼지를 가로 60cm, 세로 210cm 크기의 철제 사육틀인 '스톨'에서 사육한다. 스톨은 돼지가 서고 앉는 것 외의 모든 움직임을 제한해 '철제 관'과 다를 바 없다는 평가다.

다산하는 돼지는 새끼가 젖을 뗀 지 일주일 후면 다시 임신할 수 있다. 사육틀에 갇힌 어미돼지는 3~4년 동안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가 도축된다.

2020년 1월 시행된 축산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임신한 돼지는 교배 6주 이후부터 '군사 사육' 방식으로 풀어 키워야 한다. 다만, 기존 농가는 10년의 유예기간을 갖기 때문에 이 같은 비윤리적 사육이 계속될 전망이다.

동물의 몸을 절단·훼손하는 행위도 관행적으로 이뤄진다. 좁은 우리에서 자라는 동물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서로를 공격한다. 이에 작업자들은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닭의 부리, 새끼 돼지의 이빨과 꼬리를 자른다. 수퇘지의 고환을 당겨 제거하는 물리적 거세와, 살아있는 수평아리를 분쇄기에 갈아 폐기하는 일도 빈번하다.

'동물복지' 축산물 소비…"완벽하진 않지만 동물에겐 큰 변화"

우리나라의 축산법에서는 동물복지 축산 농장을 '본래의 습성 등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관리하는 축산농장'으로 규정한다. 농장동물에게 보다 넓은 최소면적과 습성을 고려한 사육환경을 제공한다. 이 농장에서 사육되고 동물복지 운송·도축을 거쳐 생산된 제품이 '동물복지 축산물'이다.
방사사육. 동물자유연대 제공


난각번호 1번은 자유방목 기준을 충족하는 '방사 사육'일 때, 2번은 실내 평사 사육일 때 표시된다. 이렇게 자라는 닭들은 자유롭게 이동하고 땅을 쪼는 등 생리적 욕구를 충족하고, '모래목욕'을 통해 스스로 기생충을 제거한다. 살충제나 항생제를 남용하지 않아도 돼 소비자에게도 이롭다.

돼지는 군사사육을 원칙으로 한다. 먹을 것을 찾아 코로 파헤치고 발로 긁고 씹는 행동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짚, 나뭇조각, 톱밥, 가죽 끈 등 적합한 보조물을 제공한다.

돼지의 종류, 정기적 청소 여부에 따라 마리당 2.3㎡~7.5㎡의 최소 공간을 주고, 암모니아와 이산화탄소 농도가 일정 수치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동물자유연대 정진아 사회변화 팀장은 "열악한 공장식 축산업에서 고통받는 동물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작은 진전이라도 큰 변화"라며 "케이지 안에서 살아가는 동물과, 케이지 밖이라도 돌아다닐 수 있는 동물이 다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정 팀장은 "과연 '복지'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의문이 붙을 수 있지만 현실을 고려했을 때 (동물복지 인증 축산물 소비가) 효과 있을 것"이라며 "(모든 축산업이) 동물 복지 축산으로 전환·확대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장희지 활동가는 "날개를 펼 수 없는 닭이 날개를 펼 수 있게 되는 것을 동물복지라고 이야기하는 것인데, 동물의 고통을 크게 줄여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하루 한 끼 완전한 채식을 실천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장식 축산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물복지 계란으로 분류되는 난각번호 2번은 케이지 사육에서 문만 열어 놓은 형태인 개방 케이지 사육도 가능하다. 마리당 면적을 케이지 면적까지 포함하다 보니 1층 평사의 면적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개방 케이지 사육. 카라 홈페이지 캡처

전체 1%도 안 되는 '동물복지' 농가…동물복지 도축장 고작 12개

동물복지 축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지만, 동물복지 인증농가의 절대적인 수는 미미한 수준이다. 낮은 경제성, 도축 장소의 부족함 등이 원인으로 꼽히며 기존 농가들은 정부의 재정적·행정적 지원, 동물복지 축산물 판로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서삼석(전남 영암‧무안‧신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동물복지 인증 농가는 전체 농가 대비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 7월 말 기준 국내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 농장은 총 469개로 산란계 245개, 육계 157개가 대부분이었으며, 돼지와 한우는 각각 26개, 12개에 불과했다.

전국 동물복지 도축장은 돼지 5개, 닭 4개, 소 3개, 총 12개로 정작 도축할 장소가 없어 일반 축산물 가격에 판매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농가는 초기 시설투자 비용 부담과 낮은 경제성 때문에 동물복지 농가 전환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어웨어가 전국 양돈 축산업 종사자 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4 농장동물 복지에 대한 양돈농가 인식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55.4%가 '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 전환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전환에 필요한 요소로는 초기비용 지원(87.8%), 동물복지인증 축산물 판로 확대(61%), 인증 절차 행정적 지원(58.8%), 세제 혜택 및 인센티브 제공(51.2%), 소비자 대상 홍보 및 인식 개선(43.9%) 등의 순이었다.

들판에서 자유롭게 먹이활동을 하는 이베리코 돼지들. EBS 유튜브 캡처


동물복지 축산물의 품질을 차별화하는 브랜딩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스페인의 경우 '이베리코 돼지'의 사육 환경에 따라 엄격하게 등급을 나눈다. 최상급인 '베요타' 등급의 돼지는 도토리나무가 있는 넓은 초원에 방목해 키워야 한다. 돼지들은 넓은 들판을 거닐고, 사료가 아닌 도토리 중심의 먹이 활동을 하며 도축 전까지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다. 이 같은 사육 방식은 마리당 생산비와 소비자가를 높이지만, 품질을 인정받아 유명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수요가 끊이질 않는다.

우리나라에도 방목 중심 사육 농가에 부여하는 '방목생태 축산' 인증제가 존재하지만, 올해 6월 기준 방목생태 축산 농장은 전국에 56곳에 불과할 뿐더러 제도 자체의 인지도가 낮은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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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강지윤 기자 lepomm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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