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참 머뭇대더니 "마지막…" 삶 포기하려던 20대 붙잡은 경찰

김지은 기자 2024. 11. 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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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4팀 김성은 경위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2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4팀 김성은 경위. /사진=본인제공

"경찰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

지난달 13일 오후 8시40분쯤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에 0112번으로 신고가 접수됐다. 0112번은 비정형 신고로, 신고자 위치, 인적사항, 신고이력 등을 확인할 수 없는 번호를 말한다. 신고자 정보가 전무한 상황에서 유일한 단서는 지금 걸려온 전화 한 통 뿐이었다.

당시 전화를 받은 사람은 22년차 베테랑 김성은 경위였다. 신고자는 한참 동안 입을 다물다가 조심스레 아버지와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 김 경위가 무슨 일로 아버지와 통화를 원하느냐고 묻자 신고자는 마지막으로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 통화'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김 경위는 긴장 상태가 됐다. 머릿 속에는 '이 전화는 절대로 끊으면 안된다' '무조건 길게 통화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40분 동안 삶을 포기하려는 자와 구하려는 자의 대화가 이어졌다.

"아버지와 통화하려면…" 베테랑 경찰의 임기응변

해당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애플워치에는 긴급 통화 기능이 있다. /사진=독자제공

가장 중요한 것은 신고자 위치를 특정하는 일이었다. 김 경위는 "무슨 일이냐. 아버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말을 걸었다. 신고자는 아버지 연락처를 알려줬지만 곧바로 3자 통화를 진행하면 안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김 경위는 임기응변을 발휘했다. 그는 경찰이 지금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는데 안받는다고 둘러댔다. 신고자는 아버지가 전화를 안 받을리가 없다고 했다. 김 경위는 최근 보이스피싱 전화가 많아서 확인되지 않는 전화를 안받는 경우가 있다고 답했다.

김 경위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는 아버지와 통화하려면 신고자가 누구인지 알려야 한다며 이름을 물었다. 신고자가 이름을 답하자 "전화번호도 알려줄 수 있느냐. 지금 전화 끊기면 아버지와 나중에 통화 연결해드리고 싶어도 못한다"고 했다.

신고자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산에 올라오기 전 휴대폰을 버렸다고 했다. 신고자는 산 정상에 올라가 뛰어내리기 전 애플워치 긴급 통화로 도움을 요청한 상황이었다.

김 경위가 어떤 산에 올라갔느냐고 묻자 신고자는 수성동 계곡으로 올라갔다고 했다. 김 경위는 순간 인왕산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현장 경찰에게 인왕산 일대를 수색해달라고 다급하게 요청했다.

"삶을 포기하지 말아요" 신고자를 구하기 위한 노력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위치한 수성동 계곡 모습.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시간을 버는 것은 김 경위 몫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전화를 안받아서 경찰이 집에 찾아가려고 한다"며 집 주소를 알려달려고 유도했다. 신고자는 반신반의한 목소리로 집 주소를 알렸다.

신고자는 언제쯤 연결이 되느냐고 재촉했지만 김 경위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느냐. 어떤 속상한 일이 있느냐. 어떤 일이 있어도 삶을 포기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신고자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김 경위는 "아버지를 모시고 3자 통화할 수 있는 경찰서로 이동 중이다. 제발 전화를 끊지 말라"고 했다.

그 사이 현장 경찰은 수성동 계곡 일대에서 신고자 휴대폰을 발견했다. 신고자는 멀리서 빨간 불빛이 보인다고 했다. 김 경위는 순간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버티자'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신고자는 유언을 남기겠다고 말했고 김 경위는 그제서야 아버지와 통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신고자는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앞으로 잘사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못할 것 같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 순간 현장 경찰과 구급대원이 신고자를 극적으로 발견했고 안전하게 구조했다.

김 경위는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바로 통화를 연결하면 정말 마지막이 될 것 같았다고 한다. 신고자가 무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두 손 모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외쳤다.

112의 날… 사건 현장의 첫 순간을 마주하는 경찰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4팀 김성은 경위. /사진=본인제공

김 경위는 112치안종합상황실에서만 10년 넘게 근무한 베테랑 경찰이다. 따뜻한 목소리와 성실한 자세는 그녀의 강점 중 하나다. 그는 평소 근무 일지에 112 신고 내용을 적고 어떤 식으로 질문하고 순발력 있게 대응할지 고민한다.

그는 "죽음은 그 순간만 모면하면 괜찮아진다"며 "신고자가 죽음보다 아버지 통화에 집중하도록 생각을 전환시키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은 하루 평균 1만1000건의 신고를 접수한다. 이 중 비정형 신고는 약 0.8% 정도다.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신고 유형을 보면 보호조치가 가장 많았고 위험방지, 시비 순이었다.

김 경위는 "112 신고는 사건을 마주하는 첫 통화이자 마지막 통화가 되기도 한다"며 "신고자 위험 상황을 현장 경찰에게 빠르게 전파하고 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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