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세 물가연동제 검토 나선 기재부… “줄어들 세수 대응책 필요”

세종=이신혜 기자 2024. 11. 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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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세제실 “당장 도입은 시기상조”
“세수 급감하면 소득공제 줄일 수밖에”
전문가 “최고세율 낮추고, 면세자 줄여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22대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나오면서 실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세청 차장 출신인 임광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을 꺼내 들자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하면서 기재부도 도입 영향을 검토하는 중이다. 일단은 당장 시행하기에 부작용이 많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2일 국회에 따르면 임 의원은 이달 중순 국정감사에서 “소득세 물가연동제가 실질임금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근로자의 세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 “다만 정책당국 입장에서는 세수감소라든지 고소득자에 혜택이 더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고민할 점이 있다. 고소득자에 대한 혜택은 제한을 두는 방안까지 포함해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 의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 정책위 상임부의장으로 임명한 인사로, ‘친명계’ 조세정책 책사로 통한다.

이에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구체적인 안을 내면 조세소위에서 논의를 해 볼 필요가 있다”며 “물가와 연동 부분은 근본적인 문제로,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소득세 물가연동제는 소득세 과표구간과 세율 등을 물가상승률과 연동해 자동적으로 조정하는 제도다. 소비자물가지수(CPI)를 토대로 매년 혹은 일정 기간을 두고 과표구간을 조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물가가 상승해 명목소득이 증가할 경우, 소득세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완화하자는 취지에서 설계됐다. 명목 소득 증가율이 물가상승률보다 낮으면 실질소득이 감소하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거론된다.

그래픽=정서희

2023년 귀속 기준 종합소득세 세율은 과세표준에 따라 ▲1400만원 이하는 6% ▲1400만원 초과 5000만원 이하는 15% ▲5000만원 초과 8800만원 이하는 24% ▲8800만원 초과 1억5000만원 이하는 35% ▲1억5000만원 초과 3억원 이하는 38% ▲3억원 초과 5억원 이하는 40% ▲5억원 초과 10억원 이하는 42% ▲10억원 초과 시 45%를 부과한다.

물가연동제는 과표구간을 물가상승률만큼 올리는 식으로 작동된다. 예컨대 물가상승률이 10%라고 가정하면, 과세표준 최고 구간인 ‘1억5000만~3억원’은 ‘1억6500만~3억3000만원’으로, ‘3억~5억원’은 ‘3억3000만~5억5000만원’으로, ‘10억원 초과’는 ‘11억원 초과’로 조정된다.

기재부에서는 일단 부정적인 기류가 흐른다. 기재부 세제실 고위관계자는 “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에 대해 신중히 보고 있다.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당장 도입하긴 어렵다”면서 “이를 시행하면 초고소득자의 세금이 크게 주는 ‘부자 감세’가 된다. 면세자 비율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과세형평성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연 소득이 11억원인 고소득자의 경우, 기존 과세 체계에선 10억원까진 42%의 세율이 부과(누진공제액 제외)되고, 초과하는 1억에 대해서는 45%의 세율이 매겨진다. 만약 소득세 물가연동제가 시행되면 이 사람은 소득 11억원이 모두 42%의 세율이 부과된다. 세율 3%포인트 감소 효과만으로도 세금이 300만원 줄어드는 셈이다. 여기에 과표구간이 올라가는 만큼 각 구간의 누진공제액 규모도 늘어나 고소득자의 감세 효과는 더 커지게 된다.

다른 세제실 관계자는 “소득이 많을수록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게 현행 과세체계인데,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면 고소득자가 내는 세금이 감소해 소득세수에 타격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면세자 비율이 높아진다는 점도 세제실이 우려하는 부분 중 하나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2년 귀속 기준 연말정산을 받은 근로자 중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은 면세자 비율은 33.6%(약 690만명)에 달했다. 연말정산을 받은 근로자 3명 중 1명 이상이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은 면세근로자라는 의미다. 세제실은 이러한 상황에서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면, 과표구간이 상향 조정돼 면세자 비중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물가연동제 도입으로 소득세 수입이 감소하면, 세수 확보를 위해 소득공제 혜택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정부가 과세표준을 정해 누진세 개념으로 만든 종합소득세 제도를 물가연동제로 바꾸면, 소득공제 항목을 줄여 부족한 세수를 맞출 수밖에 없다는 게 세제실 관계자의 설명이다.

3대 세목(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소득세 수입은 올해 1~9월 84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조2000억원(14.4%) 줄었다. 전체 국세수입(266조6000억원) 중 32%에 해당하는 소득세 비율이 줄어들면 국세 수입을 관리하는 세제실 입장에서 재정 운용에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

국세통계포털 ‘근로소득 분위별 신고 현황 및 점유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총급여 상위 10% 근로자가 낸 소득세(결정세액)는 42조8496억원으로 전체 소득세(59조1459억원)의 72.4%에 달했다. 상위 20%까지 합하면 이들이 내는 세금이 차지하는 점유비가 86.9%에 이른다. 하위 80%가 내는 소득세의 점유비는 13.1%에 불과하다. 물가 연동제로 소득세 과표구간이 자동 변경되면 고소득자가 수혜를 보고, 세수가 급격히 감소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통계다.

지난달 한국조세재정연구원 학술대회에서 ‘소득세의 과표구간 상승효과의 추정과 영향 분석’에서 물가연동제 도입 효과를 발표한 성명재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장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하기에는 공제 조정과 면세자 비율 조정 등 합의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며 “최소 5년, 길게는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소득세 물가연동제에 대한 연구를 하되 최고세율을 낮추고 실질적 면세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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