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떠나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베이징노트]
간첩 혐의로 구속된 한국인 A씨, 10개월간 가족 면회·통화도 불허
안보 내세워 기본적 인권조차 무시하는 법체계·수사관행은 리스크
중국 무역진흥 기관인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는 지난달 31일 400개 이상의 외국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90%가 3분기 중국의 사업 환경이 '만족스럽다'는 답변을 내놨다고 밝혔다.
CCPIT는 그러면서 "설문 조사에 참여한 외국기업은 중국 시장에 대해 계속해서 낙관적"이라며 "유럽과 미국 기업의 중국 시장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개선되었다"고 평가했다.
아니나다를까 글로벌타임스 등 중국 관영매체들은 다음날 CCPIT의 설문조사 결과와 평가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중국경제 광명론'을 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중국 사업 환경이 만족스러운데 중국에 투자하는 외국기업과 생활하는 외국인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3분기 대중국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전년 동기 대비 30.4%나 급감했다. 지난해에도 대중국 FDI가 2022년 대비 8.0%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심각한 상황이다.
중국에 등을 돌리는 외국기업들이 늘어나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갈수록 격화되는 미중갈등이다.
글로벌 경제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미국과 대립한다는 것은 그만큼 큰 리스크를 지고 있다는 의미라는 점에서 외국 기업은 중국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
이를 누구보다 잘아는 중국 당국은 최근들어 외국기업에 대한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고, 그동안 금지됐던 분야에도 투자를 허용하는 등의 당근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만으로는 외국기업의 마음을 돌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는 미중갈등이라는 외부적인 리스크와 별도로 중국 스스로가 만들어내고 있는 리스크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에 거주하던 50대 A씨가 자택에서 허페이시 국가안전국 소속 수사관들에 의해 체포돼 조사를 받다 구속된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반도체 업계 종사자로 삼성전자에 20년가량 근무하다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로 자리를 옮겨 일했다.
중국 당국은 A씨가 창신메모리 근무 당시 취득한 이 회사 정보를 한국에 유출한 것으로 보고 간첩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기술 독립에 사활을 걸고 있는 중국이 관련 정보 유출 사건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또 실제 주요 정보가 유출됐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사안의 경중을 떠나 피의자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조차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중국의 법체계와 수사당국의 태도다.
잠옷 바람으로 중국 수사관에게 끌려간 A씨는 5개월 가량 모처에 구금돼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지난 5월 구속돼 지금까지 구치소에 갇혀있다.
A씨 가족들은 그 10개월여 동안 한번도 A씨를 만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전화통화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또, 평소 당뇨를 앓고 있는 그에게 약이라도 전해달라는 가족들의 요청도 거부됐다.
심지어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A씨의 혐의조차 가족들이 참고인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어렴풋이 짐작한 것일 뿐 중국 수사당국은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이는 중국 법체계상 피의자에 대한 구금이 최장 7개월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A씨가 모처에서 조사받은 5개월은 '주거 감시'에 해당돼 구금 기간에서 제외됐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다 A씨 처럼 국가 안보와 관련해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경우 변호사 접견과 가족 면회 등 대다수 국가에서 인정되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제약이 가해진다.
결국 가족들은 무슨 이유로 A씨가 잡혀가 조사를 받고 있는지, 그리고 언제 재판이 시작되는지도 알지 못한채 오랜기간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달 29일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A씨 사건에 대해 "중국은 법치 국가로, 법에 따라 위법한 범죄 활동을 적발했고, 동시에 당사자의 각 합법적 권리를 보장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린 대변인의 설명이 틀린 것도 아니다. 중국 법은 A씨 사례처럼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피의자의 인권을 '없는 셈' 치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중국법 전문가들은 아무리 중국이라도 법적 근거없이 외국인을 잡아가는 경우는 없지만, 대신 개정 반간첩법 처럼 법규정이 모호하거나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이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과 외국기업에게 큰 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 당장 언제 내가 A씨와 같은 처지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재중 한국인 사회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외국기업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각종 당근책을 제시하고 외국인 투자 감소를 미국의 제재 탓으로 돌리기 전에 과연 중국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법체제와 수사관행을 갖추고 있는지 돌아보기 바란다.
여기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이유야 어찌됐던 한국 국민이 중국 수사당국에 붙잡혀 고초를 겪는 동안 주중 한국대사관이 과연 제역할을 했는지도 한번 묻고 싶다.
A씨 가족에 따르면 주중 한국대사관은 체포 직후 담당 영사를 지정하는데도 일주일 이나 걸렸다고 한다. 이후 영사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도 중국 수사당국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국의 입장을 존중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중국에서 지내다 보니 중국 법체계, 그리고 수사관행에 순응하는 것이 외교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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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CBS노컷뉴스 임진수 특파원 jsl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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