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손님이 식사 후 테이블 청소…일본의 일손 부족 문제 [같은 일본, 다른 일본]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공항버스가 다니지 않는 유명 여행지, 일본의 인력난을 실감
최근 다녀온 일본 여행에서 겪은 일이다. 도쿄에서 멀지 않은 가마쿠라로 직행하는 공항버스가 운행하지 않았다. 가마쿠라는 일본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잘 알려진 유서 깊은 도시다. 지난해 그곳을 찾은 관광객이 1,2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사시사철 북적이는 관광지일 뿐 아니라, 인근 도시를 합치면 인구가 40만 명에 가까운 도회 지역인데, 공항버스가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항버스 운행이 중단된 이유는 바로 ‘운전사 부족’. 버스 회사의 홈페이지에는 올해 3월부터 가마쿠라 노선 운행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안내가 올라와 있었다.
한국에서는 해외 여행이나 돼야 항공편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은 지역 간 이동 거리가 길고 섬이 많아 국내선 항공편이 생활의 일부분이다. 일본 전역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이라는 점에서, 항공편의 역할이 고속철도망에 못지않게 크다. 공항과 지역 거점을 연결하는 공항버스 운행이 중단되는 것은 단순히 지역 간 교통편이 사라지는 것을 넘어서는 ‘큰일’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가마쿠라에 사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공항버스 운행이 중지돼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90대 모친과 함께 항공편으로 규슈 온천여행 계획을 세워놓았는데, 공항까지의 이동 수단이 막막하다고 한다. 전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는 것은 고령인 모친에게는 무리이고, 택시비는 편도만 몇만 엔(한국 돈으로는 수십만 원)이 들어 항공 요금보다 더 비싸게 들게 생겼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심각한 인력난이 회자됐다. 하지만 산업 현장의 인력난이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를 야기할지 깊이 생각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기업에서 인재를 확보하기 어렵고, 편의점과 식당에서도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기 어려워지는 등 경제 분야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도 있다. 그런데, 실은 이 문제가 교통, 물류, 공공 서비스 등 사회 전체적인 인프라가 삐걱거리게 되는, 사회 전체가 짊어진 과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회를 지탱하는 인프라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하면, 처음에는 고령층, 환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어려움을 겪겠지만, 결국 결과적으로 지역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생활의 질이 저하된다. 일손 부족이 사회 전체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일본 물류업계의 ‘2024년 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일본 물류와 운송업계의 인력 부족은 이른바 ‘2024년 문제’라고 불려왔다. 화물 운송업계의 초과 근무시간을 규제하는 새 법규가 2024년 4월부터 시행되기 때문이었다. 이 새 법규의 취지는 장시간 노동으로 혹사당하는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동시에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것에 있었다. 과거처럼 노동자를 혹사하는 방식이 아닌, 지속 가능한 노동 환경을 구축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이 배경에는 일본 사회가 직면한 고령화와 저출생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노동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인력난을 겪고 있는데, 물류와 운송업은 그중에서도 특히 영향이 심각했다. 고질적인 인력난 속에서 현직 운전사들이 장시간 노동으로 부족한 인력을 메워 왔다. 그런데, 올해 4월부터는 더 이상 ‘언 발에 오줌 누기’식 해법을 쓸 수 없게 됐다. 새 법규가 시행되면서, 운전자의 연간 초과 근무는 960시간으로 제한됐고, 하루에 최소 11시간의 휴식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의무화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추가 인력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방이나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새로운 인력 채용이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인력 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물류와 운송망 곳곳에서 심각한 차질이 빚어졌다. 일부 운전사들은 장시간 노동이 줄어드는 것을 반기면서도, 인력 보충이 충분하지 않아 업무 강도가 높아졌다는 불만도 튀어나왔다. 결국 버스 회사는 가마쿠라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노선의 버스 운행을 중지하는 고육지책을 택했다. 일부 택배, 운송 회사에는 ‘재배달 서비스(수신자가 부재중인 경우, 지정 시간에 다시 배달해 주는 서비스로, 일본에서는 일반적이다.)’에 별도로 요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사실 일본 정부와 업계는 법이 시행되는 2024년을 대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 왔다. 물류 시스템에 로봇과 자동화 기술을 도입하거나, 여러 물류 회사가 공동 배송 시스템을 구축해 효율성을 높이고, 매력적인 근무지가 되도록 근무 환경과 복지를 개선했다. 일본 정부도 이 분야 취업과 관련한 외국인 비자 요건을 완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 감소와 고령화 추세 속에서 이런 대책들이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일본 사회의 이 딱한 사정은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 저출생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 사회가 곧 맞이할 상황, 어쩌면 이미 도래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 고령화와 인구 감소 문제는 ‘제로섬’ 게임
일본에서 ‘2024년 문제’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새 법규는 사실 물류 운송 업계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 중 하나였다. 업계에서는 새 법규의 준수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우려도 제기했지만, 일본 정부는 청년층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을 물류 업종으로 유도하는 장기적인 해법으로 여겼다. 그러나 현재 상황을 보면, 이 낙관적인 전망이 실현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설사 이 정책이 성공을 거둔다고 해도, 결국 다른 업종에서는 새로운 인력 부족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한 일손 부족 문제는 결국 해피엔딩이 없는 ‘제로섬’ 게임인 것이다.
인공지능(AI)과 자동화 기술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낙관적인 기술결정론도 있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모든 활동을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언젠가 그런 기술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그때까지 이 문제를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다. 개인적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결할까?”보다 “어떻게 피해를 최소화할까?”라는 관점이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모두의 삶의 질은 다소 저하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겸손하게 받아들이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이번 가마쿠라 여행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사례를 보았다. 가마쿠라 역 근처에 나이가 지긋한 주인장이 혼자 운영하는 소박한 밥집이 있었다. 이 가게는 손님이 식사 후 테이블을 치워주면 밥값을 5% 할인해 주는 독특한 제도를 시행 중이었다. 주인장은 돈을 덜 받고, 손님은 소소하게 일을 분담하자는 공생의 방식을 택한 셈이다. 주인장은 예전보다 적은 수익을 감수하고, 손님도 예전만큼 좋은 서비스를 받을 일이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태블릿 메뉴판이나 로봇 서버보다 훨씬 친절하게 다가왔다. 이 정도 ‘귀여운’ 해법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마음이 들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사회 시스템에서 기인한 구조적인 문제이자, 사회 구성원 모두의 삶의 질과 직결된 근본적인 과제다. 이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할 만한 묘안은 없다. 하지만, 조금씩 양보하는 공생의 길은 열려 있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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