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소·극·장] 전교생 39명 '폐교 위기' 몰린 중학교, '뮤지컬' 입소문 나자 지역도 살아났다
대구 외곽 지리적 악조건 탓 각종 혜택서 소외
저출생, 인구감소 여파 신입생 10여 명에 불과
2018년 뮤지컬특성화학교 전환 후 반등 시작
4년째 학부모·주민이 주연 되는 뮤지컬 공연
각종 행사 주민 전폭 지원... 문화 공간 재탄생
"예술은 도구, 지역 상생 모델로 건강한 역할"
편집자주
지역 소멸위기 극복 장면, '지역 소극장.'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소멸 위기를 넘고 있는 우리 지역 이야기를 4주에 한 번씩 토요일 상영합니다.
대구 달성군 가창면 가창중학교 도서관에서 학부모 도우미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채정화(48)씨. 네 남매를 키우고 있는 채씨 부부는 10여 년 전 첫째 아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가창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답답한 도심을 벗어나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우고 싶었던 부부는 팔공산 부근과 경산 등 여러 곳을 둘러봤지만, 가창은 그중에서도 최적지였다. 남편의 직장과 교통 등 나름의 타협지점도 있었다.
그러나 가창은 대구에서도 외곽 지역. 가창의 대다수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대구 도심으로 진학하길 원했고, 인구도 감소하고 있었다. 채씨에게도 아이 교육 문제는 고민거리였다. 첫째가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가창중은 2017년 뮤지컬 기반의 특성화 교육을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말처럼 잘 되겠냐." 채씨도 여느 학부모처럼 의구심을 가졌다. 가창중은 전교생이 한때 39명까지 줄었고, 2010년대 초반 매년 신입생이 10여 명에 불과해 폐교 소문이 돌 정도였다.
뮤지컬 특성화학교로 전환한 2018년, 학생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조용하던 교정에 울려 퍼지자 학교는 물론 지역에도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채씨는 "첫째는 가창중을 졸업한 뒤 자율형 사립고에 진학했고, 둘째는 성악을 공부해 서울 선화예고에 갔다"며 "셋째는 가창중 1학년인데, 초등학교 3학년인 넷째 딸이 오빠들의 모습을 보며 가창중에 가는 게 꿈이라 말할 정도"라고 웃었다.
폐교 위기, 인구유출, 지역소멸을 온몸으로 체감하던 이곳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원인은 무엇일까.
가창중 살린 '뮤지컬 특성화학교'
1963년 개교한 가창중은 한때 전교생이 500여 명에 달했다. 그러나 여느 학교처럼 저출생 고령화, 학령인구 감소 등 여파를 비껴가지 못했다. 가창면에 있던 우록초가 2007년 폐교했고, 학부모들은 교육 여건이 좋은 대구 도심으로 자녀들을 보내길 원했던 탓에 가창중 역시 신입생이 급감했다. 가창이 달성군에 있지만 실제 생활권은 수성구와 훨씬 가깝다는 점도 영향을 줬다.
가창은 대구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신천대로의 끝 지점, 농촌의 모습을 더 많이 간직한 곳이다. 이곳 주민들이 가창을 '대구의 섬'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지역 발전이 더디다는 인식에 가창을 수성구로 편입하겠다는 움직임도 있었다.
물론 위기의 학교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다문화, 축구, 예체능 도입 등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러다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뮤지컬'이다. 2016년부터 뮤지컬을 앞세워 특성화학교로의 전환 작업에 착수했다. 대구뮤지컬페스티벌(DIMF) 등 대구의 예술 인프라를 활용해 보자는 것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특성화 전환이 이뤄진 2018년 신입생 정원 40명을 모두 채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교생이 120명까지 늘었다. 지난해 입학전형에는 80명이 지원했고, 내년도 신입생 경쟁률도 3 대 1에 달한다. 최근 3년 동안 안양예고, 서울예고, 선화예고 등 주요 예고에 진학한 졸업생만 43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학교 정원을 늘려달라는 민원까지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가창중을 졸업하고 가창중에서만 35년 넘게 교편을 잡고 있는 서명자(60) 교장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가창의 흥망성쇠를 곁에서 지켜봐온 산증인인 셈이다. 모교 후배들을 제자로 둔 서 교장에게 변화한 학교의 모습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서 교장은 "학교에 예술을 입혀보자는 방향성이 들어맞았다"며 "전문성 있는 강사를 섭외하면서 예체능 계열로 가고 싶어 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관심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자녀의 가창중 입학을 위해 인근 가창초와 용계초로 미리 전학을 오는 경우도 많다는 후문이다. 인근 학교에도 파급효과를 가져온 셈이다.
학생들도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댄서가 꿈인 2학년 차은지(14)양은 달서구 집에서 1시간이 넘는 통학 거리에도 "학교가 너무 재밌다"며 "안무 창작을 위해 친구들과 연습하고, 대회에도 많이 출전하다 보니 스스로도 한층 성장하는 느낌"이라고 활짝 웃었다. 학생회장인 3학년 조민진(15)양은 A4 용지 3장에 '가창중을 가야 하는 이유'를 꽉꽉 채워 집 근처 학교를 가길 원했던 부모님을 설득했다고 한다.
"제가 고집이 센 것도 있어요. 뮤지컬 배우 꿈을 이루기 위해선 꼭 이곳에 와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제는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비슷한 목표를 가진 친구들이 서로 지지해주니 많이 의지가 되고 있어요."
"우리가 뮤지컬을?" 반문하던 주민 학부모의 변신
학교의 변화는 가창 전체로 확산했다. 가창중은 2021년부터 학부모와 주민들이 직접 주연이 되는 뮤지컬 공연을 하고 있다. 올해는 대구시교육청과 달성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지난 9월 가창중 강당에서 주민과 학부모 20여 명이 열연을 펼쳤다. 무대에 오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생소했지만, 3개월여 동안 저녁 시간대 가창중 강당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공연을 위한 창작 뮤지컬도 제작했다. 제목은 '나를 닮은 적'.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며 겪은 어려움과 에피소드를 전문 작가가 새롭게 각색했다.
대학 시절 연극 동아리 경험이 있는 채정화씨도 4년째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뮤지컬에 참여하고 있다. 채씨는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게 무엇인지도 잊고 살고 있었다"며 "엄마가 아닌 또 다른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뿌듯했다"고 말했다. 평소 내성적이라는 한 주민도 뮤지컬 공연을 통해 훨씬 밝아졌다고 한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는 주민도 있다.
어른들의 변신을 눈앞에서 목격한 재학생들도 깊은 감동을 받았다. 신왕수(54) 가창중 교감은 "뮤지컬이 주민과 학교 사이 끈끈한 유대감을 만들어 줬다"며 "단순한 학교가 아닌 지역 문화예술 공간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교 행사에 주민 동참, 자전거 여행도
"다치지 말고 잘 다녀오자!"
지난달 28일 오전 찾아간 가창중 운동장에는 자전거 40여 대가 늘어서 있었다. 이날은 1학년 학생들이 1박 2일 일정으로 부산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날. 뮤지컬 교육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회복 탄력성 강화 차원에서 진행하는 연례행사다. 여행을 위해 학생들은 수개월 전부터 동촌유원지 등을 달리며 자전거 연습을 했다고 한다. 헬멧과 안전장구를 꼼꼼하게 착용한 류아인(13) 백가람(13)양은 "지난 주말 수성아트피아에서 공연을 하느라 한숨도 못 잤다"면서도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준비운동을 마무리했다. 류양은 "친구들과 같이 자전거를 타면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자전거 여행엔 주민들도 '에스코트'에 나섰다. 가창 주민 전성호(55)씨는 자전거 여행을 위해 직장에 휴가까지 냈다고 했다. 전씨는 "우리 아이도 가창중 출신인데 졸업한 뒤에도 학교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며 "학생들과 함께 하며 특별한 추억이 생긴다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한국사학진흥재단 직원 6명도 참여해 후방에서 지원했다. 정하윤 재단 ESG혁신부장은 "학생들의 진로 탐색과 자기 성장을 위해 재단도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반백년 넘는 역사의 가창중은 주민들에게는 자부심의 상징이다. 가창중이 예술인들만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고 서 교장이 단언하는 이유다. 학교에 예술은 도구일 뿐, 그 자체로 목적은 아니라는 것. 그는 '지역의 학교'라는 점을 강조했다.
"눈앞 결과물을 내기 위한 곳은 학원이지 학교가 아닙니다. 가창중 아이들이 성장해 지역 사회에서도 건강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바랍니다."
대구=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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