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블랙핑크 로제는 다 알고 있다
최근 블랙핑크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노래 ‘아파트’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중독적인 멜로디와 가사 때문에 한 번 들으면 고3 수험생조차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고 볼멘소리를 낼 정도다. 다만 ‘아파트’를 반복해 외치는 후렴구를 듣다 보면 아파트 공화국에 사는 사람들의 숨 막히는 현실이 겹쳐져, 어쩐지 처연한 외침처럼 들리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이 ‘아파트 게임’의 규칙을 생각해 보면, 국내 부동산 시장과 묘하게 닮은 부분이 있다. 아파트 게임의 규칙은 간단하다. 참가자들이 한 손이나 양손을 겹쳐 놓고, 주최자가 층수를 부르면 층수에 맞춰 한 층씩 손을 올린다. 지정된 층수에 걸린 사람이 당첨되며, 이 과정에서 벌칙으로 밑에 있는 사람은 손을 한 대 맞거나, 술을 마시기도 한다.
지난해 하락세를 보이던 부동산 시장은 올해 들어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더니 최근엔 전고점을 돌파한 아파트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대세 상승에 올라타지 못할까 봐 조급함을 느낀 2030세대는 정부의 정책 대출을 활용해 또다시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 투자)로 집을 마련하고 있으며, 상급지로의 이동을 고민하던 기존 1주택자들도 선택의 기로에서 조바심을 내고 있다.
게임의 누군가가 벌칙을 받아야 끝이 난다. 모든 재화가 그렇듯 계속해서 오를 수는 없고, 마지막에 벌칙에 걸린 사람은 모든 것을 뒤집어써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하우스푸어가 그랬고, 2022년 영끌족들이 벌칙에 당했다. 서울 지역 아파트는 오르고 있지만, 지방 도시들은 여전히 미분양에 허덕이고 있다. 이 시기 지방에서 막차를 탄 사람들도 벌칙 대상자다.
아파트 게임의 룰을 챗GPT에 물어보면 ‘운이 큰 역할을 하는 게임’이라고 나온다. 이런 류의 운 게임이 공정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다만 아파트 매매나 아파트 게임 모두 중간에 규칙이 바뀌지 않아야 공평하다. 중간에 심판이 규칙을 바꿨다면 억울한 사람이 나오게 된다.
국내 부동산 시장은 정권과 상관없이 정부가 심판 역할을 하면서 규칙을 자주 바꾼다. 거래가 줄면 양도세를 줄이거나 과세 대상을 축소하고, 반대로 집값이 좀 오른다 싶으면 양도세를 과세 대상을 확대하기도 한다. 청년과 사회 초년생을 위한 정책 대출도 시장 상황에 따라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한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알려진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개발이 게임의 규칙을 바꾼 사례다.
분양권 전매 제한 완화, 중도금 대출 보증 분양가 기준 폐지, 실거주 의무 폐지, 무순위 청약 자격 요건 완화 등 1·3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자, 둔촌주공 계약률이 크게 높아졌다. 오죽하면 시장에서 1·3 부동산 대책을 ‘둔촌주공 일병 구하기’ 작전이라고 불렀을까. 당초 둔촌주공은 계약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게임의 규칙을 바꾼 결과 둔촌주공 청약에 성공한 사람들은 이달 입주를 앞두고 수억 원에 달하는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늘 그렇듯 벌칙 받는 시간은 고통스럽다. 게임의 규칙이지만, 이전보다 벌칙 대상자가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문재인 정권 시절 비정상적으로 올랐던 집값은 자연스럽게 조정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각종 정책 대출과 부동산 규제 완화 대책으로 시장의 조정을 인위적으로 막았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인구 감소 시대에 진입했다. 불꺼진 상가는 내수 경기가 최악임을 말해준다. 지방의 악성 미분양은 여전히 늘어나고 있다. 서울 집값도 이제는 너무 올라 영끌해도 사기 어려울 지경이다.
아무튼 아파트를 노래한 로제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아파트’ 가사 중간에는 ‘Hold on(기다려)’이 반복된다. 지금까지 부동산 시장에서는 ‘홀드(hold)’하고 기다리는 자가 승자였다. 하지만 홀드 온을 외친 로제는 아파트를 구매하지 않고, 서울 용산공원 인근의 고급 아파트 펜트하우스에 전세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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