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요금 폭탄마저 추억… 천리안 문 닫았다
1990년대, 사람들을 '접속'시켜준 PC통신 서비스가 모두 사라졌다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뚜뚜뚜뚜뚜뚜뚜- 삑-삑-삑-삑'
1990년대생부턴 좀처럼 알기 힘든, '아재판독기' 역할을 하는 PC통신 연결음이다. 초고속인터넷도 네이버도 없던 시절엔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유니텔로 상징되는 PC통신이 인터넷의 주역이었다. 접속을 할 때마다 전화 다이얼소리와 함께 '삑-' 소리가 반복되는 특유의 연결음이 있었다. 전화선을 통해 연결했기에 인터넷을 하면 집전화를 쓸 수 없어 가족의 원성을 들어야 했다. PC통신을 오래 쓰면 현재의 인터넷요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요금폭탄'을 맞게 됐다.
이 PC통신을 상징하는 서비스가 2024년 10월31일부로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천리안은 공지사항을 통해 “10월31일 천리안 서비스를 종료하게 됐다”며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돼 아쉽고 죄송하다는 말씀드리며 고객님들의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11월1일 현재 천리안에 접속하면 서비스가 종료됐다는 공지가 뜬다.
천리안은 국내 최후이자 최초의 PC통신 서비스였다. 현재 LG유플러스의 전신이 되는 회사 중 하나인 데이콤의 서비스로 1985년 출시했다. PC통신은 전화 인터넷을 통해 PC 간 연결해주는 방식이다. 2000년대 ADSL로 상징되는 초고속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전까지 PC통신이 곧 인터넷이었다.
천리안을 비롯한 PC통신에선 뉴스, 운세 등 정보를 찾아볼 수 있었고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소통할 수 있는 채팅과 동호회가 활성화됐다. 지금 포털에선 당연한 기능이지만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서비스였다. 특히 동호회는 오늘날 인터넷 커뮤니티의 원조격이었고 많은 '인터넷 논객'들을 탄생시켰다. 당시 떠오르던 대표적인 논객 1세대는 김어준씨였다. '방가방가', '초딩', '중딩' 등 인터넷 용어가 만들어진 것도 이때였다.
영화 '접속'(1997년)은 PC통신에서 만난 남녀가 인연을 맺는 이야기로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1999년 10월11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천리안 이용자 1400여명을 대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4%가 채팅 상대를 실제로 만난 적 있다고 밝혔고, 이들 중 40%는 채팅 상대를 만나 좋았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영화 '접속'의 주인공처럼 상당수가 채팅을 사교 및 만남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었다”고 했다.
천리안은 PC통신의 선두주자였다. 1997년 가입자 수 100만 명을 돌파하면서 큰 주목을 받는다. 1997년 12월2일 매일경제는 <천리안 유료가입자 100만 명 돌파> 기사를 냈다. 매일경제는 “국내 PC통신사상 최초로 유료가입자 100만 명을 넘어섰다”며 “서비스 10년 만에 세계 3대 PC통신으로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천리안은 여러 실험적 시도를 했다. 1993년 방송사와 제휴를 맺고 라디오방송의 음악신청과 TV프로그램 시청자의견을 천리안을 통해 받았다. 방송이 시청자, 청취자들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하기 시작한 순간이다. 1996년엔 국내 최초 사이버드라마 '아벌'을 선보였다. OTT, 웹드라마의 원조격이다.
같은 해 프로야구 문자속보 서비스인 '천리안 매직콜'을 선보였다. 애틀란타 올림픽 응원을 온라인으로 하는 실험적인 시도를 한 때도 1996년이다. 1999년엔 지구 반대편에 있는 LA다저스 소속의 '코리안특급' 박찬호 선수와 1시간 동안 온라인 팬미팅을 개최해 주요일간지가 보도할 정도였다. 당시 박찬호 선수는 26살이었다.
PC통신의 전성기는 영원하지 않았다.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등장하고 포털 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성장세는 꺾인다. PC통신이 실험적으로 선보였던 서비스들은 포털에서 모두 구현됐다. 천리안 등은 PC통신을 버리고 초고속인터넷 기반으로 서비스를 재정비했지만 무료 서비스를 내세운 포털 사이트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게 됐다.
하이텔은 2007년, 나우누리는 2012년 서비스를 종료했다. 유니텔은 30년 이상 유지하다 2022년 6월에 막을 내렸다. 지난 10월31일 천리안마저 종료하면서 1990년대, 사람들을 '접속'시켜준 모든 PC통신 서비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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