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옆방’에는 누가 있나요? [비장의 무비]

김세윤 2024. 11. 2.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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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엔딩을 만든다.

제작자의 간섭으로 원치 않는 엔딩을 넣어야 할 때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자기가 생각한 방식으로 영화를 끝낸다.

"우리 모두에겐 옆방이 있습니다. 결국 우리 자신을 마주하게 될 공간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그 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비록 조금 불편한 방이라 할지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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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넥스트 도어〉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주연: 틸다 스윈턴, 줄리앤 무어

영화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엔딩을 만든다. 제작자의 간섭으로 원치 않는 엔딩을 넣어야 할 때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자기가 생각한 방식으로 영화를 끝낸다. 인생도 그럴 순 없을까? 내 삶의 엔딩을 내가 정할 수는 없을까?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욕망은 그것이었다.

“이 세상에 깨끗하고 품위 있게 작별 인사를 하는 건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이건 정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문제입니다.” 제81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소감에서 그는 말했다. 수상작 〈룸 넥스트 도어〉의 주인공 마사(틸다 스윈턴)의 선택이 곧 자신이 꿈꾸는 삶의 엔딩이라는 걸 숨기지 않았다.

안락사, 존엄사, 조력자살.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바라는 결과는 하나. 스스로 끝내는 삶. 깨끗하고 품위 있는 작별. 이미 마음을 정한 마사가 옛 친구 잉그리드(줄리앤 무어)에게 부탁한다. 자신이 떠날 때 곁에 있어달라고. 침대맡을 지킬 필요는 없고 다만 옆방에 있어달라고.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 ‘옆방(The Room Next Door)’이 되었고, 감독은 아까 그 수상 소감 뒤에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모두에겐 옆방이 있습니다. 결국 우리 자신을 마주하게 될 공간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그 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비록 조금 불편한 방이라 할지라도요.”

관객보다 먼저 ‘그 방’에 초대받은 배우 틸다 스윈턴은 촬영이 시작된 뒤에야 깨달았다. 지금 마사를 연기하고 있는 자신이 “한때는 자주 잉그리드였다”라는 걸. 에이즈로 수많은 동료 아티스트가 세상을 떠나 “단 한 해 동안 참석한 장례식만 마흔세 번”에 이르던 그때를 떠올렸다. 자신에게 잉그리드가 되어달라고 부탁한 “내 인생 첫 번째 마사”, 옛 친구 데릭 저먼 감독을 그리워하며 연기했다.

그렇게 잉그리드의 마음으로 마사의 시간을 살아낸 뒤 배우는 말한다. 이 영화는 ‘죽음(death)’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증언(bearing witness)’에 대한 이야기라고. 누군가의 죽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가 아니라 그의 삶이 얼마나 찬란했는지를 증언하기 위해 옆방에 있는 거라고. “당신과 나는 지금 서로의 옆방에 머무르는 존재이고 또한 동시에 가자지구 옆방, 베이루트 옆방에도 있는 사람들”이라고. 우리보다 먼저 ‘그 방’에 머물렀던 경험을 증언해준다.

다행스럽게도 상대 배우가 줄리앤 무어. 틸다 스윈턴 곁에 나란히 앉아 말없이 이야기를 듣는 연기만으로도 화면 가득 온기를 채워내는 놀라운 배우. 정말 다행스럽게도 감독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죽음을 이야기하는 영화인데도 특유의 컬러와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시네마로 만들어내는 스페인의 거장.

나의 엔딩에도 잉그리드 같은 친구가 있다면, 나의 작별 인사도 알모도바르 영화 같은 생명력으로 충만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비극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니까.” 영화 속 이 대사에 자꾸 기대고 싶어진다. 올겨울에 눈이 내리면 가장 먼저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될 거라고 확신한다. 창밖으로 눈 내리는 장면을 숱한 영화에서 보았지만, 이 영화의 눈 내리는 창밖 풍경을 못 이긴다. 하긴, 에드워드 호퍼의 창문 너머로 제임스 조이스의 눈 내리는 풍경을 어떻게 이기겠어.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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