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내가 옳다”는 양 극단, 말투는 왜 자꾸 비슷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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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에서 '월가를 점거하라' 시위가 정점에 달한 2011년 11월 이 책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맨해튼의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험담하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다.
그는 '노 로고'로 100만 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과거 버니 샌더스 미국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유명 시민운동가다.
그런데 사실 이들이 원래 비난하려던 인물은 나오미 클라인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두 사람은 그냥 "권력에 불만을 품은 나오미들"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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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아군’ 혼동하는 상황까지… 미 대선-백신 접종 상황 등 조명
상대 부정하지만 닮아가는 이들… 첨예한 갈등 해소 단초 될 수도
◇도플갱어/나오미 클라인 지음·류진오 옮김/612쪽·2만8000원·글항아리
“우리가 뭘 요구하는 건지도 잘 모르면서 참나.”(여자2)
미국 뉴욕에서 ‘월가를 점거하라’ 시위가 정점에 달한 2011년 11월 이 책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맨해튼의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험담하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다. 그는 ‘노 로고’로 100만 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과거 버니 샌더스 미국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유명 시민운동가다. 클라인에 대한 험담은 그날로 끝나지 않고 이후 10년 넘게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도배했다.
그런데 사실 이들이 원래 비난하려던 인물은 나오미 클라인이 아니었다. 또 다른 유명 인사로 이름이 비슷한 ‘나오미 울프’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둘을 같은 사람으로 착각했다. 둘다 유대인인 데다 흔치 않은 ‘나오미’란 이름을 가졌고 폭넓은 사회활동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두 인물은 완전히 상반된 성향을 지녔다. 클라인은 좌파 성향에 가까운 반면, 울프는 자유주의자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극우 진영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많은 대중이 둘을 같은 사람으로 착각하자, 인공지능(AI) 자동완성 기능도 둘을 혼동했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 두 사람은 그냥 “권력에 불만을 품은 나오미들”일 뿐이었다.
신간은 나오미 클라인이 반대 진영의 나오미 울프와 혼동된 사적인 ‘도플갱어’ 이야기로 시작된다. 자신의 도플갱어 경험을 길잡이로 삼아 동시대 인터넷 환경과 극우 정치에 스며든 ‘도플갱어 문화’를 다양하게 조명한다. 영국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여성문학상의 논픽션 부문을 올해 수상했다.
클라인은 양 극단의 진영이 상대와 유사한 화법을 구사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의 책사 스티브 배넌이 주요 현안을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민주당 당원들이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다는 ‘거대한 거짓말(Big Lie)’을 한다고 주장하자, 배넌은 조 바이든이 선거 결과를 앗아갔다는 ‘거대한 절도(Big Steal)’로 맞섰다. 민주당 당원들이 적법한 선거 결과에 순응하지 않는다며 트럼프에 치를 떨자, 배넌은 민주당 당원들이 한 번도 트럼프를 적법한 대통령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응수했다. 이처럼 상대 진영의 언어를 차용해 정치 의제를 만든다는 점에서 양측은 도플갱어처럼 서로 닮았다는 것.
이런 맥락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을 두고 양 극단으로 갈린 서구 사회도 재조명한다. 백신을 받아들인 쪽은 백신 거부자들을 비난했다. ‘이웃의 안녕보다 개인 편의를 우선시하다니 어쩌면 그리 무정할 수 있을까’라고. 하지만 백신 거부자의 냉담함을 비판한 사람들 다수는 코로나로 앓아누운 백신 미접종자들에게 ‘진료받을 가치가 없다’고 했다. 백신 접종을 놓고 갈라선 두 진영은 상대에게 등을 돌렸지만 서로 닮아갔다.
흔히 자신의 도플갱어와 맞닥뜨린 사람은 스스로가 낯설어지는 경험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경험이 “마냥 끔찍하기만 하진 않다”고 썼다. 내가 누군지, 나는 상대와 얼마나 다른지를 알 수 있어서다. 실제로 저자는 ‘또 다른 나오미’를 이해하기 위해 그가 나오는 팟캐스트와 방송, 저서를 섭렵하고 만남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진영 간 갈등이 첨예한 요즘 상대방을 알아 나가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새삼 일깨워준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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