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편의점 맞아?”… 야구 굿즈부터 패션-뷰티까지 차별화 전쟁
스포츠 프로팀과 컬래버레이션… 로봇 배치한 스마트 점포도
브랜드별 이색경험 경쟁 치열… SNS 입소문 타면 매출 상승
포화상태 업계 새 동력으로… 본사 주도 매장 실험도 다양
‘LG 트윈스’ 유광 점퍼를 파는 야구 특화 매장, ‘마녀공장’의 클렌징오일을 비치한 뷰티 특화 매장. 편의점 업계가 다양한 콘셉트로 차별화한 점포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점포 수를 늘리는 대신 각 점포마다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세븐일레븐 동대문던던점. 매장 손님 10여 명 중 절반은 외국인, 절반은 한국인이었다. 대부분 2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몇몇은 라면을 끓이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패션·뷰티 코너에 놓인 의류와 화장품, 그리고 인형을 포함한 소품들이었다. 매장에서 양말과 인형을 산 중국인 관광객 장모 씨(23)는 “패션으로 유명한 곳(던던 동대문)에 있는 편의점 특화 매장이라는 점이 재밌어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했다.
동대문던던점은 9월 말 세븐일레븐이 패션·뷰티 진출을 선언하며 새롭게 출점한 매장이다. 약 200㎡ 규모인 해당 매장 면적의 10%가 패션·뷰티존이다.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한 자체브랜드(PB) 의류와 화장품 업체 마녀공장 제품들을 판매한다. 개점 직후부터 한 달간 동대문던던점의 비식품군 매출 비중은 27%로, 일반 점포(20%) 대비 7%포인트 높았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특화 매장을 낼 때 전국적인 유통망이 있는 편의점의 장점을 어떻게 살릴까 고민하던 중 재구매율이 높은 옷과 화장품을 떠올린 것”이라며 “향후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패션·뷰티 특화 매장을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편의점이 대형마트를 제치고 오프라인 유통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최근 이에 대한 해법으로 기존 편의점의 주력 상품군에서 벗어난 ‘특화 매장’이 주목받고 있다. 라면, 담배, 주류 등에 더해 스포츠, 테크, 패션 등 특화 분야로 사업 영역을 빠르게 넓히고 있는 것이다.
● 편의점은 차별화 전쟁 중
잠실타워점에선 LG트윈스 응원 타월, 유광 점퍼, 2023년도 우승 키링, 야구 배트 등 트윈스 팬들을 위한 굿즈를 팔고 있다. 작년 LG트윈스가 29년 만에 우승하면서 화제가 됐던 아와모리 소주도 판매 중이다. 고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이 1994년 우승한 선수들에게 다음 우승 때 축배를 들자며 손수 준비했던 술이다. LG트윈스 팬들에게 ‘1994년 우승주’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데, 편의점 주요 판매 품목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잠실타워점 점주는 “한창 시즌이 진행되던 시기엔 야구 배트를 중심으로 굿즈 판매가 정말 활발했다”고 말했다.
‘특화’라는 말이 꼭 품목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자동화 기술을 강조하는 리테일테크 특화점도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다. 8월 개점한 서울 종로구 관훈동 GS25 그라운드블루49점에는 피자, 라테아트,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종류의 제작 로봇을 배치해 운영하고 있다. 2022년 7월 강남구 역삼동 GS25 DX LAB점, 작년 10월 금천구 GS25 가산스마트점에 이은 세 번째 스마트 매장이다. GS리테일 관계자는 “편의점의 특징을 살려 오프라인에서만 볼 수 있는 체험을 전달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 ‘돈이 되는’ 특화 매장
편의점 브랜드들이 특화 매장을 늘리는 이유는 비슷비슷한 상품으로 경쟁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이 브랜드’, ‘이 매장’에서만 구매·체험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로 잠재 고객을 끌어와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실질적인 매출 증대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GS리테일에 따르면 GS25 그라운드블루49점은 오픈 첫 주 매출이 리뉴얼 전 대비 2배가량 늘었다. 자동화 식품 제작 기기, 취식 공간 등을 확충하며 2018년 평균 1분 30초였던 소비자 체류 시간도 3분 7초까지 늘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특화 점포의 경우 매출이 최소 2배 이상 뛰는 경우가 많다”며 “철저히 돈을 벌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특화 매장의 매출 상승은 우선 주목도에서 기인한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소셜미디어 등에서 특화 매장이 주목을 받으면 ‘한번 가보자’는 방문객이 늘어난다”며 “일단 매장을 찾아오면 다른 물건도 사면서 매출이 오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매출 극대화를 위해서는 상권의 특징을 당연히 반영해야 한다. 방문객 60%가량이 외국인인 동대문던던점의 경우 동대문을 찾는 관광객들을 겨냥해 뷰티 매대에 마스크팩을, 식품 쪽에는 K푸드의 선두주자인 라면이나 바나나맛우유 등을 집중 배치하고 있다. GS25도 그라운드블루49점에 인사동을 방문한 외국인을 겨냥해 라면 특별 코너를 마련했다.
전문가들은 특화 매장이 성장 한계에 다다른 편의점 업계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현행법상 편의점은 인근 매장 100m 내 매장을 출점할 수 없는 제한이 걸려 있다. 출점 경쟁이 힘들어진 상황에서 입지가 좋은 타사 매장을 가져오는 ‘간판갈이’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실상 서울에서는 신규 편의점 출점이 어렵다”며 “(특화 매장은) 소모적인 간판갈이 경쟁에서 벗어날 대안적 모델”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수익원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도 특화 매장 확대를 자극한다. 편의점의 효자 상품인 담배의 경우 여전히 매출의 30∼50%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성인 흡연율이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보이는 데다 담배 광고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높다. 때문에 담배 판매 매출이나 매대를 활용한 광고 매출이 현재 수준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란 분석이다. 다른 수익원이 더 절실해졌다는 얘기다.
● 특화 매장 ‘실험’은 계속된다
향후 편의점들이 더 다양한 형태로 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좁은 공간에서 필요한 물건만 사는 전통적인 편의점 구조를 소비자들은 ‘피로하다’고 느꼈다”며 “재밌는 상품이나 공간을 가진 특화 매장을 통해 편의점 고객 체험을 다채롭게 만드는 방식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코인빨래방 등까지 흡수하며 업태를 늘려나간 일본 편의점처럼 ‘거점 만물상’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종우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특화 편의점은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초창기 단계”라며 “시도가 누적되고 성공 사례가 늘면 일본과는 다른 우리나라만의 특화 편의점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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