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올인한 머스크, 돈 싸들고 펜실베이니아 훑어

2024. 11. 2.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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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의 미 대선 워치] 대선판에 뛰어든 머스크 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왼쪽)이 지난달 5일 경합주 펜실베이니아에서 유세 도중 억만장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등장해 트럼프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020년 6월 흑인 민권운동인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M·Black Lives Matter)’를 외치는 시위가 전국 곳곳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코로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난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내란법(Insurrection Act)’ 발동에 반대한다며, 트럼프와 대립각을 세우는 기자회견을 했다. 화가 난 트럼프 대통령은 에스퍼 장관을 해임하기 위해 측근들의 의견을 물었다. 마크 메도우 백악관 비서실장,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톰 스콧 상원의원, 제임스 인호프 상원의원 등 4명과 통화를 하고 트위터로 해임 통고를 하기 직전이었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를 트럼프의 측근인 데이비드 어반에게 알렸다. 어반의 전화를 받은 트럼프는 마음을 바꿔 에스퍼 장관 해임을 없던 일로 했다. 폼페이오, 에스퍼, 어반은 미국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83학번 동기동창이다. 이들은 웨스트포인트 시절 축구팀에서 함께 뛰었다. 폼페이오와 에스퍼가 장관에 오른 것도 어반의 추천 덕분이었다. 그만큼 어반은 트럼프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다.

어반, 2016년 트럼프 승리 때 ‘1등 공신’
어반이 이처럼 트럼프의 최측근이 된 것은 2016년 대선 승리를 이끈 1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대선 승리의 결정적 역할을 한 펜실베이니아주 선거 책임자였다. 당초 펜실베이니아는 2008년과 2012년 대선에서 모두 민주당이 승리한 곳이다. 이런 불리한 상황을 뒤엎고 어반은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겼다. 펜실베이니아는 대통령 선거인단이 19명으로 대권을 위해선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경합주다. 따라서 트럼프의 머릿속에 어반이란 인물이 각인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트럼프가 당선된 후 취임까지 2개월 이상을 뉴욕 맨해튼에서 옆에 끼고 다닌 사람이 바로 어반이다. 어반은 20년 이상 레이시온이란 회사의 로비스트로 일했다. 레이시온은 미사일과 레이더를 생산하는 군수업체다. 당연히 트럼프 정부 아래에서 레이시온은 크게 성장했다. 에스퍼 국방장관도 원래 레이시온의 부사장이었다. 어반의 추천에 힘입어 2017년 육군장관이 됐고, 2019년 국방장관에 올랐다.

미국 대선에서 민주·공화 양당 후보가 필사적으로 싸우는 곳이 펜실베이니아주다. 트럼프가 유세 중 총을 맞은 곳도 펜실베이니아였고, 갑자기 민주당 후보가 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러닝메이트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를 대동해 본격적인 선거운동의 출발을 알린 곳도 펜실베이니아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버락 오바마의 두 번에 걸친 대선 승리로 이 지역이 민주당 텃밭으로 바뀌는가 했는데 2016년에는 다시 공화당이 승리를 가져갔다. 지지율 조사에 드러나지 않는 ‘샤이 트럼프(트럼프 지지를 공개하지 않는 유권자)가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지난 9월 말까지는 오차범위 내지만 꾸준히 해리스의 지지율이 앞섰다. 트럼프의 초조함은 더해갔고, 결국 세계 최고의 부자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에게 펜실베이니아를 맡겼다. 머스크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정치 단체인 ‘아메리카 팩’에 1억 달러 이상을 내놓고 본격적인 트럼프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머스크가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으면서 펜실베이니아의 판세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해리스에게 3%포인트가량 뒤지던 트럼프의 지지율은 현재 대등한 수준이 됐다. 이에 크게 고무된 트럼프는 대선 일주일을 앞두고 선거 관련 인사들을 뉴욕 맨해튼의 매디슨 스퀘어가든에 집결시켰다. 트럼프는 마치 승리를 거둔 개선 장군의 모습이었다. 그와 함께 무대 위에서 가장 활발히 움직인 사람이 바로 머스크다. 워싱턴 안팎에선 트럼프와 머스크의 이런 협력을 괴물들의 결합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머스크는 지구 상에서 돈을 가장 빨리 많이 번 사람이다. 그는 억만장자를 넘어 세계 최초의 조만장자가 되어가고 있다. 개인 재산은 중간 규모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수준과 맞먹는다. 미국을 상징하는 기업인으로 흔히 록펠러나 카네기를 떠올리지만, 머스크가 소유한 부의 규모와 영향력은 이들을 뛰어넘는다. 다만 사회적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머스크는 끊임없이 자신이 쓰고 있는 자금이 수억 달러에 달한다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에 힘입어 머스크는 현재 트럼프 선거운동에서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유권자에게 상금과 상품을 직접 제공하면서 트럼프에게 투표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 기업인들은 대개 정치권에 자금만 제공해왔다. 머스크처럼 직접 돈을 싸 들고 다니면서 선거운동에 뛰어든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런 머스크와 트럼프는 서로를 존경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협력하게 된 것은 글로벌 차원의 권력과 재력에 대한 강렬한 욕구 때문일 것이다.

WSJ “머스크, 푸틴과 2년째 정기 연락”
글로벌 권력과 재력이란 측면에서 트럼프와 머스크 두 사람과 공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2024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우세해 주목을 받을 때마다 안보와 통상 전문가들의 입에선 이 세 사람이 함께 언급되곤 했다. 이 세 사람이 비슷한 수준의 영향력을 추구하는, 같은 유형의 권력자들이라는 것이다. 트럼프와 푸틴의 관계는 그간 적지 않게 드러났다. 2018년 로버트 뮐러 특검이 수사한 소위 ‘러시아 스캔들’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푸틴과 연결된 인물들이 2016년 트럼프 선거운동을 맡았고, 트럼프는 이후 대통령의 권한으로 이들을 사면한 적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지금도 이번 트럼프 캠프에서 선거전략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머스크가 이번 미 대선판에 뛰어든 것은 트럼프와 푸틴의 권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머스크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우주산업 분야에서 트럼프와 푸틴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얘기다.

실제 이들 세 사람이 정기적으로 접촉해왔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 알려진 바로는 트럼프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일곱 차례나 푸틴과 전화 통화를 했다. 푸틴과 머스크 관계와 관련해선,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22년 말부터 푸틴과 머스크가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머스크는 사업 측면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다. 트럼프는 이미 공개적으로 새 정부의 업무를 조사·감독하기 위한 ‘국가효율성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머스크를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전문가로 트럼프 정부 때 국가안보회의(NSC) 고문을 지낸 피오나 힐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머스크가 트럼프의 선거에 직접 뛰어든 것과 관련, “트럼프, 머스크, 푸틴 등 이 세 사람의 조합은 막대한 재산과 막강한 권력을 서로 통제하고 거래하기를 선호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평했다.

머스크가 자신의 자가용 비행기에 돈 보따리를 싣고서 거의 한 달 이상 펜실베이니아 곳곳을 훑고 다니는 이유는 분명하다. 트럼프는 이번 대선 초반부터 펜실베이니아에서의 승리를 이끈 사람을 위해선 무엇이든 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머스크는 이미 자신이 꿈꾸는 항공우주산업을 위해 트럼프뿐만 아니라 푸틴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머스크의 스타링크, 스페이스엑스 등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미국 뿐 아니라 러시아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마치고 1996년 한인유권자센터를 설립해 한국계 교민·교포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해 왔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등 워싱턴 정계에 인맥이 두텁다. 한·미관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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