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학대 86%가 부모…‘또 다른 정인이’ 지금도 울고 있다

황건강.신수민 2024. 11. 2.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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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인권 침해
시민들이 2021년 5월 정인이 사망 사건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엄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44명. 지난해 아동 학대로 사망한 것으로 공식 집계된 아동의 숫자다. 2020년 10월 ‘정인이 사망 사건’ 이후 아동 학대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처벌도 강화됐지만 아동 학대 사망자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사망자는 훨씬 더 많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립과학수사원이 2015~2017년 아동 변사 사건을 조사한 결과 1000건 중 391명에게서 학대 정황이 발견됐다. 반면 같은 기간 정부가 공식 집계한 아동 학대 사망 건수는 90건에 그쳤다.

특히 최근엔 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8월 발표한 아동 학대 통계에서도 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가 전체의 85.9%에 달했다. 4년 전 정인이 사건의 가해자도 입양 가정의 부모였다. 사회적 논란이 커지면서 2021년 아동 학대자 처벌을 한층 강화하는 내용의 ‘정인이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가정 내 ‘사각지대’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아동 학대는 오히려 늘어만 가는 모습이다. 지난해 2월 인천 초등생 사망 사건 때도 아이는 친부모가 이혼한 뒤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친모와의 만남도 허용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년간 친부와 계모에게 학대를 받아야만 했다.

정부도 논란이 커지자 아동 학대 전담 공무원 제도를 도입하고 아동 학대 사건이 발생할 경우 부모와 아동을 분리 조치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력도 부족해 전담 공무원 한 명이 아동 학대 의심 사례를 최대 80건까지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한 지자체 전담 공무원은 “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는 증거 확보가 훨씬 더 어려운데, 맡고 있는 건수가 워낙 많다 보니 자세히 들여다볼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아동 학대
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건 기본적으로 신고 의무자와 학대 가해자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보호해야 할 부모가 학대 당사자이다 보니 신고가 이뤄질 리 만무하다는 지적이다. 훈육과 학대의 경계가 모호해 구별이 힘든 데다 아동이 사망했을 때 학대와의 연관성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난제로 꼽힌다. 더욱이 이혼 가정일 경우엔 한쪽 부모의 학대를 다른 부모가 감지하거나 제지하기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외상이 없는 정서적 학대가 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조영희 이영심리상담연구소장은 “아동 상담을 하다 보면 겉으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아이인데 내면에서 심각한 학대 징후가 발견되는 경우가 적잖다”며 “가정 내에서 학대받는 어린아이들은 고통을 밖으로 호소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정서적으로 심하게 손상되기 쉽다”고 우려했다. 미국과 유럽 각국이 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를 중대 범죄로 다루는 것도 신체적 학대는 물론 정서적 아동 학대까지 근절해야 ‘폭력이 폭력을 낳는 학대의 대물림’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란 설명이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정인이법 통과 이후 아동 학대 대응이 강화됐지만 가정 내 아동 학대를 찾아내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아동 학대 예방 교육을 확대하는 등 보다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황건강·신수민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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