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전쟁을 바꾸다

유지한 기자 2024. 11. 2. 00:5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5000달러짜리 AI 드론이면, 500만달러짜리 탱크 파괴할 수 있어”
미국 버지니아 주방위군 소속 병사가 전투용 증강현실 기기 ‘IVAS’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 이 기기를 쓰면 입체 지도를 볼 수 있고 궂은 날씨와 어두운 밤에도 인근 동료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미국 버지니아 주방위군

우크라이나군은 최근 국경에서 수백km 떨어진 러시아 중심부의 전력시설과 정유공장을 정밀 타격 중이다. 지난 9월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인근의 정유공장이 우크라이나 공격에 불타올랐다. 러시아 한복판을 정밀 타격한 수단은 인공지능(AI) 드론. 전파방해에 취약한 GPS(위성합법시스템)를 장착하는 대신, 탑재된 AI가 비행 중 자체적으로 지형을 탐색하며 자율적으로 경로를 설정하고, 목표물을 정확히 식별한 후 자폭 공격을 감행한다. 이 AI 드론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곳은 미국 빅테크 팔란티어다. 빅데이터 전문 기업인 팔란티어의 기술 때문에 지난해 50%에 못 미쳤던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 적중률이 올해 80%까지 올랐다.

그래픽=양인성

이스라엘 스타트업 엑스텐드가 개발한 VR(가상현실)로 조종할 수 있는 드론은 가자지구 전쟁에 투입되고 있다. 드론이 송출하는 화면을 헤드셋으로 보며 조종할 수 있다. 건물을 수색해 폭발물을 찾고, 적을 발견하면 수류탄을 발사한다. AI가 드론의 정밀한 움직임을 보정해주기 때문에 5분이면 조작법을 익힐 수 있다.

빅테크가 개발한 첨단 기술들이 현대 전장(戰場)을 바꾸고 있다. AI와 드론, 로봇 개 등 상업용으로 먼저 개발된 기술들이 군사용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전과 이스라엘 전쟁 등에 투입돼 전장의 판도를 바꾸는 전술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전장에 투입한 로봇개. /우크라이나군

◇전장을 바꾸는 빅테크 기술

마이크로소프트(MS)는 증강현실(AR) 기기인 ‘IVAS’를 미 육군에 공급하고 있다. AR 기기를 통해 3D(입체) 지도를 보고, 열화상 센서·GPS·야간투시 기술 덕분에 궂은 날씨나 어두운 밤, 연기가 자욱한 상황에서도 인근 동료 군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주변 상황을 실시간으로 인식하며 공중에서 폭격이 감지되면 경고 신호를 보낸다. 현재 미군 훈련에 사용되며 실전 투입을 위한 막바지 기술 개발이 진행 중이다.

드론은 핵심 전술 무기로 자리 잡았다. 미군은 자국 기업 에이벡스 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한 드론 ‘피닉스 고스트’를 우크라이나에 500대 이상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닉스 고스트는 자율 비행으로 정찰 임무를 수행하면서 표적을 발견하면 정밀 타격하는 성능을 갖췄다. 미국 기업인 안두릴은 저렴하고 가벼운 드론을 개발했다. 약 1.4㎏의 탄약을 싣고, 5분 내에 드론을 날려보내 지상군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보잉은 AI 기반 무인 전투기 ‘고스트 배트’와 무인 잠수정 ‘오르카’를 개발했다. AI 드론 스타트업 ‘화이트 스토크’를 설립한 구글의 전 최고경영자(CEO) 에릭 슈밋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5000달러짜리 드론이 500만달러의 탱크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빅테크의 기술은 무기의 성능을 강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팔란티어는 전투 지역의 지형과 사물 데이터를 분석해 표적을 포착하고, 이를 타격하기 위한 전술까지 제안하는 AI를 개발했다. 구글·오러클·AWS·MS는 합동 군사작전용 데이터 관리 시스템(JWCC)에 클라우드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챗GPT를 개발한 오픈AI 역시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미 국방부와 협력하고 있다. 폴리티코는 “더는 군대가 어떤 종류의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무기를 구동하는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고 했다.

미국 안두릴이 개발한 군사용 드론이 자폭 공격을 수행하는 모습. /안두릴

◇커지는 빅테크 군사 의존도

미국 방위사업의 빅테크 의존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비영리 연구기관 테크 인콰이어리의 연구에 따르면, 2019~2022년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구글 등 3대 빅테크가 따낸 방위사업 수주액은 총 280억달러(약 36조63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미국 국방부의 연구개발 분야 예산 총액이 1300억달러(약 180조원)인 걸 감안하면 방위산업의 상당 부분을 빅테크들이 담당하는 것이다. 미국 브라운대의 왓슨 국제·공공문제 연구소는 “미국의 군수 산업이 실리콘밸리로 확장되고 있다”며 “빅테크와 벤처캐피털, 사모펀드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국방 계약으로 이익을 얻고 있다”고 했다.

중국도 미국 빅테크의 기술을 몰래 활용해 군사기술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중국 인민해방군과 연계된 주요 연구기관들이 메타의 개방형(오픈소스) AI 모델 라마(Llama)를 활용해 군사용 AI를 개발했다”고 1일 보도했다. 군사과학원 등 중국의 군 연구기관 소속 연구원들이 각종 군사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작전 결정을 지원하는 챗봇을 개발할 때 메타의 공개 AI 모델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