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라는 ‘로도깅’… 도전했다 마약 밀수로 오해받을라

김성윤 기자 2024. 11. 2.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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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비행멍? 챌린지? 올여름부터 본격 유행

비행기는 ‘비(非)일상’을 선물한다. 기내는 여럿이 한 공간에 있으면서 역설적으로 고독해질 수 있는 장소. 동행이 없다면 철저히 혼자가 될 수 있다. 장거리 비행기에서 ‘로도깅(raw-dogging)’을 실천하는 승객이 늘고 있다. “로도깅 10시간 성공. 개인 신기록 달성. 내 정신력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같은 글이 인증샷과 함께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다.

로도깅이라는 단어가 아마도 낯설 것이다. 그만큼 새로운 발명품이니까.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지 않아야 한다. 항공 지도를 보는 것을 빼면 어떠한 기내 엔터테인먼트도 이용하지 않는다. 기내식은커녕 물도 마시지 않는다. 눈을 감거나 잠을 자도 안 된다. 심지어 화장실 사용도 불가. 로도깅은 비행기에 탑승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오로지 허공만 응시하는 것을 일컫는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의 엘링 홀란드(왼쪽) 등이 “장거리 비행에서 로도깅에 성공했다”며 소셜미디어에 올린 인증샷. 저런 자세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텨야 한다. /틱톡·인그타그램 캡처

◇마음 챙김? 새로운 챌린지?

로도깅은 올여름부터 유럽·미국 등 서구권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공개된 애플TV+ 드라마 ‘하이재킹’에서 주인공 샘 넬슨(이드리스 엘바)이 두바이에서 런던으로 비행하는 내내 조용히 정면을 응시하는 장면이 화제를 모았고, 이를 따라 하는 영상과 성공 인증샷이 속속 올라오면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로도깅은 원래 피임 도구 없는 성관계를 뜻하는 속어였지만, 최근 SNS에서는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무언가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엔터테인먼트나 식음료 없이도 지루한 장거리 비행을 극복하는 챌린지로 확장됐다. 특히 MZ 세대 남성을 중심으로 유행 중이다. 호주의 온라인 문화 전문가 조시 스튜어트는 “강해 보이고 싶은 남성들에게 새로운 테스트(챌린지)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도깅 실천자들은 “일종의 마음 챙김(명상)”이라고 주장한다. ‘불멍’ ‘숲멍’ ‘바다멍’ 등 최근 유행하는 ‘멍 때리기’의 새로운 버전으로 ‘비행멍’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허공을 응시하며 비행기 엔진 소리나 숨소리·심장박동에 집중하면서 내면을 살피고 정신을 고양하겠다는 것. 서양의 한 심리학자는 “미디어가 주는 자극에서 벗어나 긴 시간을 보내면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며 “기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처음엔 힘들 수 있지만, 차츰 편안해질 것”이라고 했다.

◇마약 밀수범 의심받을라

의학 전문가들은 로도깅에 대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며 경계한다. 건조한 기내에서 수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탈수 위험이 크다. 비행 중 수면과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시차 적응이 어렵고 신체 리듬이 깨질 수 있다.

장거리 비행 중 몸을 움직이지 않고 앉아만 있으면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발생하는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심부정맥 혈전증)’ 위험도 있다. 다리가 붓고 아프거나 저리는 증상이 대부분이나, 방치할 경우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가슴 통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로도깅을 하겠다며 기내식을 먹지 않으면 마약 밀수범으로 오해받을지도 모른다. 최근 세관 당국은 마약 밀수범을 색출하기 위해 기내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 승객 명단을 항공사로부터 받아 특별 조사를 한다. 밀수범들은 콘돔에 마약을 넣고 삼키는 수법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 밥을 먹으면 콘돔이 터져 죽을 가능성이 있고, 그래서 밀수범들은 기내식을 먹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로도깅 직접 해보니… 쉽지 않네

찬반이 갈리지만 트렌드로 부상한 로도깅을 기자가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탈 호주 출장길이었다. 비행 모드로 설정한 휴대전화에서 스톱워치 ‘시작’ 버튼을 누르고 로도깅에 도전했다.

잠시 후 비행기가 이륙했다. 좌석 벨트 사인이 꺼졌다. 평소 같으면 좌석을 뒤로 젖히고 기내 엔터테인먼트 영화 목록을 훑었겠지만, 이번에는 가만히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며 내면을 들여다보려 했다. 만사에서 벗어나 성층권 하부를 날면서 오랜만에 내 내부를 여행해보자. 구름 위의 피정(避靜)이 평온을 선물할까?

사람은 습관의 동물. 평소 하지 않던 마음 챙김은 쉽지 않았다. ‘혹시 ’듄2′라면 다시 봐도 재밌지 않을까’ ‘맛없긴 하지만 그래도 기내식이 먹고 싶네’…. 온갖 잡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비행기 엔진 소음이 평소보다도 훨씬 크게 들려 거슬렸다. 정신일도하사불성. 다시 숫자를 세기로 했다. 1부터 100까지 열 번도 넘게 헤아린 것 같다.

심장이 평소보다 강하고 빠르게 뛰는 듯했다. 다리도 저려 왔다. ‘이러다 이코노미석 증후군이 오는 거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기내식을 준비하는지 갤리 쪽에서 음식 냄새가 솔솔 흘러나왔다. 자제력이 바닥났고 결국 로도깅을 접기로 했다. 쑥과 마늘만 먹는 동굴 생활 100일을 견디지 못해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짐승이 이런 열패감을 느꼈을까.

휴대전화를 꺼내 스톱워치 ‘중지’ 버튼을 눌렀다. 억겁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는데, 고작 8분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이걸 어떻게 7~8시간, 심지어 10시간 이상 지속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로도깅 10시간 성공했다’고 정신력 운운하며 SNS에서 자랑한 영국 맨체스터 출신 DJ 남성이 이해됐다. 멀리 앞쪽에서 스튜어디스가 묻고 있었다. “비프 오어 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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