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우폴에서의 20일
[아무튼, 레터]
마리우폴은 러시아에 가장 먼저 침공당한 우크라이나 남동부 항구 도시다. 2022년 2월 24일, AP 취재팀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으로 들어간다. 도시는 평온해 보인다. 그때 “전쟁은 폭발로 시작되지 않는다. 침묵에서 시작된다”는 내레이션이 흘러 나온다. 폭풍 전야 같은 적막감. 공기가 팽팽해진다.
오는 6일 개봉하는 ‘마리우폴에서의 20일(20 Days in Mariupol)’은 전쟁 다큐멘터리다. 86일 만에 함락된 그 도시에서 전쟁 초기에 어떤 참상이 벌어졌는지 중계하듯 목격담을 전한다. 94분 길이의 이 영화를 보는 것은 고통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고통을 주고 관심을 이끌어낼 의도로 만들어졌다.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은 첫날부터 주택가를 폭격했다. 소수는 도시 밖으로 탈출했지만 다수는 남았다. 임시 대피소에는 슬픔과 공포, 분노가 가득하다. 한 소년은 카메라를 향해 울먹인다. “죽고 싶지 않아요.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전기와 인터넷이 끊어지자 휴대폰은 손전등이 된다. 포위망은 좁혀 오고 시민들은 집과 가족을 잃어 갔다.
AP 취재팀이 은신 중인 병원은 아비규환이다. 항생제와 진통제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시신들은 다용도실에 보관했다가 황급히 땅에 묻는다. ‘Z’ 표식이 그려진 러시아 탱크들이 도시로 진입한다. 라디오방송은 “투항하라”를 반복한다. 질서가 파괴되자 도둑질이 난무한다. 어느 의사가 하는 말. “전쟁은 엑스레이와 같아요. 인간의 내부가 드러나죠. 좋은 사람은 더 좋아지고 나쁜 사람은 더 나빠집니다.”
러시아는 이 도시 상황을 숨기려 했다. 마리우폴에 고립된 기자가 없었다면 진실이 묻힐 수도 있었다. 바깥 세상으로 어렵게 내보낸 영상에 대해 러시아는 “배우들을 고용해 조작한 가짜 뉴스”라고 비난한다. 취재팀은 무차별 폭격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참상을 취재한다. 산부인과 병원과 마지막 소방서마저 피폭돼 폐허가 된다. 그 와중에 기적처럼 새 생명이 태어난다.
가까스로 빠져나와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을 만든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 감독은 아카데미상을 받고 “이 영화를 만들 일이 없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의 세상과 이 트로피를 맞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러시아 최전선으로 파병된 북한군과 우크라이나군의 교전은 시간문제다. 더 이상 남의 전쟁이 아니다.
※ QR코드에 휴대폰을 갖다 대거나, 인터넷 주소창에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5743을 넣으면 구독 창이 열립니다. ‘이메일 주소’와 ‘존함’을 적고 ‘구독하기’를 누르면 이메일로 뉴스레터가 날아갑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모던 경성]이효석의 애독서 ‘어머니’는 왜 386 운동권 필독서가 됐을까
- 어느새 여기까지 올라왔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사과가 나는 곳
- 박원갑 “부동산에 타이밍? 게으른 사람이나 찾는 것. 돈 버는 사람은 그때...”
- 몸 으슬으슬할 때 국내산 침향환 100환, 4만원대 특가
- 당분간 난방 걱정 없는 탄소매트, 4만원 대 특가
- “인생에서 가장 감격스런 순간”… 일본 미나미자키, 한국 시니어 오픈 정상
- 지지율 19%, 모든 계층에서 부정적
- 민주당, 오늘 장외집회 총동원령
- “尹 전면 쇄신 나서고, 金여사는 활동 중단 직접 밝혀야”
- 여권서 터져 나오는 “내각 총사퇴” “참모진 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