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원이라도 더 싸게… 유통가, 11월 사활 건 할인 전쟁
1일 오전 10시 이마트 서울 자양점. 대형 마트 영업 시작 전이지만, 150명 정도가 입장을 기다리며 입구에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날 이마트를 비롯해 신세계그룹 계열사 18곳이 상품 1조9000억원어치를 할인 판매하는 행사(쓱데이)가 시작되면서 이른바 ‘오픈런(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는 것)’이 벌어진 것이다.
쿠팡(와우 빅세일)과 롯데쇼핑(땡큐절)은 이미 지난달 29일과 31일 각각 할인 행사를 시작했고, 11번가(그랜드 십일절)도 이날 대규모 할인에 들어갔다. 중국 광군제(11일),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29일) 등 글로벌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할인 행사에 앞서 국내 쇼핑객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한때 쇼핑 비수기로 취급받던 11월이 크리스마스에 연말 분위기가 맞물리는 쇼핑 성수기 12월을 제치고 ‘쇼핑 황금 달’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랙 프라이데이가 만든 글로벌 ‘쇼핑 대목’
11월을 쇼핑의 계절로 만든 원조는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다. 미국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11월 넷째 주 목요일) 다음 날을 가리키는 블랙 프라이데이에 미국 소비재 기업들은 대규모 할인 경쟁을 펼친다. 2000년대 블랙 프라이데이에 가게 문이 열리면 미국인들이 전속력으로 달려가 TV 박스 등을 움켜쥐는 모습은 국내 방송의 단골 뉴스 소재였다. 블랙 프라이데이는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의 소비 경기를 보여주는 가늠자로 여겨지고, 전 세계 소비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먼 나라 얘기 같았던 블랙 프라이데이는 국내에도 해외 직구족이 눈에 띄게 늘면서 유통 시장의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나라의 해외 직구액은 2015년 1조7014억원에서 작년엔 6조8000억원으로 급증했다. 한 대형 마트 관계자는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에다 중국의 광군제까지 유명해지면서 국내 기업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쇼핑 행사에 들떠 있는 국내 소비자의 ‘가출’을 막기 위해 국내 유통 기업들도 블랙 프라이데이와 광군제에 앞서 초대형 할인 행사를 진행하면서 11월은 그야말로 ‘글로벌 쇼핑 대목’이 된 것이다. 정부도 지난 2015년부터 블랙 프라이데이를 벤치마킹해 소비 진작과 내수 활성화를 목표로 ‘코리아 세일 페스타’라는 대규모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유통업체마다 ‘11월 할인 행사’에 사활 걸어
11월에 할인 행사를 하는 국내 기업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다.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활을 걸고 할인 행사 상품을 대량으로 확보해 홍보에 열을 올린다. 한국 시장 공략을 강화하는 중국 알리익스프레스는 100원을 결제하면 추첨을 통해 현금 1억원을 주는 이벤트를 벌이는 등 11월 쇼핑 경쟁에 가세했다.
이커머스의 공세에 시달리는 국내 대형 마트 업계는 1년 중 가장 큰 규모의 할인 행사를 11월에 벌인다. 대형 마트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직접 매장에 와서 줄을 서고, 구입한 물건을 들고 가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게 만드는 게 핵심 과제”라며 “답은 결국 소비자가 카트를 가득 채울 수 있도록 경쟁 업체보다 파격적인 할인 행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마트 업체들은 11월 할인 행사를 위해 통상 6개월 전 준비에 착수한다. 1등급 한우를 50% 할인해 팔고, 다양한 먹거리와 생활필수품을 평소보다 훨씬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는 것은 대형 마트가 납품 업체에서 미리 대규모 물량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마트에 따르면, 작년 쓱데이 행사 하루 평균 매출은 평상시 주말의 2배 이상을 기록했다. 국내 유통업체들은 올해 행사에 거는 기대가 특히 크다. 한 대형 마트 관계자는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소비 심리가 위축된 상황”이라며 “11월 할인 행사로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물가 안정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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