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말이면 공연장과 미술관, 갤러리는 젊은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경험·체험’을 중시하는 MZ세대는 다양한 전시·공연 및 문화생활에 관심이 높고, 또 그것을 직접 즐기는 데도 적극적이다. 이들 MZ세대를 중심으로 ‘아트 테크(미술과 투자의 합성어)’도 활발한데, 현실적으로 모두가 값비싼 예술품을 소유할 수는 없다. 대신 이들은 아트 상품을 플렉스(flex·부를 괴시한다는 뜻)한다. 공연·전시장 로비에 아트 상품을 파는 진열대가 점점 더 넓어지고, 품목이 점점 더 다양해지는 이유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2022년)’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2023년)’ 전시 아트 상품을 기획 및 제작한 바 있는 ‘핀어웨이큰’의 김고은 대표는 “지금의 2030세대는 10대 시절부터 좋아하는 아이돌 관련 굿즈를 사 모으는 게 익숙한 세대라 내가 직접 경험하고 또 좋아하는 데 돈을 쓰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며 “공연·전시 등으로 문화생활 범위가 점차 넓어지면서 그 팬덤이 아트 상품 구매로 자연스레 확대됐다”고 했다. 갤러리에 걸린 그림들에 비하면 가격은 훨씬 저렴한 아트 상품은 MZ세대가 자신들의 지갑 사정에 맞게 소유하고 즐기기에 적당히 세련됐고 적당히 신박하다.
신진 작가들과 협업하며 생활예술품을 디자인하는 ‘라이프앤콜렉트’의 박혜지 대표는 “미술관에서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미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 말고, 익숙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내 취향에 맞게 소유하고 매일 향유할 수 있어야 진짜 예술 아닌가”라며 “만지고 사용할 수 있는 예술품”을 만들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실제로 박 대표는 갤러리를 방문하거나 SNS 등을 뒤져 자신과 생각이 같은 젊은 작가들을 섭외하고 협업해 시계·러그·조명·액세서리 등을 디자인, 판매한다.
이처럼 MZ세대 취향의 아트 상품을 개발하는 데 젊은 작가들과의 협업은 필수다. 요즘 창업하는 디자인 스타트업 브랜드는 대게 1~2명이 대표이면서 직원 역할까지 도맡는다. 심각한 인력부족 때문에 젊은 대표들은 이야기가 잘 통하고, 또 자신들의 작품이 상품화되기를 원하는 또래 작가들을 찾아 협업을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 기획 아이디어를 내는 데도, 상품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효율적이다.
브랜드 ‘샘즈’의 최유리 대표는 올해 백자 작업을 하는 작가와 함께 ‘청화 주사위’를 개발했다. 궁중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한국 전통 문양인 십장생도를 활용해 각 면마다 1부터 6까지 소나무 무늬를 새겼다. 손 안에 쥘 수 있는 두 개의 작은 자기 주사위 안에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것. 최 대표는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뮷즈 2024 공모전 당선작으로 ‘민화 타투스티커’도 개발했다. 한국의 민화 중 MZ세대가 좋아하는 나비, 고양이 등의 그림을 스티커 형태 타투로 디자인한 상품이다. 최 대표는 “K컬처 확산으로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젊은 세대가 많지만 이들이 일상에서 전통 공예품을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페스티벌이나 파티 문화에도 익숙한 MZ세대에게 타투는 친숙하고 또 3~4일 즐기고 나면 자연스레 지워지는 스티커라 반응이 좋다”고 했다.
이처럼 발랄하고 개성 넘치는 젊은 디자인 스타트업 브랜드는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문제는 지속가능함이다. 자본과 시스템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신생 기업이 1~2명의 인력과 아이디어만으로 기획·제작·유통까지 모두 감당하기란 어렵다.
홍대 입구에 위치한 서울디자인창업센터는 차세대 청년 디자이너들의 스타트업 창업을 위해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이 조성·운영하는 디자인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플랫폼이다. 국내 유일의 원-스톱 디자인창업 플랫폼으로 특화된 공간 및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 기업의 빠른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 향상을 지원하고 있다.
디자인 상품화가 가능한 분야의 역량을 보유한 예비 또는 기 창업자가 지원하면 선정기준에 따라 입주 기업을 결정한다. 입주기간은 1~2년으로 선정된 입주 기업은 공유 오피스 형태의 입주 전용 공간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또 디자인 특화 및 맞춤형 커리큘럼으로 진행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고, 투자·경영·제조·브랜딩 등 창업 전반에 관한 주제별 1:1 멘토링과 컨설팅도 제공받는다. 홍보·마케팅은 물론 국내외 디자인 페어 등 기타 전시 참가, 기업들과의 협업 프로젝트도 지원한다.
김윤희 서울디자인창업센터장은 “디자인 분야의 초기 창업자 및 예비 창업자들이 필요로 하는 공유형 업무공간이 잘 갖춰져 있고, 이들이 움직이고 외부인이 미팅을 위해 찾아오기에도 좋은 위치라 입주 기업들의 만족도가 높다”며 “무엇보다 디자이너·기술·경영·제조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과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이들이 모여 서로 자연스럽게 정보를 공유하고 교류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에도 좋은 플랫폼”이라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