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내가 심판한다… 죄를 모르는 괴물에게 칼날을 겨누다
돼지의 피
나연만 장편소설 | 북다 | 316쪽 | 1만5500원
촉법소년 살인 사건
전건우 장편소설 | 요다 | 284쪽 | 1만6800원
살인을 시작하겠습니다
배예람 장편소설 | 이지북 | 192쪽 | 1만6000원
“넌 지금부터 네가 저지른 짓들을 똑같이 경험하게 될 거야. 그게 지옥의 룰이거든.”
2일 종영하는 SBS 금토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에서 배우 박신혜가 악마 재판관 유스티티아로 분해 말하는 대사다. 형사재판부 판사 강빛나 몸에 악마 재판관이 깃들었다는 설정. 강 판사는 법정을 나온 뒤 본색을 드러낸다. “이제부터 진짜 재판을 시작한다.” 보랏빛 눈빛으로 ‘진짜 응징’에 나설 때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솜방망이 처벌에 ‘법이 못 하면 내가 직접 복수한다’는 유의 드라마가 꾸준히 인기를 끈다. 지난해 넷플릭스 화제작이었던 ‘더 글로리’, 최근 시즌 2가 공개된 ‘지옥’ 등. 문학에서도 사적인 복수와 제재에 관련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사적 제재’를 주제로 최근 출간된 한국 소설 세 편을 추렸다.
◇복수에서 시작하는 미스터리
‘돼지의 피’는 주인공 준우의 불길한 악몽으로 시작한다. 아버지가 토막 난 돼지들과 함께 사람을 묻는 꿈이다. 잠에서 깬 준우는 오늘이 12년 전 엄마를 죽인 살인범 안치호의 출소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차를 몰고 교도소로 향한 그는 출소한 안치호와 대치 중인 누나 준서를 먼발치에서 본다. 경찰이 된 준서는 안치호에게 “죽은 듯이 조용히 살라”고 경고하지만, 안치호는 비웃을 뿐. 그 모습을 보고 증오에 사로잡힌 준우는 안치호의 집을 찾아간다.
안치호를 습격했다가 되레 반격을 당한 준우는 한참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다. 눈앞에 시체가 놓여 있다. ‘잡혀 들어가기 싫으면 시체 치우기’라는 알림 메시지가 휴대전화에 뜬다. 누군가가 설계한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 미스터리를 푸는 과정이 중·후반부 소설 내용이다. ‘혐의를 인정해서 10년, 반성하고 있어서 10년, 우발적이어서 10년, 취중이라서 10년, 판사가 한마디 할 때마다 형량이 10년씩 깎여 나가는 것 같았다.’ 재판 당시를 떠올리는 준우의 회상을 읽다 보면 분노가 꿈틀거린다.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최우수상 수상작.
◇촉법소년 단죄자의 유튜브 생중계
‘촉법소년 살인 사건’은 형법 제9조 ‘14세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를 계속 환기한다. 청소년 연쇄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조민준 형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건을 파헤치던 조 형사는 죽은 소년·소녀들이 같은 한 사건에 연루된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 자신을 ‘단죄자’라고 칭하는 이가 나타나 유튜브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단죄자에 따르면, 죽은 소년·소녀들은 폭력을 휘둘러 동급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학교 폭력 가해자다. 하지만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았다. 단죄자는 이 사건 가해자인 또 다른 학생을 납치한다. 시청자 투표를 통해 생사(生死)를 결정하겠다는 유튜브 생중계 방송에 전국이 발칵 뒤집힌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질 법한 일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플롯과 설정이지만, 빠른 전개 덕에 페이지가 쉬 넘어간다. 단죄자는 대체 누굴까? 작가는 알아차리기 쉬운 반전을 뒀는데, 이 역시 ‘사적 제재’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친구에게 느끼는 ‘살의’
‘학교’라는 공간은 복수극의 단골 배경이다. 방과 후 옥상, 체육관, 화장실…. 곳곳에서 폭력이 벌어지고, 가해자-피해자 구도가 생긴다. 사회화가 덜 된 미숙한 이들이 행하는 어설픈 폭력이 오히려 더 무섭다. 우리 대부분이 거쳤던 익숙한 공간이기에, 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훨씬 가깝고 생생하게 느껴진다.
‘살인을 시작하겠습니다’는 학교를 배경으로, 청소년의 복수에 관한 창작물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참고할 만한 소설이다. 봉암여고 2학년 송나희와 박이경은 서로 죽여야만 끝나는 ‘제0 교시 살인 영역’ 시험에 응시하게 된다. 이 학교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6월 모의고사’의 저주라고 한다. 둘은 ‘죽이고 싶은 사람의 이름과 반 번호를 쓰시오’라는 질문에 한 치도 망설임 없이 서로 이름을 쓴다. 친구였던 둘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사춘기 청소년의 심리 상태를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거기서 ‘살의’라는 감정까지 끌어내는 것이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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