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물자 보급로’ 바다 지배하는 자가 승리한다
2차대전 해전사
크레이그 L 시먼즈 지음 | 나종남 옮김 | 책과함께 | 1024쪽 | 5만3000원
1939년 10월, 독일 잠수함 U-47의 함장 귄터 프린은 스코틀랜드 북쪽 스캐파플로에 잠입했다. “해안을 배경으로 떠 있는, 검은 잉크로 하늘을 칠한 것처럼 단단하고 맑은 실루엣은 틀림없이 영국 해군 전함의 윤곽이었다. … 조용히 해치를 내려놓자 열린 튜브로 물이 흘러들면서 압축 공기가 ‘쉬익’ 하는 소리를 냈다.”
저자가 미국 해군사관학교의 명예교수로 저명한 해군사(海軍史) 전문가라고 해서 이 책(원제 World War Ⅱ at Sea)이 야전 교범처럼 딱딱한 것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 잠수함의 영국 해군기지 습격을 묘사한 위 장면처럼, 마치 세밀화를 보는 듯 정교하면서 문학적인 서술이 1000여 쪽 분량을 관통한다.
독일 ‘U보트’의 활약부터 됭케르크 철수, 진주만 공습,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거쳐 이오섬(유황도) 전투까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을 해전(海戰)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했다고 할 수 있는 연구서다. 바다를 중심에 놓으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 새삼 많이 보인다는 얘기다.
당시 해전이란 태평양 따로, 대서양과 지중해에서 각각 따로 전개된 것이 아니었다. 대서양에서 전투를 수행하며 발생한 운송 손실은 태평양의 과달카날로 향하는 수송에 영향을 미쳤고, 지중해의 몰타섬으로 가는 호송대를 운용한 결과 대서양 방향의 호송대 수는 줄었으며,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호를 추격하기 위해선 영국, 아이슬란드, 지브롤터에서 전투력을 끌어모아야 했다.
한마디로 세계의 바다는 모두 전장(戰場)이었다. 독일군은 북극 근처, 우루과이 앞바다, 호주 서해안에서 연합국 해군과 교전했고, 일본군 잠수함은 캘리포니아 해변을 위협했다. 그리고 제해권을 거머쥐고 넓은 바다를 얻은 자가 끝내 승리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추축국 중 가장 먼저 쓰러진 이탈리아는 해군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비토리오베네토’ ‘볼차노’처럼 파스타 식당을 연상케 하는 이름의 전함들은 멋진 외관을 자랑하듯 빠른 속도로 기동했으나, 만성적 연료 부족에 공군과 소통이 잘 안 되는 약점을 지닌 결과 초반에 기선을 제압당했다. 반면 개전 직후 신속하게 대양을 장악한 일본 해군은 적국인 미국으로부터 ‘훈련 수준이 월등하고 효율적이며, 무기와 전투원이 질적으로 우수하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재빠른 해군 동원으로 노르웨이를 점령해 철광석을 확보했던 독일은 길을 거꾸로 갔다. 대대적 소련 침공 이후 육상전에 골몰해 있던 히틀러는 해군 제독의 조언을 무시하고 “현대전은 공군이 중요한데 대형 전함이 왜 필요한가”라며 호통을 쳤다. 독일 해군이 총통의 홀대 속에 빛을 잃은 결과는 냉혹했다. 추축국은 지중해를 건너는 보급조차 힘겨워한 반면 영국은 희망봉을 돌고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원거리일지언정 보급로를 놓치지 않았다.
‘사막의 여우’로 이름을 떨친 독일 장군 롬멜이 영국 장군 몽고메리에게 밀려난 이유는 바로 열악한 보급 때문이었다. 북아프리카를 잃은 추축국은 1943년 연합군에 시칠리아 상륙을 허용하며 결정적인 멱살을 잡히게 됐다. 한편 방어보다 공격을 높이 평가하는 전통을 지닌 일본 해군은 미군 잠수함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고, 전쟁 막바지엔 일본과 남아시아 사이의 보급로가 거의 차단됐다. 보급은 전쟁의 열쇠였으며 그걸 지켜주는 것은 해군력이었다.
저자는 연합국이 전 지구적 대결에서 승리한 세 가지 요소로 영국인들의 불굴의 의지, 소련 붉은 군대의 회복력,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군의 우위를 든다. 생명줄과도 같은 연합국의 보급로를 결국 지켜낸 것은 미 해군이었는데, 추축국의 공격으로 침몰당한 선박보다 늘 더 많은 선박을 만들어 내는 생산력이 그 배후에 있었다는 것이다.
대단히 방대하고 자세한 정보를 싣고 있는 책이지만 다소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80쪽 각주에선 ‘진주만 전투(1941년 12월)가 종료된 직후부터 영국군 대신 미군이 아이슬란드에 주둔했다’고 했지만 282쪽 본문에선 미군의 아이슬란드 파견 시점을 1941년 6월이라 적었다. 원문과 번역문 중 어느 쪽의 오류인지는 불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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